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나포됐던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에 대한 23억 달러의 배상 판결문이 지난해 북한 외무성으로 보내졌지만 1년 만에 반송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에 우편물을 전달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워싱턴 DC 연방법원 사무처는 북한 리선권 외무상을 수신인으로 한 푸에블로호 관련 판결문이 되돌아왔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연방법원은 지난해 2월 판결을 통해 북한 정권이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들에게 약 23억 달러를 배상할 것을 명령했으며, 같은 해 4월 12일 법원 사무처는 승조원 측 요청에 따라 해당 판결문과 한글 번역본 등을 북한 외무성으로 보냈습니다.
같이 보기: 푸에블로호 23억 달러 배상판결문 북한으로 보내져하지만 약 1년이 지난 이달 4일 해당 우편물이 미국 연방법원으로 반송되고, 법원 사무처는 지난 14일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해 재판부에 보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 소송 관련 내용을 피고인 북한에 공식 송달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미국 연방법은 소송에서 승소한 원고가 피고의 자산 추적 등 배상금 회수 노력에 착수하기 전에 해당 판결 내용을 피고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미국인 등은 북한이 판결문을 수신한 사실을 근거로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피해기금(USVSST Fund)’을 신청해 왔습니다.
특히 이들 미국인은 북한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승소 판결문을 받았을 때 관련 내용을 평양에 사무소를 설치한 국제우편물 서비스 업체 ‘DHL’을 통해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 DHL이 유엔 업무 등 외교 목적이 아닌 우편물에 대해선 북한 운송 서비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우체국이 북한으로 법원 문서를 보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창구로 남게 됐었습니다.
이에 따라 푸에블로호 승조원들도 우체국을 통해 승소 판결문을 보냈지만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1960년대 북한에 나포됐다 풀려난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유족 등은 억류 기간 동안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피해 등을 북한이 배상해야 한다며 2018년 2월 소송을 제기했으며, 재판부는 북한의 무대응에 따라 약 3년 후인 지난해 2월 원고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미국인이 북한에 법원 문서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북한 납북 피해 유족인 김동식 목사의 부인과 딸, 그리고 북한에 2년 넘게 억류 피해를 입었던 케네스 배 씨 등도 2020년 8월과 9월 각각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뒤 미국 우체국을 통해 소장을 보낸 상태지만, 북한이 이를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같이 보기: 케네스 배 소장, 북한 송달 실패…3주 만에 워싱턴 되돌아와이에 따라 김동식 목사 유족 측 변호인은 지난해 미국 국무부를 통한 ‘외교적 경로’를 이용해 북한에 소장을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인은 12일 재판부에 보낸 문건을 통해 아직 국무부가 김동식 목사의 유족이나 미 법원 사무처에 외교적 절차가 끝났다는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며, 여전히 북한에 소장이 전달되지 못한 상황을 알렸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오는 8월까지 김동식 목사의 유족 측이 피고 즉, 북한에 소장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현황과 추가 절차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만약 이 시점까지 소장 송달이 이뤄지지 않고 대안도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번 소송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같은 판사가 케네스 배 씨의 소송을 맡은 점으로 볼 때 배 씨 측에게도 조만간 동일한 명령이 내려질 수 있고, 이 경우 북한을 상대로 한 다른 미국인들의 추후 소송에도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미국 연방법은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외국주권면제법(FSIA)’을 근거로 북한과 같은 ‘테러지원국’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