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뉴스 따라잡기] 탈레반 재집권 1년...아프가니스탄의 어제와 오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전투원들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에서 재집권 1년 기념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전투원들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에서 재집권 1년 기념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한 지 지난 15일로 1년이 됐습니다. 탈레반 집권 전 아프간의 상황과 탈레반 재집권 1년을 맞은 아프간의 지금 상황은 어떤지,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어제와 오늘 조명해보겠습니다.

“외세 침략으로 점철된 나라”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거대한 내륙 국가입니다. 중국과 이란, 파키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등 구소련 국가들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인데요. 동서 교역의 요충지에 자리해 오래전부터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왔습니다.

현대사의 대표적인 예로는 1979년 소련 침공을 들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1970년대 초까지는 왕정 국가였는데요. 그 후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소련이 괴리 정부를 세우려고 하면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전쟁은 10년 만에 끝났지만, 이 전쟁의 여파는 2001년 미국에 대한 9.11 테러 공격으로 이어졌고,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을 이야기할 때, 간혹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두 집단은 다른 조직입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둘 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발단이 돼 탄생한 조직이지만, 탈레반은 무장한 정치조직에 가깝고9.11 테러를 감행한 알카에다는 미국 정부가 테러집단으로 지목한 국제 테러조직입니다.

대학생과 지식 청년층이 중심이 된 탈레반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소련에 맞서 저항한 세력이 그 기원이고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오사마 빈 라덴이 조직한 알카에다는 소련 퇴각 후 반미, 반이스라엘을 내세우며 중동 일대에서 테러 공격을 자행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은 물러난 후에도 혼돈과 내전 양상을 보였는데요. 이런 가운데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한 탈레반은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점령지를 빠르게 넓혀가며, 1996년 수도 카불을 장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이라는 이름의 국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탈레반 집권 1기”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 미국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실질 통치했습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는 탈레반 정권을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탈레반 집권 초기만 해도 국제 사회는 탈레반을 크게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간 국민들도 부정부패로 민심을 크게 잃은 민간 정부를 축출하고 들어선 탈레반 정권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점점 더 이슬람 근본주의 성격을 드러내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을 내세워 아프간 국민들의 삶을 억압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왕정 국가이긴 하지만, 아프간은 서구식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여, 청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는 여성들도 많았는데요. 탈레반은 이를 전면 금지할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외부 출입을 할 때는 눈을 제외한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강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어길 시에는 공공장소에서 채찍질하거나 돌로 치는 가혹한 처벌도 불사했습니다. 여성들은 교육을 받거나 직업 등 사회 활동을 하는 것도 전면 금지됐습니다.

탈레반의 탄압은 여성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성들도 수염을 길러야 하고, 외국 음악을 듣다 손가락이 잘리는 처형을 당하는 등 탈레반 치하의 공포정치가 횡행했습니다.

탈레반은 또 문화유산을 마구 파괴해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았는데요. 특히 이슬람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비롯해 아프간 곳곳에 있던 불상을 파괴하는 모습은 국제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9.11 테러와 탈레반 축출”

탈레반은 또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 훈련소와 군사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용인했습니다. 그 결과 알카에다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을 감행해 약 3천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당시 조지 부시 미국 정부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탈레반 정권에 빈 라덴의 신병 인도와 군사 시설 폐쇄 등을 요구했는데요. 하지만 탈레반은 미국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2001년 10월, 주요 나토 동맹국의 지원을 받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요.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습니다.

이후 과도정부를 거쳐 아프가니스탄에 합법적인 정부가 들어섰는데요. 이 기간 탈레반 세력은 파키스탄 등지로 흩어졌지만 일부는 남부 지역을 거점으로 삼고 아프간 정부와 외국인들에 대한 테러 공격을 일삼았습니다.

2007년에는 일단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아프간 남동부 지역에서 탈레반에 납치돼 2명이 살해된 일도 있습니다.

탈레반과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끊임없는 테러가 계속되면서 미국은 병력을 철수하지 못하고 발이 묶여버렸는데요. 2017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내겠다며 탈레반과 직접 협상에 나섰습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의 참여를 거부하는 바람에 먼저 미국과 탈레반이 협상에 나서고, 이후 당사자들인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협상에 임하기로 한 겁니다.

미국과 탈레반은 오랜 줄다리기 끝에 2020년 2월, 협정 체결을 전격 선언했습니다. 골자는 탈레반은 아프간이 테러 분자들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하고, 미국은 이듬해(2021년) 5월 병력을 전면 철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탈레반 집권 2기”

탈레반은 지난해 8월 15일 수도 카불을 함락한 후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통치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들어선 조 바이든 정부는 현실적 이유를 들어 철수 시점을 몇 달 늦춰 8월 31일까지 병력 철수를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하지만 탈레반은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반발하며 5월부터 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급속히 세력을 넓혀가며 8월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했고요. 8월 31일 미군 병력 철수를 끝으로 20년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종료됐습니다.

그러면서 탈레반 집권 2기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요. 다시 아프간을 통치하게 된 탈레반은 집권 1기 때와는 달리 국제 사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보다 포용적이고 인권을 존중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탈레반은 이런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탈레반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샤리아’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며 공포정치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또 여성들의 교육과 취업도 여전히 제한하고, 과거 악명 높았던 ‘권선징악부’를 부활시켜 공개 처형 등 인권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제 사회의 지원이 끊기면서 아프간은 지금 극심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맞고 있는데요. 아프간의 혼란이 계속되면서 미국 정치권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철저한 준비 없이 철군을 서두른 결과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당선인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당선인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케냐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표된 윌리엄 루토 현 부통령입니다.

동아프리카 나라 케냐가 지난 9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 후 큰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케냐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현 부통령인 윌리엄 루토 후보의 승리를 선언했는데요. 하지만 선관위 부위원장과 상대 후보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케냐 대법원이 이의를 받아들여 결과를 번복하면 루토 당선인의 승리는 무효가 될 상황입니다.

하지만, 윌리엄 루토 당선인의 승리가 그대로 인정되면 루토 당선인은 케냐 공화국의 제5대 대통령이 됩니다.

루토 당선인은 1966년생으로 올해 55세입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소 치는 일을 돕거나 도로변에서 닭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교도 맨발로 걸어서 다녔다고 하는데요. 그는 자신의 이런 성장 배경을 부각하며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을 일군 인물로 서민들의 표심을 공략했습니다.

루토 당선인은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성가대 활동을 하는 등 신앙생활을 철저히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는 토론을 좋아했다고 친구들은 회고했습니다.

루토 당선인은 케냐 국립 나이로비 대학교에서 식물학과 동물학을 전공했고요. 식물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1997년 처음 의원직에 도전해 당선된 뒤, 2002년 재선에 성공했고요. 2013년부터 10년 가까이 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루토 당선인은 여러 차례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부정부패 의혹도 있는데요. 2011년 케냐 법정은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뉴욕타임스’ 신문은 루토 당선인을 소개하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수도 나이로비 근교에 헬기장과 수영장을 갖춘 저택에서 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루토 당선인은 지난 2007년 선거 과정에서 인종 폭력을 조장한 혐의로 2013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적도 있는데요. 이 재판은 나중에 기각됐습니다.

케냐는 과거에도 대선 후 큰 후유증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대법원판결로 대선 결과가 뒤집힌 적도 있는데요. 루토 당선인이 공식 취임한 후에도 한동안 케냐 정국은 거센 격랑이 예상됩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탈레반 재집권 1년을 맞은 아프가니스탄의 어제와 오늘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