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당국은 대외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면서 대내적으로는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부 도움 없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왜 자력갱생을 강조하는지, 또 이게 가능한 것인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달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로 ‘자력갱생’에 기초한 국방력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지난 27일자 1면에 실은 ‘정론’에서 화성-17형을 ‘자력갱생의 창조물’ 로 묘사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닙니다. 북한은 지난해 1월 8차 노동당 대회부터 모든 관영매체를 동원해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보급하고 있는 ‘자력갱생 기치 높이 우리는 나간다’란 제목의 노래입니다.
[녹취: 중방] ”우리당 펼친 자력갱생 기치 드높이 5개년 고지 앞당겨 가자…”
북한 수뇌부는 지난해 1월부터 자력갱생 노선에 기초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놓고 계획 완수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지난해부터 10여 차례 정치국 회의와 전원회의, 그리고 강습회를 잇따라 열어 자력갱생과 경제계획 완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추진하는 자력갱생 노선에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3월 16일 완공을 앞둔 평양 외곽의 송신, 송화 지구 주택 1만 가구 건설현장을 시찰한 자리에서 4월15일 '태양절'까지 주민들이 집들이를 할 수 있도록 공사를 마무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미국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 교수는 군인들과 자체 자재를 동원해 건설 분야에서는 성과를 거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 ”North Korea always good at building,concrete, bibuilding…”
농업은 현상유지를 하는데 그쳤습니다.
한국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469만t의 곡물을 생산했습니다. 이는 전년도 보다 29만t 정도 증가한 것이지만 북한의 곡물 수요량인 550만t과 비교하면 여전히 80만t 정도 부족한 수준입니다.
자력갱생의 가시적 성과는 거기까지입니다. 나머지 북한 경제를 떠받치는 무역, 철강, 화학, 경공업, 장마당은 성과가 없거나 오히려 뒷걸음쳤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지난해 무역은 3억1천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무역액(27억8천만 달러)에 비해 90% 가까이 줄어든 겁니다.
또 올 1월과 2월 북한의 수출은 각각 1천800만 달러와 200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철강 생산도 부진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철강 생산을 늘리기 위해 김책제철소와 황해제철소에 ‘산소열법 용광로’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신문’ 어디에도 용광로가 설치됐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계류 수출을 금지하는 대북 제재로 인해 새로운 용광로 설치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자력갱생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화학공업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북한이 말하는 화학공업은 ‘탄소하나공업’을 말하는 것으로, 석유 대신 석탄을 가스화시킨 다음 이를 분해, 처리해 에틸렌, 프로필렌, 아크릴 등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석유 대신 석탄에서 제품 원료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탄소하나공업은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은 북한이 이 사업을 추진하다가 기술적 난관에 봉착한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탄소하나공업을 지난해까지는 굉장히 강조했는데 올해 보도문에 없다는 것은 탄소하나와 관련해 목표를 접지 않았나 보여집니다.”
비료 생산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료를 생산하려면 ‘나프타’같은 기초 화학제품을 수입해 이를 가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흥남비료와 남흥청년화학은 나프타 수입이 줄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2020년 5월 김정은 위원장이 준공테이프를 끊은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도 기술적 문제로 인해 정상가동이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공업을 비롯한 제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연필과 물감같은 학용품과 의류, 식품, 당과류 등을 생산하는 공장이 돌아가려면 중국에서 부품과 함께 플라스틱, 설탕, 밀가루같은 원부자재가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나 2020년 1월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원부자재 수입이 줄거나 끊겨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은 공장이 돌아가려면 기계 부품이 원활히 공급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애로가 많다고 말합니다.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조충희] ”자력갱생 이라면 순국내 자재가 70% 돼야 하는데, 나머지 30%가 수입인데, 중요한 게 부품이거든요, 경공업 부문도 도색, 물감 이런 분야에서는 자력갱생은 불가능하다.”
북-중 국경 봉쇄로 원부자재가 들어오지 않자 공장들은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노동신문’ 등에 따르면 공장과 작업반은 ‘재자원화’라는 명목으로 고철, 파지, 폐비닐, 폐유리, 구리, 알루미늄, 신발 밑창에 이르기까지 모든 폐기물을 수거해 다시 물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내세우는 ‘자력갱생’이 일종의 경제적 고육책이라고 말합니다. 원부자재를 더 이상 수입할 수 없게 됐지만 그렇다고 공장 문을 닫을 수 없으니 폐자재를 활용해 억지로 공장을 돌린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내세우는 ‘자력갱생’이 선전 차원 외에는 별 효과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북한이 자력갱생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 think it reflects the fact that they're struggling with a very difficult situation. And it's a complicated situation to deal with”
자력갱생은 경제 문제일뿐 아니라 북한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당국이 물가를 비롯한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자력갱생을 강요하는 데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시 탈북민 조충희 씨입니다.
[녹취: 조충희 씨] ”지금의 자력갱생은 국가가 대주지 않고 자체적으로 살라는 것인데, 자력갱생을 하루이틀 들은 게 아니라서, 불만이 많고, 잘 듣지를 않아요, 회의적인 태도죠.”
전문가들은 또 북한이 올 1월부터 12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자력갱생을 비롯한 경제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김정은 위원장 집권 10년에 내세울 수 있는 경제적 성과는 없다고 봐야 하고 오히려 후퇴를 했고, 그렇기 때문에 군사 부문에 집중하고 있고, 송신 송화지구, 열병식, 정찰용 인공위성 정도, 이 정도로 업적을 과시하려 할 것인데, 어느 경우든 경제적 성과는 보여주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중 국경 봉쇄가 2년 넘게 계속되면서 북한 경제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자력갱생’외에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수뇌부가 언제쯤 실질적인 경제난 해결책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