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탈북민 피폭 전수검사 시작...전문가들 "북한 핵실험장 지하수 조사해야"

북한 당국이 지난 2018년 5월 공개한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입구를 병사가 지키고 있다. (자료사진)

한국 정부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 출신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방사선 피폭 전수검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검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북한 주민은 물론 국제사회에도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1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15일부터 탈북민들에 대한 방사선 피폭검사를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같이 보기: 한국 통일부 "5월부터 풍계리 인근 출신 탈북민 89명 피폭조사"

이 당국자는 검사가 11월 말까지 진행되고 결과는 연말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통일부는 2006년 1차 핵실험 뒤 탈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위치한 함경북도 길주군과 인근 지역 출신 796명을 전수조사 대상자로 설정했고, 올해 조사에선 희망자 89명을 검사합니다.

최근 입국 순으로 추려낸 80명은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방사선 피폭검사를 실시합니다.

또 문재인 전임 정부 시절인 2017년과 2018년 검사 당시 이상 수치가 검출됐던 9명에 대해선 추적조사가 이뤄집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문재인 전임 정부 시절 이뤄진 2차례 검사의 경우 표본수가 너무 적어 검사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이런 의혹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임 정부의 경우 검사 자체도 부실했지만 검사 결과 또한 대북 유화 기조 속에서 소극적으로 해석해 발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2017년 검사에선 피검자 30명 중 4명에게 이상수치가, 2018년엔 10명 가운데 절반에게 이상수치가 나왔지만 ‘흡연력 등 교란변수를 배제할 수 없다’며 북한의 핵실험과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은 겁니다.

특히 2018년 이상수치 검출자 가운데 한 여성 탈북민의 경우 일반인의 경우보다 수백배나 많은 방사선 피폭량이 검출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핵실험장에서 발생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주민에게 확산될 우려를 4년간 추적·조사했고 그 결과가 담긴 특별보고서를 지난 2월 공개한 바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하수를 통한 피폭 경로는 북한 주민은 물론 주변국가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일자 전수조사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 지하수가 방사선 피폭 확대의 주요 경로로 의심되는 만큼 피해 규모가 매우 광범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핵실험장 반경 40km 내에 있거나 지하수와 만탑산으로부터 장흥천과 남대천 수계를 따라 영향 받을 수 있는 범위에 있는 3개 도, 8 개 시군의 주민 수는 108만명에 이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소련 시절 같은 경우 원자력발전소에서 수백, 수천km 떨어진 아파트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됐거든요. 왜냐하면 보통 원자력발전소는 강이나 하천, 바닷가에 건설되고 오염수가 흘러나오거든요. 그런데 만약 이게 하천을 타고 흘러간다면 수백km 이상의 토양이나 수질을 오염시켜요.”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 2017년 위력이 가장 강력했던 6차 핵 실험 당시 한국 국회에 출석해 “핵실험 뒤 계속된 지진들은 지반 균열과 방사선 누출을 시사한다”며 “무서운 건 지하수로 통제 불능 상태”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장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오염시켰다면 이 지하수로 자란 길주군 일대 농수산물도 오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같이 보기: 풍계리 핵실험장 지하수 오염 우려…’핵과 인권’직결 보여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보고서는 ‘칠보산 송이’를 비롯한 북한산 특산물이 중국산으로 둔갑해 밀수, 유통되는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피해 권역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도 풍계리 일대에서 자연지진이 종종 발생하는 이유는 핵실험 때문에 만탑산이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라며, 암석의 균열로 지하수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상수도원인 하천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습니다.

서 교수는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할 경우 이런 위험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북한 주민은 물론 한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탈북민들에 대한 개별적인 역학조사를 넘어 현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서균렬 명예교수] “단순한 개별 역학조사를 뛰어 넘어서 지하수 검사까지 북한 당국에 요구를, 우리나라 힘만으로 안 된다면 국제기구 도움을 빌던지 여러 가지 경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국제사회에 공론화하고 희망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영환 대표는 풍계리 일대 100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핵실험 사실 조차 모르고 피폭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상황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국 정부의 조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되고 보다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북한 당국에서 여섯 번 실험을 하는 동안에 실험을 한다고 알린 적도 없고 실험을 했다고 알린 적도 없고 주민들은 방송 보고 나라가 강해졌구나 이렇게 믿고 있는 거죠. 그런데 모르고 마시던 물이나 농산물, 음식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체를 모르고 있으니까 그게 심각한 문제이고.”

이 대표는 또 이 문제를 방치할 경우 남북한이 통일되더라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갈 중대 사안이라며, 한국 정부는 남북 교류 의제로 핵실험장 일대의 식수환경 조사와 종합적인 대응책 지원 등을 북한에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