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가공제품, 액화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는 독자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담화를 통해 "러시아 석유와 가스는 더 이상 미국 항구에 허용되지 않는다"며, 이번 조치가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수단에 강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해 유럽과의 단합된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한 뒤, "미국이 에너지 수출국이라서 독자 제재에 나설 수 있었다"며, "유럽 동맹국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이해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미국은 유럽 전체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원유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유럽과 다른 상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지키는데는 비용이 따른다"면서, 이번 조치가 미국 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예고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군대를 집결시킨 이후 미국 주유소에서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평균) 75센트 올랐다"며, 이번 조치로 더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기름값이 오르는데 대한 미국민들의 양해를 구하면서, 이런 상황을 틈타 정유사 등이 폭리를 취해선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영국 부분 동참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에서 러시아산 비중은 지난해 미 에너지정보국(USEIA) 통계 기준으로 3%입니다.
이보다 훨씬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은 선뜻 이번 조치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으나, 영국은 천연가스를 빼고 원유만 수입 금지하는 조치로 합류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날(8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담화 직전,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가공제품 등 수입을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7일) 백악관에서 화상으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관련 사안을 논의했습니다.
■ '전투기 간접 지원' 논의
이런 가운데, 서방 측이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간접 지원하는 방안도 진전되고 있습니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8일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폴란드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폴란드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 6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전투기 문제와 함께, 그 지원이 이뤄질 때 공백을 우리가 어떻게 메울지 적극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고 우크라이나의 이웃나라인 몰도바 방문 현장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미그-29를 지원하면, 미국과 동맹국들이 폴란드에 F-16을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옛 소련 무기 체계에 익숙한 공군 조종사들이 미그기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오래된 미그기를 우크라이나에 넘겨주는 대신 미국산 F-16으로 공군 전력을 보강할 수 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시급한 지원 사항으로 전투기 제공과 함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 거듭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미국 주도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측이 거부한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측은, 전투기 간접 지원 역시 "전투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난 6일 이고르 코나셴코프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경고했습니다.
■ 민간인 대피 통로 12시간 운영
러시아 국방부는 8일 오전, 우크라이나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 제2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 북부 도시 수미, 남동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 등 네 곳에서 민간인 대피로를 열겠다고 공식 보도문을 통해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측의 이리나 베레슈크 부총리는 이날 일부 지역에서 일시 휴전하고, 민간인 대피를 진행하기로 러시아 측과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지역 당국에 따르면, 이 가운데 수미 지역을 출발해 남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폴타바로 이어지는 이동로는 크이우 시간대 기준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열 두시간 동안 운영됐습니다.
우크라이나 북쪽에 있는 수미는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지역으로, 러시아군의 공세가 집중된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대피로 개설 직전 러시아군이 수미 지역의 주택가를 공습해 2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수도 크이우에 가까운 이르핀에서도 대피로가 운영됐습니다.
우크라이나 측은 전날(7일) 벨라루스에서 진행한 정전협상 3차 회담에서 민간인 대피 사안에 관해 "작게나마 긍정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3차 정전 회담 "긍정적 진전"...러시아, 미국·한국 '비우호국가' 지정앞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지난 3일 진행한 정전협상 2차 회담에서 '인도주의 통로'를 설치하고, 통로 주변에서 일시 휴전하는데 합의했으나, 5일과 6일 포격 등이 계속되며 민간인 대피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7일 또 한차례 인도주의 통로 운영을 시도했으나, 우크라이나 측이 운영 불가를 통보해 또다시 무산됐습니다.
러시아 측이 설정한 통로들의 목적지 대다수가 러시아, 또는 러시아 동맹인 벨라루스로 향하는 점을 우크라이나 측에서 문제삼았기 때문입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근거로, 러시아가 인도주의 통로 운영에 합의한 것은 "TV 카메라를 향한" 선전용이라고 이날(7일) 비판했습니다.
■ 젤렌스키 "러시아군, 대피로에 지뢰 매설"
젤렌스키 대통령은 7일 밤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연설에서 "인도주의 통로에 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과연 작동했느냐"며 "작동한 것은 러시아의 탱크, 다연장 로켓포, 지뢰"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포위당한 마리우폴에서 인도주의 통로로 채택된 도로에 러시아군이 지뢰를 매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민간인이 탑승할 버스 여러 대를 러시아군이 파괴했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덧붙였습니다.
이날(7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세르히 키슬리차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군이 인도주의 통로를 이용하려던 민간인과 차량들을 공격했다"고 말했습니다.
■ '지뢰 매설' 국제구호단체 확인
국제구호단체들도 이같은 사실을 잇따라 확인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이날(7일) BBC 방송 인터뷰에서, 마리우폴 일대 민간인 대피 예정 경로에 지뢰가 깔려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적십자 관계자 BBC 인터뷰
한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이날(7일) 영상 연설은 지난달 24일 개전 이후 처음으로, 수도 크이우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진행됐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동안 집무실 밖 시설에서 주요 언론과 인터뷰하고 대국민 연설을 하는 등 메시지를 내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군 침공 후) 12일째 우리는 투쟁을 하고 있으며 나는 크이우에 있고,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방어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나는 숨지않고, 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발언은 외부에 망명정부 수립을 돕겠다는 서방측 제의를 거절하고, 크이우에 남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으로 풀이됩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주요 정보당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제거 목표 1순위로 지목돼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본인도 앞서 미 의회 등 서방 지도자들에게 "내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며 지원을 호소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미 의원들 화상 통화젤렌스키 대통령은 8일 영국 하원을 상대로 화상 연설을 통해 항전을 다짐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지지를 요청했습니다.
■ 러시아군 진격 '정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13일째인 8일, 주요 도시에 공세를 계속했습니다.
수도 크이우와 제2 도시 하르키우, 체르니코프, 수미 등지에 러시아군이 포격을 진행 중이라고 우크라이나군 합동참모본부는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들 거점 도시들을 접수하기 위한 러시아군의 진격은 더뎌진 상태입니다.
미 육군 고위 정보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서 "러시아군 행렬이 며칠째 전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보급 등의 문제가 관측되고 있다"고 이날(8일) VOA에 설명했습니다.
또한 서방에서 지원한 대전차 무기 등을 우크라이나군과 지역 방위대가 효율적으로 활용해 러시아군 진격을 막고 있다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 당국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러시아군 비탈리 게라시모프 소장을 하르키우 인근에서 사살했다고 전날(7일) 발표했습니다.
지난달 24일 개전 이후 러시아군 장성급 사망은 안드레이 스코베츠키 소장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우크라이나군 합참은 아울러, 러시아군 핵심 부대의 대대장급 지휘관 2명도 사살했다고 소셜미디어에 게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군이 확실히 장악했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지난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름반도(크림반도)와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인 동부 돈바스 이외에, 남부 도시 헤르손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북부 체르노빌과 남동부 자포리자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등을 점령하고, 하르키우의 핵 연구시설 등을 공격하며 방사능 누출 위험 등에 관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웠습니다.
같이 보기: 미 "핵재앙 가까스로 모면"...러시아군, 유럽 최대 우크라이나 원전 점령이밖에 흑해 연안 항구 도시 오데사에 러시아군 공격이 임박했다고 지난 6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말한 바 있으나, 미 당국은 관련 징후를 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