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이라크 정국 혼돈

이라크의 무크타다 알사드르 추종자들이 지난달 29일 수도 바그다드 시내 외국 공관들이 들어서 있는 '그린존' 인근에서 시위하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이라크 최대 정파 지도자의 은퇴 선언에 유혈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이라크 정국이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한때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정권 축출 후 계속되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혼돈에 빠져 있는 이라크의 정치 상황 살펴보겠습니다.

“갈등과 반목의 역사”

이라크는 인류의 4대 고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동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곳에 있습니다. 그만큼 오랜 역사와 문명을 자랑하는 서아시아의 국가입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라크는 갈등과 반목의 역사로 점철됐습니다.

1차 대전 후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이라크는 1932년 독립을 선언하고 왕정을 수립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혁명이 일어나 1958년에는 공화정이 들어섰는데요. 이후 사담 후세인으로 대표되는 독재 정권의 폭정과 미국의 침공, 종파와 종족 간 갈등이 계속되면서 이라크의 역사는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종파 간 갈등”

이라크의 오랜 반목과 대립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의 종파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 두 종파로 나뉘는데요.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은 약 18억 명이며, 이 가운데 90% 정도가 수니파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수단, 알제리, 모로코, 이집트 등 대부분의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은 수니파가 80%~99%인 수니파 국가들이고요. 반면 이란은 시아파가 92% 넘는 시아파 국가입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대개 어느 한 종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종파 간 분열이나 갈등의 소지는 덜 한 편인데요. 그런데 이라크는 압도적 종파라고 하기에는 약한 구조입니다.
이라크는 수니파 약 32%, 시아파 67% 정도입니다. 반면 권력은 소수인 수니파가 오랫동안 잡으면서 종파 간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에 의해 축출된 전 독재자 사담 후세인도 수니파입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후 지금까지 들어선 정부는 모두 시아파 정부들입니다. 그러자 기존에 권력을 누렸던 수니파가 거세게 반발했고요. 이런 혼란을 틈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같은 테러 조직도 출현했습니다.

여기에 이라크의 지리적 위치는 이런 혼란을 더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남쪽에,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서쪽에 국경을 접하고 있어, 천 년 넘게 이어온 두 종파 간의 갈등이 이라크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형국입니다.

“정당의 난립과 이합집산”

이라크는 지난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축출된 후 미국의 정치제도와 선거제도를 도입했는데요. 이후 수많은 군소 정당이 난립했습니다.

후세인 정권 당시에는 ‘바트당’의 일당 독재였는데요. 후세인 축출 후에는 무려 250여 개의 등록 정당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제대로 운영되는 정당은 몇 안 되고요. 이념이나 색채가 비슷한 정당이나 정파, 종족 간 연합 정파를 이루는 경향이 굳어졌습니다.

현재 이라크의 주요 정파로는 ‘알사이룬’과 이라크에서 가장 오래된 시아파 정당인 ‘다와당’을 중심으로 한 ‘법치국가연합(SLC)’, 친이란 정파인 ‘조직의 틀’과 수니파 중심의 ‘진보연합’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활발히 활동하는 10여 개의 이라크 정당들은 선거나 현안이 있을 때마다 이해에 따라 여러 군소 정당들과 연합해 새로운 정파를 만들기도 하고, 다시 또 갈라지며 이합집산해왔고요. 이는 이라크 국민들이 정치를 이해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깊어지는 정국 혼란”

이라크는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5번의 총선을 치렀는데, 모두 시아파 정당들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시아파와 수니파의 뿌리 깊은 대립에 이라크의 또 다른 세력인 쿠르드족까지 아우르는 국정 운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새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을 등에 업은 친이란 정당들의 득세는 이라크 정치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실업 등 민생고에 시달린 국민들의 불만도 계속 고조됐는데요. 결국 지난 2019년에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이는 유혈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분노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라크 정부는 지난해 조기 총선을 치렀습니다. 이 선거에서 시아파 성직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알사이룬 정파가 73석을 얻어 원내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전체 의석이 329석이기 때문에 과반이 못돼 내각 구성을 위해서는 다른 정파와의 연합이 필요했는데요. 친이란 정파의 결과불복과 시아파 정당들의 의견 대립 등으로 총선을 치른 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정부 구성을 하지 못하면서 정치, 사회적 혼란은 물론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라크는 석유 생산국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부정부패와 외국과의 전쟁 등으로 산유국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왔고요. 반복되는 정국 혼란은 이라크 경제에 늘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알사드르의 정계 은퇴 선언”

지난 8월 29일, 알사이룬을 이끌고 있는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강경 시아파 성직자인데요.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후 ‘메흐디군’이라는 민병대를 창설하고 미군과 정부군에 대항하면서 주요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알사드르는 지난 20년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며, 반미∙반외세를 주창해왔는데요. 알사드르가 주도한 알사이룬 정파는 지난 2018년 총선 때 처음으로 제1당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오히려 의석을 더 추가하며 압승을 거뒀는데요. 하지만 1년 넘게 정부 구성을 하지 못하자 알사드르 측은 지금 의회를 해산하고 친이란 정파를 제외한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알사드르가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한 건데요. 그의 은퇴 선언 후 알사드르 지지자들과 친이란 정파 지지자들 간에 유혈 충돌이 벌어져 2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이라크 정국은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냉전 종식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입니다.

8월 30일, 구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의 중앙임상병원에서 오랜 지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향년 91세였습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31년 소련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소련의 국력이 쇠할 무렵이던 1985년 3월, 소련의 최고 지도자 자리인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에 올랐는데요. 그러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으로 소련의 정치와 경제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그의 이 같은 행보는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구권 국가들의 탈 공산화, 소련의 해체와 냉전 체제 종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면서 해빙의 물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몰타에서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합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90년 소련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폐지하고 대통령 간선제를 도입합니다. 그리고 인민대표회의를 통한 이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그해 3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1년여 만인 1991년 8월, 공산당 강경 세력의 쿠데타로 밀려날 위기에 처하는데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저지하면서 다시 복직합니다. 하지만 옐친 대통령은 이미 소비에트연방의 실권자로 떠올랐고요. 결국 같은 해 12월 소련의 공식 해체와 함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군축과 냉전 종식을 이끈 공로로 1990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서방에서는 40년 넘게 닫혀 있던 소련의 철의 장막을 걷어내고 냉전 종식을 이끌어낸 인물, 현대사의 큰 변곡점에서 세계 평화 정착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우세한 반면, 동구권에서는 소련의 몰락을 초래한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혼돈 속의 이라크 정치 상황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 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