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내 인권 저항 기류…북한인권결의안 파급 효과 주목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에서 주도하는 인권 문제에 대한 강한 저항이 북한 인권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인권결의안과 특별보고관의 보고서 내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예단하긴 이르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근 유럽의 벨기에와 미국 워싱턴을 잇달아 방문한 이신화 한국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12일 VOA에 주요 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기류가 북한인권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중·미러 관계 악화, 지난주 중국 신장 위구르족 인권 침해에 대해 토론하는 방안이 유엔 인권이사회 표결에서 부결된 여파가 유엔총회에 제출될 북한인권결의안에도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대사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할 유럽연합에서도 그런 우려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VOA에 “북한인권결의안 내용이 지난해와 비슷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강력한 내용을 담는다면 컨센서스(합의)가 아닌 표결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과 북한을 두둔하는 중국, 러시아 등이 강력한 내용에 반발해 표결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최근 유엔에선 주요 인권 탄압에 대한 대응 조치에 대해 반대 기류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선 지난 6일 중국 신장에서 발생한 위구르족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 등에 대해 토론하는 방안이 서방국가 주도로 표결에 부쳐졌지만 부결됐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47개 이사국 가운데 미국과 영국, 한국 등 17개국은 찬성했지만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19개국이 반대했고 말레이시아 등 11개국은 기권했습니다.

유엔 인권기구가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통해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침해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많은 나라의 반대로 토론 기회조차 차단된 겁니다.

아프리카는 특히 소말리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사국이 중국을 지원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중국이 경제를 지원하는 약소국가들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입니다.

[녹취: 코헨 전 부차관보] “China has gone to African countries with loans and with infrastructure development and with money. And what they ask in return are votes at the United Nations.”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차관과 인프라 개발, 자금 등을 지원하면서 그 대가로 유엔에서의 표결 지원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중국 당국자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지금은 중국이 표적이지만 내일은 다른 개발국이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적극적인 회유와 압박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러시아도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다른 개발국에 표결 지원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주 러시아 정부의 반체제 인사 탄압을 조사하는 특별보고관 임명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7개국, 반대 6개국, 기권 24개국으로 통과시켰습니다.

통과는 됐지만 지난 4월 유엔총회가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시켰던 때와는 온도 차가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약소국뿐 아니라 인도와 파키스탄, 멕시코, 브라질 같은 국가들도 비난보다 건설적 대화가 필요하다며 주요 인권 의제에 대해 기권하거나 반대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엔의 인류 보편적 인권 가치를 중시하는 한국이 11일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연임에 실패하고 인권 탄압국으로 지목받는 방글라데시 등 여러 국가가 이사국에 선출되자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렘코 브뢰커 교수는 12일 VOA에 중국, 러시아, 북한, 시리아 등 비자유 국가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이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인권 유린을 주시하는 유엔 회원국들이 자신들의 인권 상황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 그것은 비난(finger pointing)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브뢰커 교수] “It certainly isn't finger pointing as long as the members who look at the rights' abuses of other countries also critically look at themselves. Toning down such a message is the beginning of the end for serious UN involvement in combatting human rights' abuses.”

브뢰커 교수는 또 인권 탄압국에 보내는 메시지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인권 침해와 싸우는 유엔의 진지한 개입에 종말을 알리는 시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인권 문제에 관한 유엔 내 부정적 기류가 북한인권결의안에 미칠 파급 효과에 관해선 신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기존 결의가 이미 강력하기 때문에 새 결의안 내용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표결 여부는 북중러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코헨 전 부차관보] “It depends how much effort is being put in by the Chinese and North Korean and Russian side to know whether they are going to challenge the consensus vote. Right now it seems highly, like unlikely that they will win that.”

컨센서스가 아닌 표결은 중국, 북한, 러시아 쪽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에 달려있지만 지금으로선 세 나라에 승산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그러면서 과거 표결에서 결의안 반대국이 매우 적어 관련국들이 수치를 당한 이후 표결을 주장하는 나라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은 지난 2015년 마지막 표결을 끝으로 이듬해부터는 표결을 요구하는 나라가 없어 합의, 즉 컨센서스로 채택돼 왔습니다.

북한인권결의안은 2015년 유엔총회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119개국, 반대는 19개국에 그쳤습니다.

브뢰커 교수는 이번 77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합의로 채택되지 않으면 실망스럽겠지만 합의를 위한 약화된 초안보다는 인권 침해에 관한 실증적으로 견고한 결의안을 제출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뢰커 교수] “If a consensus cannot be reached, it would be disappointing but it is significantly better to submit empirically sound draft resolution on rights' abuses than to reach consensus on a watered-down version”

일각에선 결의안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곧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제출한 북한인권상황보고서에도 중국이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전 특별보고관은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행사에서 임기 중 중국 정부로부터 자국 내 탈북민 실태에 대해 문제 제기를 자제해 달라는 요구를 수차례 받았지만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신화 대사는 12일 VOA에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그러나 결의안 등에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 공조의 중요성이 강조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신화 대사] “군사적 문제와 인권 문제는 북한에 굉장히 중요한 동전의 양면 같은 겁니다. 그래서 국제공조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유엔총회에 가면 제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주로 생각이 같은 나라 사람들인데, 그곳에서 생각이 같지 않은 국가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한국에서도 그런 나라 대사관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