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공에 침범한 중국의 ‘정찰 풍선’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중 갈등이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을 외교전략에 활용하면서 도발 위협을 지속하고 있는 북한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정찰 풍선’ 문제로 미중 외교장관 회담이 무산됐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당초 5일부터로 예정됐던 방중 일정 연기를 전격 선언한 직후 진행된 지난 3일 미한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민간용 무인 비행선이라고 주장한 풍선을 ‘정찰 자산’이라고 비판하면서 방중 연기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 기간 중 열릴 예정이었던 미중 외교장관 회담은 미중 패권경쟁이 무력충돌로까지 비화하지 않게 관리하면서 양국의 협력 공간 확대를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회담이 한반도 안정적 관리라는 공통의 이해관계 속에서 핵 무력 증강과 함께 도발 위협을 강화하고 있는 북한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정세에도 긴장을 낮추는 방향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됐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북중관계 전문가인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은 시진핑 국가주석 3연임 확정 이후 중국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 공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던 시점에 ‘정찰 풍선’ 문제가 터졌다고 말했습니다.
전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간 대립을 신냉전 구도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 온 북한 입장에선 미중 외교장관 회담이 연기되고 ‘정찰 풍선’ 문제가 미중 간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는 흐름을 활용하려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전병곤 선임연구위원] “북한 입장에선 어떻든간에 미중간 협력을 하고 특히 협력할 수 있는 사안이 북한 문제, 북한 핵 문제로 만약에 갈 경우 북한 입장에선 아주 곤란한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번에 미중 장관 회담이 연기됐다는 점은 또 한 번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찾았다고 볼 수 있겠고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 정찰 자산의 미국 영공 침해는 지난해 말 북한 무인기 한국 영공 침범과 매우 유사하다며, 미국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여론 악화를 감안할 때 미중 협력 모색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 비핵화와 도발 억제를 위해 필요한 미중 협력의 기회도 일단 날아간 셈이라며, 북한 입장에선 7차 핵실험을 포함해 추후 도발에 따른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중 간 대립이 타이완과 한반도 주변 등 지역에서의 무력 시위로 이어지면서 북한이 이런 국면을 도발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B-1B 전략폭격기와 F-22, F-35B 등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 이례적으로 중국이 민감해 하는 한국 서해 상공에서 한국과 연합공중훈련을 편 시점이 지난달 28일 미측이 중국 정찰 풍선을 처음 인지한 이후라면서, 중국에 대한 경고성 조치였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상황이 미중 간 무력시위로 이어질 경우 이달부터 시작되는 미한 대규모 연합훈련을 빌미로 도발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이 중국 편을 드는 모양새로 상황에 편승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이번 미중 대립 심화를 북한도 나름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어가는 흐름을 보일 것이고 그렇게 보면 강력한 무력시위를 통해서 중국의 심기를 대변하는 가능성도 있어요.”
하지만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미중 갈등 격화가 외교적 선택의 폭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견해도 나옵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결 국면을 장기화할 수 있을 만큼 내구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자칫 미중 대립 구도에 갇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입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이번에 정찰 풍선으로 인해서 미중 외교장관 회담이 무산되고 그것은 협력 어젠다를 넓혀가고자 했던 양국 정책이 한동안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거기엔 북한 문제가 포함돼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김정은은 지금까지 해 온 정책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 한국 정부는 미중 간 갈등 뇌관으로 떠오른 중국 ‘정찰풍선’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우려를 이해하며,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자국 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타국의 영토주권 침해는 국제법상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정부 기본 입장”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또 “중국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제사회에 투명한 방식으로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의 정찰 풍선이 국제법과 주권 침해라는 미국 입장에 힘을 실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민간 장비가 우발적으로 미 영공에 진입했다며 미국의 격추에 항의하고 있는 중국 입장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