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또 다시 군 관련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을 통해 파격적인 사진과 호칭이 공개되면서 ‘김주애 후계자설’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군절을 기념해 7일 딸 김주애와 부인 리설주와 함께 북한 군 장성 숙소를 방문하고 이어진 기념연회에 참석한 사실을 8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 등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가 존경하는 자제분과 함께 숙소에 도착”했다고 밝혔습니다. ‘존경하는 자제분’은 딸 김주애를 지칭합니다.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11월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과 11월 26일 ICBM 개발과 발사 공로자와 기념사진 촬영 행사에 등장한 이후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달 1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과를 보도하며 김 위원장이 김주애와 함께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23을 둘러보는 모습을 공개한 것까지 포함하면 4번째입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1월 김주애를 처음 소개할 당시 ‘사랑하는 자제분’이라 언급했고 두 번째 자리에선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불렀는데, 이번에는 ‘존경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이 이번에 공개한 사진도 파격적인 연출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10대 초반으로 알려진 김주애는 검은색 투피스의 어른스런 차림으로 기념연회 헤드테이블에서 아버지 김 위원장과 어머니 리설주 사이에 앉았고, 환갑이 훌쩍 넘은 박수일 인민군 총참모장, 강순남 국방상, 정경택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 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장성들이 김주애 뒤로 병풍처럼 서 있는 사진이 ‘노동신문’ 1면을 장식했습니다.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부인이 아닌 딸의 손을 잡고 레드카펫을 밟으며 연회장에 들어서는 사진 등도 함께 실었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주애를 중심으로 한 사진 구도와 파격적 호칭으로 미뤄 김주애가 앞으로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명확하게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실장] “김주애가 김정은 옆에 있는 게 아니라 김주애가 사진 중앙에 있는 모습은 이제 김주애 띄우기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거고요. 또 북한이 김주애에 대해서 ‘존경하는 자제’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존경하는’이라는 표현은 북한 간부들에게도 절대로 쓰지 못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을 김주애에게 썼다는 것은 김주애에 대한 개인숭배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정 실장은 후계자 조기 내정은 권력승계 과정에서의 잡음을 차단하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주애가 이번 행사에서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을 달지 않았다는 점도 비슷한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두 차례 대외활동에서도 초상휘장을 부착하지 않았는데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을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김 위원장 부부 정도입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도 가슴에 초상휘장을 달고 활동합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김열수 안보전력실장은 김주애에 대한 노출 방식이 후계구도 차원의 해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실장은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한 북한사회에서 여성 최고지도자를 염두에 둔 후계작업을 하려면 주민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찍부터 대중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열수 실장] “멀리 봐서 후계구도를 구축하기 위해서, 그것도 딸이잖아요, 나중에 여왕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려고 하면 이렇게 미리 계속 노출시킴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나중에 자연스럽게 지도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런 목적이 있지 않느냐.”
하지만 김주애의 잇단 공식 행보를 후계자 내정으로까지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론도 많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초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김주애가 후계자가 된다는 판단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취지로 보고한 바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책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이제 집권 10년을 갓 넘긴 젊은 지도자라는 점, 여성 지도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 북한 주민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후계 구도 차원의 해석은 지나치다고 말했습니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가족을 동원해 파격 연출을 함으로써 백두혈통 정통성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책임연구위원] “이번 열병식 행사의 주요 계기는 김일성이 창군한 조선인민군의 75년 역사를 과시하는 장면이거든요. 그런 과정이라면 오늘 등장한 김정은 일가, 가족을 지금처럼 과감하게 공개하고 파격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도 김주애 후계자 내정 여부는 향후 행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 분명한 것은 가계 우상화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집권 초기부터 정통성이나 정치적 권위 측면에서 선대 지도자들보다 취약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녀를 동원해 백두혈통 우상화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이와 함께 김주애의 공식 행보가 모두 군 관련 행사에 집중해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김 위원장이 딸을 미래세대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체제가 핵 개발한 이유 또 국방력을 강화하는 이유가 미래세대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계속 반복해요. 그러니까 김주애를 통해서 미래세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고 미래세대를 위한 김정은의 업적이다, 이런 것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고요. 또 하나는 군사력 강화라는 강경한 이미지를 김주애를 통해서 중화시키려는 의도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거든요.”
‘조선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기념연회 연설에서 “이 땅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진정한 융성과 발전을 위해, 후손만대를 위해 참으로 많은 고통과 아픔을 감내하며 마침내 위대하고 절대적인 힘을 키웠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위대하고 절대적인 힘’은 핵 무력을 의미하고, 연설은 김주애로 상징되는 후손들을 위해 핵 무력을 키웠음을 부각시킨 것으로 풀이됩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