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지사들, 한국 전기차 투자 유치 적극 나서…전문가들 “미한 경제협력 강화 계기” 

지난달 아시아를 방문한 에릭 홀콤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

미국 주지사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국 전기차 관련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효과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가 활발해지면 중장기적으로 미한 경제 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박승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에릭 홀콤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는 지난달 말 한국을 방문해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 관계자들과 만나 인디애나주에 들어설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관한 구체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인디애나 주지사실은 VOA에 보낸 설명 자료를 통해 홀콤 주지사가 서울에서 진행한 회의들에 만족했다며, 한국과의 협력을 더 강화하는 기회였다고 밝혔습니다.

[인디애나 주지사실] “It was a great opportunity to highlight the alternate energy and EV battery ecosystems we are building in the state.”

이번 방한은 인디애나주가 건설하고 있는 대체 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생태계를 강조할 좋은 기회였다는 것입니다.

앞서 삼성SDI는 다국적 자동차기업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25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2025년 1분기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이 공장은 최대 1천4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전망이라고 인디애나 주정부는 추산했습니다.

애리조나의 더그 듀시 주지사도 이달 초 한국을 찾아 한국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외곽에 14억 달러 규모의 북미 최초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애리조나주는 이에 따라 주 역사상 최초로 한국과 타이완에 해외 무역사무소 설립을 위한 예산을 편성했다며, 올해 말 사무실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애리조나 주지사실] “Arizona’s budget this year included legislation establishing the state’s first foreign trade offices in Taiwan and the Republic of Korea. The offices will launch later this year.”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역시 이달 중 경제 개발협력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미국 개별 주와 한국 기업들 간의 경제 협력이 잇따르는 배경에는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있습니다.

이 법에는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전기차에 세금 공제 방식으로 보조금 7천500달러를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단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차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한국의 전기자동차 및 관련 부품 제조사들은 미국에 생산시설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입니다.

경제·산업 전문가들은 IRA의 여파로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한국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하락할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한 IRA의 효과로 주지사들이 한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면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아시아 경제 전문가인 일라리아 마조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IRA의 취지가 대미 투자를 극대화하는 것인 만큼 기회를 살리는 것은 한국 기업들에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일라리아 마조코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Governors and representatives from the states and definitely from Washington are hoping that they can attract more Korean investment in the US whether or not that was the original plan of the South Korean companies. I think we'll have to see how many of them then take up these opportunities, but the whole point of the IRA is that they're offering many incentives for them to do so.”

한국 기업들이 원래 계획했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미국 주지사들과 주 의원들, 그리고 연방 의원들은 더 많은 한국 기업의 투자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조코 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이 기회를 살릴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IRA는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다양한 유인책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 선임국장은 한국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미국 각주에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공장 설립에 나선 만큼 향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 선임국장] “South Korea is a critical partner for the United States and the transition to electric vehicles. If we look at the broader EV battery market, South Korea is building the vast majority of EV battery plants that are expected to be on line in the United States by 2025.”

한국은 미국이 전기차 시대로 전환하는 데 핵심 파트너라는 것입니다.

스탠거론 국장은 2025년까지 미국에서 가동에 들어갈 배터리 공장의 대부분을 한국이 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IRA가 전기차 시장에서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IRA에 따르면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전기차 최종 생산을 미국에서 해야하는 것과 함께 배터리의 광물 원료 비율이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된 것으로 2023년 기준 40% 이상을 충족해야 합니다.

스탠거론 국장은 이 점이 한국에 유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 선임국장] “One thing to keep in mind is that, the way the legislation is structured, it will most likely keep Chinese battery manufacturers out of the US market. And that is going to be advantageous to South Korea. Not necessarily today, but over the medium to long term.”

IRA 의 구조상 중국산 배터리 제조사들은 미국 시장에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은 아니어도 중장기적으로 한국에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당장 보조금 제외가 단기간 내 한국 전기차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제 무역분쟁을 연구하는 박준의 프린스턴대 국제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은 전기차 같은 신기술 분야에서 ‘선도자’와 ‘추격자’ 사이 단 몇 개월이라도 격차가 벌어지면 따라잡기 매우 힘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준의 프린스턴대 국제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 “That would put them behind two years in the US market because for the first two years that this law is enforced, you will be wiped out essentially, you can't build customer base.”

법이 시행된 후 한국 기업은 미국 내 생산공장을 완공하기까지 약 2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면 고객층을 형성하지 못해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성능의 현대 아이오닉 5와 포드 머스탱 마하 E는 그동안 보조금을 지원받아 4만 달러대에 판매됐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아이오닉5는 계속 보조금을 받는 마하E와 가격 경쟁을 하기가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녹취: 박준의 프린스턴대 국제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 “Because you create a price advantage for your own companies, everything else will be a lot more expensive. If the EVs made in the US in the initial year of the IRA are extremely bad, then maybe they'll offer a different option, but initially the Korean autos will be left out.”

미국이 자국 기업에 가격 우위를 설정해줬기 때문에 다른 제품들은 비싸질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박 연구원은 IRA 시행 첫 해 미국산 전기차의 품질이 정말 형편없다면 한국산 전기차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 전기차가 처음에는 뒤쳐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박승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