유엔, 북한 당국에 '만델라 규칙' 준수 지속 강조..."수감자들 기본권리 누려야"

북한 18호 북창 관리소(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 김혜숙 씨가 그린 관리소 지도가 제네바 유엔 인권사무소에 걸려있다. (자료사진)

유엔과 국제사회가 북한 당국에 ‘넬슨 만델라 규칙’으로 불리는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유엔 기준 규칙’ 준수를 최근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내 가장 열악한 계층인 수감자들의 인권 존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76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제출한 북한인권 결의안에서 처음으로 ‘넬슨 만델라 규칙’으로 불리는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유엔 기준 규칙’(United Nations Standard Minimum Rules for the Treatment of Prisoners(the Nelson Mandela Rules))을 언급했습니다.

북한 지도부에 정치범 수용소 등 구금시설 환경을 포괄적으로 즉각 검토해 국제 규약 의무들을 준수하는지 확인하라며 ‘넬슨 만델라 규칙’을 지적한 겁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76차 유엔총회에 제출한 북한 인권상황 보고서에서 북한 지도부를 향해 구금시설 내 환경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수감자에 대한 인도적 대우 등‘넬슨 만델라 규칙’이 명시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도 76차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 당국에 ‘넬슨 만델라 규칙’ 준수를 촉구했고, 지난달 뉴욕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거듭 북한 내 정치범 등 수감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녹취: 퀸타나 보고관] “The political prison camps continue to exist in North Korea. They represent the most serious human rights situation with regards to the country in my view and the government has not addressed this issue,”

북한에 여전히 정치범 수용소(관리소)가 존재하며, 자신은 이 수용소가 북한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상황을 대표한다고 보지만 북한 정부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유엔 기준 규칙’은 유엔이 지난 1955년 수감자도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며 채택한 국제 원칙입니다.

유엔은 이후 지난 2015년 유엔총회에서 정치범으로 27년간 수감됐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넬슨 만델라 규칙’으로 명명한 개정안을 채택해 유엔 회원국들에 준수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당시 넬슨 만델라재단의 은자부로 은데베레 의장은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를 통해 발표한 동영상에서 과거 감옥에서 매우 열악하고 잔혹한 대우를 받았던 만델라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구금시설 개선 캠페인을 적극 펼쳤다며, 이 규칙이 “전 세계 수감자 권리 보호의 효율적인 도구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만델라 전 대통령이 남긴 명언을 소개했습니다.

[녹취: 은데베레 당시 의장] “Prison conditions are both a critical measure of democracy and an important instrument for democratization. As Mr. Mandela said in 1994, at the dawn of democracy in South Africa, a nation should not be judged by how it treats its highest citizens, but its lowest ones. It’s imprisoned citizens.”

만델라 전 대통령은 “감옥 환경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이자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한 국가에 대한 판단은 최상류층 시민들에 대한 처우가 아닌 최하류층, 즉 수감자들에 대한 대우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만델라 전 대통령은 남아공의 민주화 태동기인 1994년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며 “누구도 그 나라 감옥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나라를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영국의 북한 인권 활동가로 북한 구금시설에 수감됐었던 박지현 씨는 9일 VOA에, 과거 국제앰네스티의 국제법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들었던 ‘넬슨 만델라 규칙’에 대한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그 때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 감옥에 들어가 보면 그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얘기했잖아요. 그것을 그 때 배웠을 때 정말 와닿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북한에서 세뇌교육을 받고 자랐고 바깥세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말하는 그것이 다 진실인 줄 믿었잖아요. 그러다 중국으로 나가 해외도 봤지만, 북한으로 북송됐을 때 저희가 북한 감옥에서 받았던 그 굴욕적인 대우, 처벌,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처벌을 받으면서 실제적인 북한을 봤거든요.”

‘넬슨 만델라 규칙’은 실제로 이런 문제들을 제기하며 1조에서 “모든 수감자(피구금자)에 대한 처우는 인간으로서 고유의 존엄성과 가치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어떤 수감자도 고문, 다른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을 받지 않도록 보호돼야 하다”며 수감자들이 진료를 받을 권리와 의료진의 독립성, 15일 이상 독방구금 금지, 신체수색 등 부당 대우와 사망, 항의에 대한 조사 등 다양한 수감자의 권리를 담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해 발표한 북한 구금시설 내 여성 환경 보고서에서 북한 수감자들의 환경이 ‘넬슨 만델라 규칙’에 상당히 위배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령 수감자에게 제공되는 거주 설비의 보건 요건 충족, 난방 등을 명시한 13조, 위생과 식량, 물, 여가시간의 충분한 보장을 명시한 15~23조, 구금 공간 과밀화 등을 명시한 여러 조항에 북한의 구금시설은 모두 위배된다는 겁니다.

한국의 인권조사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이런 심각한 문제가 북한에서는 죄인으로서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로 보는 경향이 많다며, 유엔의 ‘만델라 규칙’ 강조는 이런 북한 내 인식에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희석 법률분석관] “크게 두 가지가 있겠죠. 일단 그 사람이 정말 범죄자가 아닐 수 있잖아요. 억울하게 정치범으로 투옥이 된 경우도 있을 것이고, 설사 범죄를 저질러서 처벌을 받는 경우에도 그것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그 사람을 고문하거나 학대하기 위해서 구금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사람은 사람이잖아요. 그게 사실 원칙인 거죠.”

박지현 씨는 세상에 나와서야 이런 권리를 북한에서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것에 분노했다며, 주민들에게 이런 권리를 전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진짜 너무도 모르고 그 안에서 박해를 받았구나! 내가 모든 것을 누릴 인권의 권리인데, 그 권리조차 말 한마디도 못 하고 그 안에 있었구나 생각하니 너무 분하고요. 이런 만델라 규칙이라든가 세계인권선언문도 하나씩 하나씩 북한에 보내면 그래도 듣는 사람들이 아! 이제까지 나는 저런 것도 몰랐구나! 이렇게 생각할 여유를 줄 것 같아서 저는 너무 좋다고 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