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박정천 당 비서가 서욱 한국 국방부 장관의 '사전 원점 타격' 발언을 문제 삼아 한국을 위협하는 담화를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크게 올라간 상황에서 북한이 대남 도발에도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3일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지난 1일 한국 국방부 장관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망발을 내뱉으며 반공화국 대결 광기를 드러냈다”며 “한국은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가 함부로 내뱉은 망언 때문에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그러면서 “한국 군부가 북한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도발적인 자극과 대결 의지를 드러낸 이상 위임에 따라 엄중히 경고하겠다”며 “한국에 대한 많은 것을 재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부부장이 ‘위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담았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 부부장은 또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지칭하며 “핵 보유국을 상대로 ‘선제타격’을 함부로 운운하며 저들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을 망솔한 객기를 부린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군과 군수 담당인 박정천 노동당 비서도 별도 담화를 내고 “군을 대표해 한가지만 명백히 경고하겠다”며 “만약 한국 군이 그 어떤 오판으로든 북한을 상대로 선제타격과 같은 위험한 군사적 행동을 감행한다면 가차 없이 군사적 강력을 서울의 주요 표적들과 한국 군을 괴멸시키는데 총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 비서는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을 제외한 군부 최고 서열 인사입니다.
앞서 서욱 장관은 지난 1일 열린 한국의 육군 미사일전략사령부와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 개편식에서 “미사일 발사 징후가 명확할 경우에는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 시설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사일 징후시 원점 정밀타격 방침은 북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군의 ‘핵, 대량살상무기(WMD) 대응체계’를 구성하는 ‘전략적 타격체계’의 일환으로 남북협력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 들어 국방부 장관이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대남, 대미 외교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를 낸 것은 지난해 9월 25일 이후 약 반년 만입니다.
특히 북한 최고위층 차원의 이번 담화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면서 모라토리엄을 파기해 한반도 긴장이 급상승한 상황에서 나온 겁니다.
문홍식 한국 국방부 부대변인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 측 담화에 대해 “육군 미사일전략사령부와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의 개편은 북한 미사일 능력 증대에 대해 한국 군의 대응체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국가안보와 국민 보호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서 장관의 발언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정당한 대응임을 강조한 겁니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도 이날 “북한이 한반도에 추가적인 긴장을 조성하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한다”며 “북한이 긴장과 대결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올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이번 담화를 통해 향후 한국과의 대결 구도를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서 ‘한국에 대한 많은 것을 재고하겠다’는 대목에 주목하면서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박 교수는 담화가 향후 대남 도발의 명분을 쌓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며 군사합의 파기가 북한에 불리한 측면이 있지만 대미 ‘벼랑끝 전술’이라는 큰 틀에서 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깸으로써 얻을 것도 있지만 잃을 것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북한은 한 걸음에 그냥 버리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9.19 군사합의를 깨는 것은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는 벼랑 끝으로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가능성을 빼고 얘기하긴 어려워요.”
박 교수는 또 대남 도발은 미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이 보다 안전하게 대미 압박용으로 활용해 온 카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북한이 비무장지대에서의 위협 행위 등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다만 북한이 당장 9.19 군사합의를 전면 파기하기엔 자신들에게도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파기를 위협하는 수준의 행보를 보이면서 상황을 지켜보려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이 나서서 깨게 되면 MDL 인근에서의 대규모 군사행동, 항공기 정찰 이런 것은 북한이 능력이 안되거든요. 예를 들면 확성기 방송 이런 것은 북한이 굉장히 피곤해하는 일이거든요. 아마 깨더라도 부분적으로 깨지 전면 파기다 이렇게 하기는 쉽지는 않을 거에요.”
담화는 또 다음달 출범하는 한국의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경고메시지도 담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전문가들은 미-한 동맹 강화와 원칙적인 대북정책을 표방하며 문재인 현 정부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앞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강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전략적 수싸움을 하고 있는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앞세워 한국의 새 정부가 자신들의 대미 전략에 방해요소가 되지 않도록 미리 엄포를 놓고 있다는 겁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미국하고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해서 우선 강하게 대응하고 나오면 또 미국 입장에 동조해서 나오면 아무래도 북한으로선 미국과 직접 협상하기 위한 그런 기회가 많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측면도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이 두 담화를 대내 매체인 ‘노동신문’에도 실은 데 대해, 한반도 긴장 고조 국면에서 주민결속을 위한 위기감 조성과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 고취 차원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내부매체에 실은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김정은 중심으로 한 체제결속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을 한 거에요. 다시 말하면 남측에 향해선 경고를 하고, 협박을 하고 내부적으론 우리 지도자가 미리 대응을 잘 하고 있다, 확고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한편 한국 통일부는 김여정 부부장 등이 3일 대남 비난 담화를 내놓은 가운데 4일 남북 간 통신선은 정상적으로 가동됐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