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국의 북-러  무기 거래설 비난 연쇄 담화…대미 대결 국면 속 러와의 밀착 강화

지난 2019년 4월 북러정상회담이 열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양국 국기가 걸려있다.

북한은 미국이 북러 무기거래설을 폭로하고 우크라이나에 전차 지원 계획을 밝힌 데 대해 고위급 차원의 잇단 비난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와의 무기거래가 기정사실화 되는 데 대한 맞대응과 함께 미국과의 대결 국면에서 러시아를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27일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담화에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차 지원 계획을 강력 규탄하면서 러시아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 즉 참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부부장은 미국이 러시아를 파멸시키기 위한 대리전쟁을 확대해 패권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흉심에 따른 것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김 부부장 담화 이틀 뒤인 29일엔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국장이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권 국장의 담화 또한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차 지원에 대한 규탄을 담았지만 미국 측이 최근 제시한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거래 증거에 대한 반박에도 초점을 맞췄습니다.

권 국장은 담화에서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자작 낭설을 계속 퍼뜨린다”며 “정말로 재미없는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앞서 지난 25일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31대의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보여주는 김 부부장의 담화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에 대한 노골적 지지를 담고 있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한 참호에 서 있겠다’는 표현은 향후 러시아에 대한 군사 지원과 경제협력 등을 공식화할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입니다.

[녹취: 조성렬 교수] “그동안엔 러시아에 탄약을 제공하든 또 여러 가지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을 선언한 도네츠크나 루한시크에 휴전이 되면 북한 건설노동자를 보내겠다 이런 얘기들이 계속 있었는데 지금 ‘한 참호’ 얘기하는 것은 이런 공개적으로 부인했던 부분에 대해서 이젠 노골적을 하겠다 이런 의사로도 볼 수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사회 비난의 대상이 된 러시아를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위성락 전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는 북한은 러시아를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패권적 압살정책 피해자로 여기는 교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상황인식과 함께 치열해지고 있는 미국과의 대결국면 속에서 러시아와 한층 밀착하려는 양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위성락 전 대사]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서 미러 대립이 극적으로 심화됐고 이것은 미중 대립과 맞물려서 결국 미국 서방 대 중러 대립이 됐어요. 이 구도 속에서 북한이 미국과 대결하고 도발을 계속하기 위해서 연대할 상대는 역시 중국과 러시아인데 현실적으로도 이게 필요해서 지금 적극적으로 러시아에 대해서 연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하는 거죠.”

김 부부장의 담화가 동북아에서 북중러 대 미한일 간 신냉전 구도가 본격화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김 부부장이 이전에 내놓은 담화들이 북한과 직결된 문제를 둘러싼 미국이나 한국에 대한 비난 일변도였던 데 비해 이번 담화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 북한 최고위층의 진영 구도를 부각시킨 국제 정세 인식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미국이 “서방나라들은 물론 특등 앞잡이들을 반러시아 전선에 동원하려고 한다”며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비난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당 전원회의에서 신냉전 구도를 공식 언급했지만 이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기 보다는 미국과의 대결구도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의도가 깔린 발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박 교수는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경우에 따라서 미국과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갈 여지가 있다며, 다음달 초로 예정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주목했습니다.

박 교수는 김 부부장의 담화가 이런 유동적인 대외환경을 감안해 국제사회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를 자기편으로 강하게 끌어당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예를 들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했다, 그러면 유엔 안보리가 소집될 것 아닙니까. 거기서 추가 제재를 당연히 논의할 텐데 중국이 기권해버릴 수 있어요. 그런데 러시아가 반대를 해야죠. 그러니까 지금 러시아에 완전히 붙어서 보험을 들고 있다, 김여정까지 나서서 하고 있다는 거죠.”

권정근 국장의 담화에 대해선 미국이 제기한 북러 무기거래설이 기정사실화하는 데 대한 경계심이 크게 작용한 맞대응 차원이라는 관측입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20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 그룹에 무기를 전달하는 정황을 포착한 위성사진들을 공개했다.

미 백악관은 지난 20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돕고 있는 민간용병회사, ‘바그너그룹’에 북한이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며 위성사진 2장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권 국장의 담화가 미국이 제시한 증거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은 들어있지 않다며, 미국 측의 우크라이나 전차 지원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미국이 주도하는 공격용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결국 자신들의 러시아 지원을 정당화사키는 하나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이런 경고를 미리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판단도 들어요.”

박원곤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국제사회와 미국 내 비난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노골화하긴 향후 대미 협상 등을 고려할 때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앞으로도 ‘무기거래설’에 대해 적극 반박하면서은밀한 방식으로 러시아를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