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들 "김일성 시대 대표적 2인자 김영주 사망"

1972년 북한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 부장(오른쪽)이 한국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만났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인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한때 김일성 시대의 대표적인 2인자로 꼽혔지만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고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동정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AP’ 통신은 15일 김영주 사망 소식을 보도하면서, 김일성 통치 기간 중 많은 외부 전문가들이 그를 북한의 두 번째 권력자, 심지어 김일성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평가했었다고 전했습니다.

김영주는 권력 핵심인 노동당 중앙위 조직지도부장과 중앙위원 등을 지낸 김일성 시대의 대표적인 2인자라는 겁니다.

특히 지난1972년에는 한국과의 첫 주요 공동선언인 ‘7 ·4 남북공동성명’에 북한을 대표해 서명했다고, 통신은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973년 김정일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자리를 차지한 이후 점진적으로 정계에서 사라졌고, 1980년 당 대회에서 김정일이 후계자로 인정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통신은 김영주는 이후 김정일이 권력을 확고히 장악한 1993년 국가 부주석과 정치국 위원에 선출됐다며,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고 전했습니다.

경제전문지인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김일성 주석의 동생인 김영주가 101세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김영주가 김일성 주석 체제 초기 북한 정부의 중요한 일원이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김영주는1967년 ‘유일사상체제 구축을 위한 10대 원칙’을 제안했고, 이는 아직도 여전히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습니다.

이 신문은 김영주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보였느냐에 대해 전직 북한 고위 관리들의 증언이 엇갈렸다며, 하지만 1970년대에는 한때 잠재적인 후계자로 여겨졌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블룸버그’ 통신도 15일 ‘북한 건국자인 김일성의 막내동생 김영주 101세에 사망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그의 사망 소식을 다뤘습니다.

통신은 김영주가 1970년대 초 남북 비밀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을 이끌었고 1972년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켜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고 소개했습니다.

통신은 또 1970년대에 보도됐던 ‘뉴욕 타임스’(NYT) 신문 내용을 인용해, 김영주가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권력을 강화하고 있던 자신의 형 김일성 주석의 정적들을 숙청하는데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통신은 김영주는 김일성 주석이 아들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키우기 시작한 뒤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약 20여년 동안 정치적인 영향력을 상실했었다며, 나중에 복귀해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의례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북한의 유력한 후계자로 더 이상 인정받지 못했다고 보도했습니다.

VOA 뉴스 박동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