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터키와 쿠르드족 간의 갈등 

1월 21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터키 정부의 쿠르드족 탄압 정책에 항의하고 쿠르드족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터키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다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터키 정부는 스웨덴이 스톡홀름 주재 터키 대사관 앞에서 반이슬람 시위를 허용하고, 자국이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쿠르드족 무장 조직을 비호하고 있다며 제동을 걸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되고 있는 터키와 쿠르드족의 갈등 살펴보겠습니다.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은 역사적으로 오래전부터 중동 메소포타미아 평원과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접경 지역에서 살아온 민족입니다.

오늘날에는 약 2천500만 명에서 3천500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들의 나라를 가져 본 적이 없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2021년 기준 스웨덴 인구가 약 1천만 명, 핀란드 인구가 약 500만 명인 걸 감안하면 소수민족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많은 편이죠.
북한의 인구가 약 2천600만 명이니까 북한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쿠르드족은 현재 터키에 가장 많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터키 거주 쿠르드족은 약 1천400만 명, 이는 터키 전체 인구의 약 18%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란에 약 800만 명, 이라크에 약 500만 명, 시리아에 200만 명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들의 처지상, 정확한 수치를 집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 쿠르드족은 중동 지역을 넘어 그리스, 조지아, 러시아 등 유럽과 일본 등지에도 극소수가 분산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라가 없는 이유”

20세기 초, 많은 식민국이 독립하면서 세계 각지에 수많은 신생 국가들이 탄생했는데요. 당시 쿠르드족도 ‘쿠르디스탄’이라는 이름으로 그들만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이 몰락했는데요. 전쟁에서 이긴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연합국은 1920년 오스만 제국과 영토 분할에 관한 이른바 ‘세브르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조약에는 연합국을 도와 참전했던 쿠르드족에게 독립 국가 건설을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독립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쿠르드족의 꿈은 3년 만에 물거품이 됐습니다.

바로 승전국들이 1923년 스위스 로잔에 모여 세브르 조약을 파기하고, 오늘날 터키의 영토를 결정지은 ‘로잔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이 로잔 조약에는 쿠르드 독립국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이후 쿠르드족은 100년 가까이 나라를 세우지 못한 채 각지에 흩어져 소수민족으로서 존재하게 됐고요.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각국 정부에 의해 강력히 저지돼왔습니다.

“터키와 쿠르드족 간의 갈등”

쿠르드족은 중동 일대 여러 나라에 살고 있지만 특히 터키와 갈등의 골이 아주 깊습니다.

터키 인구의 약 5분의 1을 차지하는 쿠르드족은 꾸준히 분리 독립을 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출범한 터키 공화국은 세속주의 정책을 앞세워, 이들의 언어와 이름 사용을 금지하고 복장을 제한하며 이를 억제했습니다.

결국 이에 반발한 일부 급진주의 쿠르드족이 1978년 쿠르드족의 독립을 천명하는 무장 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을 만들었는데요. 이후 PKK는 주로 터키 남동부와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무장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그러자 터키 정부는 이들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를 강화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이들에 대한 강경 노선은 더 강해졌는데요. 터키 정부와 쿠르드족의 마찰로 쿠르드족의 거점인 터키 남동부 지역에는 수시로 유혈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

지구의 미아, 중동의 집시로 불리기도 하는 쿠르드족은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내전을 거치면서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2003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의혹과 함께,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을 이유로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는데요. 당시 이라크 북부 유전 지역에 들어서 있던 쿠르드 자치정부는 독립을 꿈꾸며 미국을 도왔습니다.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후 터키와 이라크, 이란 등의 반대로 독립하지는 못했지만, 더 많은 자치권을 얻는 데는 성공합니다.

이들은 또 2014년,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에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준동하자 미국과 연합국을 도와 싸우며 세를 과시했습니다.

시리아에서도 2014년 내전이 발발하자 쿠르드족이 결집했는데요.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시리아민주군(SDF)’과 ‘쿠르드민병대(YPG)’ 같은 무장조직을 만들어 IS와의 전쟁을 주도했습니다.

문제는 터키 정부가 YPG를 자국이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연계 세력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터키는 미국이 자국의 안보 위협인 YPG 등 쿠르드족과 협력하는 것에 반발했고, IS 테러 작전에 쿠르드족의 도움이 절실했던 미국과 연합군의 입장을 곤란하게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IS가 패망하고 있다면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결정했는데요. 하지만 이같은 조처는 미군을 도와 최전선에서 IS에 맞서 싸워온 쿠르드족을 버린 것이라는 국내외 비판을 불러왔습니다.

이후 터키 정부는 지속적으로 자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시리아 북동부 지역, 쿠르드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일대에 군사작전을 단행하고 있고요. 인권 단체들은 이들의 인권 상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터키와 나토”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안보 불안을 느낀 북유럽의 오랜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도 서방의 집단군사 동맹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30개 회원국이 만장일치 동의해야 하는데요. 터키가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터키는 스웨덴과 핀란드 정부가 PKK 조직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고 반대하면서 이들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터키 정부는 또 무기수출금지 조처 해제도 요구했습니다. 이 두 나라는 2019년 터키가 시리아 쿠르드 지역을 침공하자 터키에 대한 공격용 무기 수출금지 조처를 단행했었습니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결국 지난해 6월, 세 나라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테러 용의자 신병 인도 등을 조건으로, 터키의 지지 합의를 끌어냈는데요. 하지만 최근 스웨덴 주재 터키 대사관 앞에서 반이슬람 시위가 열린 것을 계기로 터키는 다시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따라 핀란드의 거취도 불투명해졌습니다. 핀란드는 지금까지 스웨덴과 보조를 맞추며 동반 가입을 추진해 왔는데요. 하지만 터키가 다시 제동을 걸자, 페카 하비스토 핀란드 외무장관은 핀란드의 단독 가입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반발 등 논란이 일자 하비스토 장관은 자신의 발언은 정확한 게 아니었다며 진화에 나섰는데요. 앞으로 두 나라가 터키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내 나토에 합류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신임 총리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입니다.

1월 25일 크리스 힙킨스 총리가 뉴질랜드의 41대 총리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힙킨스 총리는 지난 22일 집권당인 노동당의 대표로 선출되면서, 저신다 아던 전임 총리의 뒤를 이어 뉴질랜드의 총리가 됐습니다.

크리스 힙킨스 총리는 취임 첫 일성으로 뉴질랜드의 민생 현안을 최우선 국정 현안으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힙킨스 총리는 뉴질랜드 국민들에게는 친숙한 정치인입니다.

2020년 코로나19 대응정책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당시 아던 총리와 함께 매일 같이 국민에게 코로나 현황을 보고하고 협조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힙킨스 총리는 1978년생으로 44살입니다.

웰링턴 빅토리아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범죄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생 시절, 의회에서 정부의 교육 정책 법안에 항의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적도 있는데요. 그는 10년 넘는 법정 소송 끝에 당국의 사과와 보상금을 받아낸 바 있습니다.

졸업 후 그는 헬렌 클라크 당시 뉴질랜드 총리의 참모 등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2017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 그는 교육장관, 보건장관, 코로나19 대응장관, 공공서비스 장관, 경찰 장관 등을 두루 거쳤습니다.

5선 의원이라는 풍부한 정치 경험과 오랜 내각 경력은 그의 장점으로 꼽힙니다.

힙킨스 총리는 ‘미스터 픽스잇(Mr. Fix-it)’, 즉 ‘해결사’, ‘고치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직접 물건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는 등 손재주가 좋은데다 장관으로 일하면서 능력을 발휘해 얻은 별명인데요. 이제 힙킨스 총리는 오는 10월 총선 때까지 뉴질랜드의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추락하고 있는 노동당 지지율을 반등시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쿠르드족과 터키 관계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신임 총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