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선정 2021 한반도 키워드...코비드·봉쇄·정체·희망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 (자료사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북 관계 등 2021년 한반도 정세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코로나, 봉쇄, 정체 등을 꼽았습니다. 북한이 코로나를 이유로 국경을 봉쇄하고 대화를 거부하는 등 외부와 단절된 채로 한 해를 보냈다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북한과의 관여를 위한 기대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전직 관리 등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에게 2021년 한반도 정세를 상징하는 ‘키워드’를 물었습니다.

가장 많이 제시된 단어는 ‘코비드’와 함께 ‘자기 고립’, ‘국경봉쇄’, ‘폐쇄’ ‘봉쇄’ 등이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차단을 이유로 올해도 국경을 꼭꼭 걸어 잠근 채 스스로 ‘고립의 길’을 택한 북한 상황을 꼬집은 것입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대사는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의 팬데믹 대응이 수 년 간의 제재와 외부의 정책이 이룬 것 보다 더욱 포괄적인 고립을 스스로 부과했다”고 밝혔습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2022년에 북한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기 고립’에서 벗어나려 할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크 토콜라 전 주한 미국 부대사도 북한의 ‘국경 봉쇄’는 “제재의 실효성에 대한 논쟁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며, 북한이 “(외부의) 모든 관여 시도를 거부하며 ‘외교적 돌벽’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전 국무부 정책자문관은 “북한 정권이 올해 외부적으론 국경을 ‘폐쇄’하고 내부적으론 사회적 통제와 억압을 강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수 김 전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은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국경 봉쇄뿐 아니라 북한 정권의 활동을 무기한 멈추게 했다”면서, 올해 북한은 많은 것이 얼어붙은 채 전면적 폐쇄 상태였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샌디에이고대학(UC San Diego)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코비드와 봉쇄는 계속해서 북한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남아있다”면서,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북한에 큰 어려움을 줬으며 다시 중국을 바라보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김연호 부소장도 코비드’를 올해 미-북 관계를 규정 짓는 핵심 요소로 꼽았습니다.

“북한이 코로나 사태로 스스로 고립을 택하고 외부 세계와의 대화와 교류, 협력을 거부했고, 바이든 행정부 역시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북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룰 정치적 여유와 공간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김 부소장은 “코로나 사태를 해소할 획기적인 방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답보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김정은 정권이 코로나 예방을 이유로 장마당, 국경, 교통, 통신, 외부정보 유입 등을 ‘통제’했다며, “코로나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체’, ‘정지’, ‘현상유지’ 등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올해 미-북 관계를 나타내는 키워드도 많았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 (자료사진)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양측은 상대방에게 매우 중요한 무언가를 원하면서 어느 쪽도 상대방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바꾸도록 강요할 능력이나 의지도 없었다”고 미-북 관계의 정체’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브루킹스연구소 앤드류 여 한국석좌는 한국 정부는 2021년 남북대화와 미-북 외교가 재개될 것으로 크게 기대했으나 협상은 ‘정지’됐고, 김정은 집권 이후 일부 경제 진전과 개혁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나 북한 정권은 팬데믹 국경 봉쇄와 함께 권위주의 통제를 강화하고 시장을 단속하는 등 북한사회를 정체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 선임국장은 올해도 북한은 코로나 대유행 상황이 시작된 2020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며 정체’를 키워드로 제시했습니다. 국경 봉쇄가 여전하고 백신 접종에 진전이 없으며, 핵 협상도 정체되면서 이런 대가를 북한 주민들이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잔 손튼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은 2021년 한반도 정세를 ‘가사상태(suspended animation)’로 표현했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 죽지는 않았으며 “코로나 등 여러 요인으로 활동이 정지되거나 중단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손튼 전 대행은 이런 “가사상태가 2022년 미래에 대한 약간의 희망을 주기도 한다”며 “앞으로는 깨어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랄프 코사 태평양포럼 소장은 미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올해 미-북 관계는 변화 없이 현상유지’ 상태라며, 두 지도자 모두 특히 코로나 등 국내 현안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이라는 키워드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은 올해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북한 주민의 안위보다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은 우선시했으며, 미-한 동맹의 분열을 모색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담은 키워드도 나왔습니다.

마이클 그린(왼쪽)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CSIS 제공)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 부소장은 “청와대는 종전선언이 북한이 일방적인 군축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도록 하는 것 외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순진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백악관은 다른 동맹국들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 구상으로 추파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략적으로 판단하지만, 그것 역시 순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 상황을 보여주는 키워드도 있었습니다.

전략적 인내’를 키워드로 제시한 민간단체 외교정책포커스 존 페퍼 소장은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 시대의 접근방식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투자할 관심이나 정치적 자산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연구소 한국담당 국장은 워싱턴에서 북한 문제가 올해 ‘잊혀졌다’고 말했습니다.

오미크론, 인플레이션, 경제, 중국 등 다른 사안으로 인해 바이든 정부는 북한을 다룰 정치적 여유가 없었다는 건데,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대량살상무기(WMD) 이전 등을 하지 않는 한 워싱턴은 이 문제를 관리하는 데 만족할 것이지만, 이는 ‘큰 실수’라고 카지아니스 소장은 주장했습니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AN) 선임국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백 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 즉 회귀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코로나를 명분으로 이를 관람(wait and see)’했다고 말했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는 역설적이게 2021년 키워드로 ‘희망’을 꼽았습니다.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책, 비핵화, 남북한 통일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우리는 희망으로 북한과 관여하는 노력을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며, 아울러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어떤 압력이나 전략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