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한 상대 첫 손배소…원칙 기반 남북관계 재정립, 도발 억제 대북 압박 카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2면에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현장을 공개했다.

한국 정부가 3년 전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행위에 대해 정부 차원의 첫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칙에 입각한 남북관계 재정립과 함께 잇단 도발로 핵 위협을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 14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북한이 3년 전 저지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통일부는 국유재산으로 등록된 연락사무소 폭파로 발생한 손해액을 447억원, 미화로 약 3천500만 달러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법원을 통해 북한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통일부는 “북한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고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등 남북 간 합의를 위반한 것이며, 남북 간에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입니다.

[녹취: 구병삼 대변인] “북한에 우리 정부 및 우리 국민의 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고 원칙 있는 통일〮대북정책을 통해 상호 존중과 신뢰에 기반한 남북관계를 정립해 나갈 것입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2020년 6월 13일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며 폭파 지시를 시사했고 북한은 사흘 뒤 이 건물을 폭파했습니다.

남북연락사무소는 지난 2018년 문재인 당시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 해 9월 문을 열었습니다.

개소 이후 산림과 체육, 보건의료, 통신 등 각 분야의 남북 간 회담이나 실무 회의가 이곳에서 많이 열리면서 남북 교류의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통일부는 소 제기의 목적이 손해배상을 당장 받는 것이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을 막고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천명한 ‘원칙에 기반한 대북정책’에 따른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북한이 여기에 호응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다 분명하게 북한 측에 각인시키고 이런 새로운 원칙, 새로운 룰에 적응해야 남북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봐요.”

소송 절차는 한국 법무부가 맡습니다..

북한이 소송에 응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공시송달 방식으로 소송이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공시송달이란 피고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피고가 재판권이 미치지 않는 장소에 있어서 피소 사실을 알릴 수 없을 때 쓰는 방식입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불법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을 감안할 때 북한이 무시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것 자체가 국가 간에도 그렇고 남북관계 측면에서도 상당한 불법행위이지 않겠습니까. 북한으로선 그걸 가지고 공식적으로 반발하거나 하면 오히려 부담을 키우는 상황이라 무시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가 승소하더라도 북한으로부터 실제 배상을 받아내긴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한국 정부는 남한에 있는 북한 자산이나 채권을 압류해 손해액을 받아내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지만 마땅한 압류 대상을 찾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한국에선 현재 북한으로부터 저작권을 위임받아 법원에 저작권료를 공탁 중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며 국군포로 가족 등이 제기한 추심금 청구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한국 정부는 나중에라도 손해액을 받아내려면 청구권 소멸을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조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가 발생한 날이나 손해 발생을 인지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하는데, 16일이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3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윤석열 정부의 이번 조치는 북한의 불법 행위를 국제사회에 환기시키고 향후 남북 협력사업 과정에서 북한의 일방적 행동을 제어하는 새로운 준칙을 만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이것 자체는 법적 권리이기 때문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못 받아들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고 어떤 절차를 통해서 유예나 면제가 돼야 하는 거란 말이죠. 그러면 북한이 향후 행동하는 데 있어서 제약도 되고 이런 문제들을 본인들이 힘들면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만드는 유인도 될 수 있는 거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가 북한의 핵 위협 고도화와 연이은 도발에 대한 응징의 성격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홍 박사는 미국, 일본과의 대북 공조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비핵화 대화로 끌어 내기 위한 독자적인 압박카드를 내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최근 한미 또는 한미일이 대북 강경 태도, 군사정챨위성 발사나 전략무기 개발에 대해서 강력한 응징을 시사하는 내용들도 있었거든요. 이런 기류에 맞게 기존에 청산되지 못했던 남북 간 협력사업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 제기하는 카드를 통해서 북한에게 전략무기 개발 중단뿐만 아니라 대화 트랙에도 참여하라는 압박 메시지를 통일부 차원에서 내놓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보여지고.”

통일부는 북한 측의 무단 사용이 지속되고 있는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서도 대응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15일 “북한이 개성공단을 무단 가동하는 동향이 지속해서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버스가 수시로 개성공단을 드나들고 야간에 불이 켜진 모습 등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의 개성공단 시설 무단 가동과 금강산 시설 철거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소송과 유사한 대응을 할지 여부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