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병합 절차를 이번주 시작합니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20일, 우크라이나의 헤르손 주와 루한시크 주 대부분 지역, 그리고 도네츠크 주와 자포리자 주 일부 지역에서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닷새동안 러시아 편입을 위한 주민투표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러시아 매체들에 밝혔습니다.
해당 지역들은 모두 러시아군이 점령하거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통제하고 있는 곳들입니다.
이날 앞서 해당 지역의 친러 당국자들은 '러시아 연방에 합류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일제히 내놨습니다.
볼로디미르 살도 헤르손 주 군-민합동행정위원장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일부, 통일된 국가의 완전한 주체가 되길 바란다"면서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헤르손이 러시아 연방에 편입되면 지역이 안전해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헤르손 주 군-민합동행정위원회는 러시아군이 헤르손 주를 점령하면서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설립됐습니다.
■ '자원부대' 창설 지원 계획도 발표
헤르손에서는 앞서 몇차례 러시아 합병 주민투표가 추진됐으나,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강화되는 등의 사유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같이 보기: 러시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합병 투표 계획 중단..."현재 일어나는 상황 때문"살도 위원장은 이날(20일) "러시아 지도부가 주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이리라 확신한다"며 "결과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가능한 한 빨리 승인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살도 위원장은 아울러, 헤르손 지역에서 러시아의 '특별 군사작전'을 지원할 자원부대 창설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동부지역서도 주민투표 준비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자체 공화국들을 세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도 주민투표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의 알렉산드르 코프만 인민회의 의장은 이날(20일) 데니스 푸실린 DPR 수반에게 러시아와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를 공식 요청했습니다.
코프만 의장은 "푸실린 수반과 의회는 주민투표를 신속히 시행할 수 있도록 역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푸실린 수반은 "돈바스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며 "의회에 관련 법안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DPR 의회는 즉각 주민투표 실시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루한시크인민공화국(LPR) 인민회의도 이날(20일) 레오니트 파세치니크 LPR 수반에게 러시아 편입을 위한 주민투표를 서두를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와 관련, 푸실린 DPR 수반은 파세치니크 LPR 수반에게 러시아 연방에 합류하기 위한 주민투표 관련 절차에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고 러시아 매체들은 전했습니다.
■ 러시아 국가두마 "연방 가입 지역 지지"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의장은 러시아 연방에 가입하는 지역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이날(20일) 밝혔습니다.
볼로딘 의장은 "우리는 상호 원조 협정을 맺은 DPR·LPR 등 공화국들을 지원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어서 지난 2월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DPR·LPR 등 친러시아 분리주의 공화국들을 승인하고, 이들이 우크라이나에 수만명의 병력을 파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20일)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들의 병합 주민투표 결정에 관해 "현재 상황은 그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앞서 이들 지역의 병합을 위한 주민 투표가 11월 4일 실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1월 4일은 러시아가 지난 2005년부터 '국민 통합의 날'로 정해 기념하는 국경일로, 1612년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있던 폴란드군을 몰아낸 날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빠른 이번 주에 절차에 돌입하는 것은 전황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에 대응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북부 전선에서 하르키우 주를 대부분 탈환하고, 남부와 동부에서 헤르손과 루한시크 주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 백악관 "병합 인정 안 한다...조작될 것 모두가 알아"
우크라이나 당국은 주민투표 실시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안드리 예르막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은 이날(20일) 주민투표 결정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위협은 오직 힘으로만 제거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정부도 주민투표 실시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친러 세력의 주민 투표 계획을 "명백히 반대한다"고 말하고 "이런 주민투표가 조작될 것이란 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몇 달간 경고한 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 심지어 현재 장악하지 못한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사기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어서 "이같은 주민투표는 국제체제의 기반이자 유엔헌장의 핵심인 주권·영토보전의 원칙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따라서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더라도 미국은 절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 터키 대통령 "러시아 점령지 우크라이나에 돌려줘야"
이런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튀르키예'로 국호 변경) 대통령은 러시아가 침공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모두 우크라이나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도착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19일 미 공영방송 PBS '뉴스아워' 인터뷰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PBS가 공개한 인터뷰 전체 녹취록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 평화가 이뤄진다면 (러시아가) 침공해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예상되고 기대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며, 관련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에 관해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단계적 조치를 취했다"면서 "우리는 어떤 조치를 밟아왔다. 침략된 땅들은 우크라이나에 다시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크름반도(크림반도)는 러시아가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되냐'는 질문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크름반도를 정당한 주인에게 되돌려주라고 푸틴에게 요청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떤 전향적인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반도를 강제 병합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병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대러시아 제재를 단행했습니다.
터키는 나토 동맹이지만 EU 회원국은 아닙니다.
러시아는 크름반도 병합과 함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 지역들을 영향권에 두면서 올해 2월 24일 전면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20%를 점령한 상태입니다.
■ "푸틴, 전쟁 빨리 끝내고 싶어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중재 역할을 자임해왔습니다.
전쟁 초기였던 지난 3월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정전협상을 개최했고, 7월에는 유엔과 함께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흑해항구 곡물 수출 재개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에 관해 푸틴 대통령과 수차례 통화하고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19일 이란을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함께 시리아 관련 3국 정상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같이 보기: 푸틴 "우크라이나, 합의 이행 의사 없어"지난달 5일에는 러시아 흑해변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과 대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도 푸틴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PBS 인터뷰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푸틴과 같이 있으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아주 광범위한 논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그(푸틴 대통령)는 실제로 나에게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고자 한다는 것을 내비쳤다"면서 "그것이 내가 받은 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돌아가는 모습이 아주 문제 상황이기 때문"이라면서 "당사자 간에 인질(전쟁포로)들을 교환하기로 했으며 상당히 중요한 조치들이 전향적으로 취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덧붙였습니다.
■ 전쟁범죄 관련 사안 유엔 조사 촉구
'최근 러시아군이 퇴각한 지역에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고, 민간인 살해와 고문 정황 등이 드러난데 대해 푸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냐'는 질문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엔에서 밝혀야 할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관련 사안들에 관해 "어느 한쪽의 발표만을 듣고 편들 수 없는 일"이라면서, "유엔 활동으로 (책임 소재를) 파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답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수복한 하르키우 주의 이지움에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된 가운데, 지난 4월초 드러난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 인근 부차 민간인 학살 사건보다 피해 규모가 클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책임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지난 16일, 러시아가 전쟁범죄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같이 보기: 미, 대러 추가 제재 "푸틴, 북한·이란 등 구명줄 잡으려 해"...시신 440여구 집단 매장 "전기고문 등 만행"하지만 러시아 측은 책임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부차 사태 당시와 같은 시나리오"라며, 이지움 일대에서 조성된 환경은 우크라이나 측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