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5일 일으킨 미사일 도발에 대해 또 다시 침묵을 지키면서 그 배경을 둘러싼 여러 관측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다른 한편으론 7차 핵실험 준비 동향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는 양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대내외 관영매체들은 26일, 전날 발사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일절 보도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25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과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3발을 섞어 쐈습니다.
북한은 통상 미사일 발사가 실패하지 않으면 이튿날 관영매체를 통해 전날 발사의 성격을 규정하고 평가하는 기사와 사진을 공개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달 들어선 발사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과 7일, 12일에 각각 ICBM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즉 SLBM, 그리고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를 쏘고도 이후 관련 소식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발사는 군사기술적 수요와 대내외 정치적 고려가 함께 작용되는 것이며 발사 보도는 군사기술적 수요보다는 정치적 셈법이 좀 더 크게 고려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 대내적 상황에 대한 자체 평가에 기인한다고 추정된다”며 다만 평가 내용을 예단하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침묵이 대내외 정세나 평가와 관계없이 자신들이 수립한 국방력 강화 계획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자위권적 차원의 일상적인 군사행동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려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무기 개발을 통한 국방력 강화를 김정은 국무위원장 업적으로 포장해 선전해 온 북한이 이달 들어 갑자기 행동패턴을 바꾼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통해 원하는 만큼의 대외적인 메시지 효과는 이미 거둔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며, 지난달 말께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에 따른 내부 통치 차원에서 관영매체 보도를 단속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5월 4일, 7일, 12일 발사 때도 이미 공개를 하지 않는 패턴을 유지했고요. 그 당시에 코로나가 이미 내부적으로 발병해서 사실상 굉장히 엄중한 사태로 인식해 가는 과정이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국내 주민들에게 한쪽에서 태연하게 미사일을 쏘는 것을 선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판단됩니다.”
전략무기로 분류되는 ICBM이나 SLBM 등의 전략적 모호성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전략무기는 제원이나 성능 등이 불분명하고 모호해야 상대가 위기감을 더 크게 갖기 때문에 그런 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일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이 뚜렷한 기술적 진전이 없는 시험발사를 놓고 굳이 매체를 통해 보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북한이 최근 발사한 ICBM들은 최대 사거리 또는 고도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지난 3월 16일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발사 땐 발사 초기 단계에서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부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양욱 부연구위원]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보도하는 가장 기본적인 건 뭐냐 하면 일단 기술적 진전이 있었을 때 보도를 합니다. 기술적 진전을 확실하게 제시하기 애매할 땐 보도하지 않는 경향들이 있고요. 개발 단계 과정일 때 그걸 보도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이런 가운데 미-한 당국은 북한의 7차 핵실험 준비 동향들을 지속적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안보실 김태효 1차장은 25일 언론브리핑에서 “풍계리 핵실험장과 다른 장소에서 7차 핵실험을 준비하기 위한 핵 기폭장치 작동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이 탐지되고 있다”며 “하루 이틀 내에 핵실험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그 이후 시점에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기폭장치는 핵실험 과정에서 핵분열 용도로 쓰입니다. 기폭장치 실험은 실제 핵실험을 했을 때 고폭장약이 잘 작동되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그동안 6차례 핵실험을 한 북한이 또 다시 기폭장치 실험에 나선 것은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새롭게 설계된 기폭장치를 테스트하는 과정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북한이 핵무기 기폭 실험을 재개한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지금까지 시험한 핵무기보다 더 큰 폭발력을 갖는 신형 전략핵을 개발하려는 의도일 수 있고요. 아니면 핵무기를 소형화하기 위해서 기폭장치의 무게와 크기를 줄인 신형 전술핵 탑재용 기폭장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25일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기폭장치 실험이 7차 핵실험 징후냐는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예년의 경우에도 이런 실험이 진행됐을 때 바로 핵실험으로 이어지지 않은 전례가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지속해서 가동 중이고 일부 확장되는 정황까지 포착됐습니다.
25일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38노스’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촬영된 상업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영변 5MW 원자로가 계속 가동 중이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등 핵물질 생산을 계속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당 기간 원자로와 사용 후 연료 저장시설 주변에서 평소보다 많은 수의 차량이 관측됐습니다.
또 경수로 인근 남쪽 지역에 3층짜리 새 건물이 지난해 말 완공된 데 이어 바로 인근에 또 다른 2층짜리 건물이 완공 직전이고 세 번째 건물도 건설 중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북한이 관련 동향을 의도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핵실험은 북한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전세계에서. 그렇기 때문에 핵실험을 다시 한다면 전세계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는 거죠. 얼마든지 기만행위로 가리려면 가릴 수 있는데 이런 걸 보여주는 것은 예고편처럼 해서 결정적 효과를 노리는 북한의 전형적인 선전선동술이죠.”
한국 군 당국은 앞으로 북한의 도발 양상과 위협 수준에 따라 미-한이 적절한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26일 언론브리핑에서 “영변 등 핵 관련 시설의 동향을 면밀히 추적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