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시험발사 도발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또다시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전문가들은 중러의 북한 편들기가 한층 노골화됐다며 이런 구도가 상당 기간 고착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최근 신형 ICBM인 ‘화성-17형’ 시험발사를 한 데 대응해 21일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도발이 미국 때문이라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안보리는 지난 2017년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하면서 북한이 ICBM을 발사했을 때 자동으로 대북 제재를 강화하도록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 결의에는 대북 정유제품의 연간 공급량 상한선인 50만 배럴과 원유 공급량 상한선 400만 배럴을 추가로 감축한다는 구체적인 방향까지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자동 강화’라는 이 규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겁니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대화로 복귀하기 위해 미국이 신의를 보여야 한다”면서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 대사는 또 “안보리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항상 규탄하고 북한을 압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대사도 “미국의 동북아 지역 동맹들과 미국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여 북한이 그에 따라 예상대로 행동한 것”이라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평양을 일방적으로 무장해제시키려는 워싱턴의 욕망 때문”이라고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올들어서만 ICBM을 8차례 발사했습니다. 또 북한 탄도미사일과 관련해 안보리가 소집된 게 올들어 이번이 10번째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지난 2월 올해 첫 ICBM을 쏘면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즉 모라토리엄을 깬 이후 번번이 중러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 대응이 무력화됐다며 중러의 북한 편들기가 한층 노골화하는 양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그나마 쌍중단은 북한 측에 뭔가 행동을 요구한 것이었는데 이번 장쥔 대사 발언을 보면 북한에 대한 요구는 전혀 없지 않습니까. 미국이 연합훈련이라든지 제재를 선해제해야 한다든지 그것은 북한이 2019년 12월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 얘기하면서 적대시 정책의 선철회 없이는 아무런 의미있는 대화할 수 없다고 얘기한 북한 노선에 100% 동조한 것이죠.”
유엔은 앞서 지난 4월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열흘 내 총회를 소집해 관련 사안에 대해 토론을 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의안도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러가 북한의 도발을 계속 감싸더라도 이를 제어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입니다.
천영우 전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하면서 중국이 북한을 전략자산으로 여기는 태도가 확연해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천 전 수석은 중국은 과거 미중 경쟁이 덜 치열했을 땐 북한의 핵 개발이나 ICBM 도발을 미국의 동북아 군비 증강을 유발하는 전략적 부담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를 미국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천영우 전 수석] “지금은 어차피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 봉쇄에 나섰고 전략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됐고 이런 상황에선 지금 저런 북한이라도 미국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로서 유용성이 더 커졌고 또 북한을 끌어 안는 게 앞으로 미국에 대항하는데 방패로서, 미국을 괴롭히는 데 가치를 중시하게 된 거죠.”
천 수석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증폭된 미국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외교적으로 자국을 전폭 지지하고 나선 북한에 대한 편들기에 한층 적극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중국의 경우 북한의 핵 무력 증강을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선에 대응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북 핵 문제가 더 이상 미중 간 협력 분야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홍 실장은 안보리에서 빚어지는 반복된 갈등은 미중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에서의 경쟁과 대치 구도를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라며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장기화하면서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적어도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유엔 안보리가 무기력해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지금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유엔의 권위가 완전히 붕괴되는 시절에 접어든 것 같고요. 그 다음에 아마도 이런 동향이 한미일과 나토와의 협력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유엔 바깥에서 북한 그 다음에 중국에 대한 압력을 넣는 식의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데 얼마나 강하게 실효적으로 형성될지는 두고 봐야 되겠죠.”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도 안보리 차원에서 이뤄지기 힘든 현실을 고려할 때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국가들의 독자제재가 강화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임수석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이와 관련해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독자 제재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중대한 도발을 감행할 경우에 북한의 사이버 활동 관여 인사에 대한 제재 대상 지정, 사이버 분야 제재 조치 부과 등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임 대변인은 추가적인 독자 제재 검토 과정에서 미국, 일본을 비롯한 우방국과 함께 독자 제재의 효과성을 제고할 방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러의 북한 편들기가 공고해지는 양상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 무력 강화를 향한 ‘전력 질주’를 한층 자극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설정한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의 3차년도인 내년에도 추가 핵실험을 포함한 북한의 도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홍민 실장은 북한의 핵 무력 강화는 핵 폭탄과 투발수단으로서의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 개발, 그리고 핵 미사일 운용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한 군 정찰위성 개발 등 크게 세 갈래로 볼 수 있는데 최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포착된 대규모 공사 움직임으로 미뤄 북한이 내년부터 정찰위성 발사에 적극 나설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그냥 일회적인 위성 발사라면 저렇게까지 서해 위성발사장을 리모델링할 필요가 없거든요. 저렇게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한다는 것은 계속 장기적으로 여러 기를 쏘기 위해서 아주 기본적으로 구조를 다시 갖춘다는 얘기를 의미하는 겁니다.”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38노스’는 앞서 지난 17일 위성사진을 토대로 북한 서해 위성발사장의 엔진시험대에서 대규모 공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매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위성발사장을 현지 지도한 뒤 지금까지 로켓발사대 점검, 터널 건축, 발사통제소 철거, 새 시설 건립, 단지 안팎에 새 도로 건설 등이 확인됐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