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1년 반 '영토 분할 휴전론' 파장...우크라이나 정보국, 크름대교 공격 영상 공개하며 추가 공세 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지난달 1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 나토 정상회의 현장에서 회동하고 있다. (자료사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발발 1년 6개월이 다가오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고위 당국자가 '영토 분할 휴전론'을 제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며 사과했습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의 최고위 참모인 스티안 옌센 비서실장은 지난 15일 노르웨이 아레날에서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논의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해 "우크라이나가 (개전 후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포기하고, 대신 나토 회원국 지위를 얻는 게 (종전을 위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인 16일 노르웨이 매체 VG와의 인터뷰에서 "내 발언은 실수였다”며, 전날 발언을 철회했습니다.

이날 옌센 실장은 "그런 식으로 언급해선 안 됐다"며 사과의 뜻을 표했습니다.

옌센 실장의 전날 발언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점령된 일부 영토를 떼어 주는 대가로 나토에 가입해 향후 안전을 보장하자는 일종의 절충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에 주워담은 것입니다.

■ 우크라이나·러시아 동시 반발

미하일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15일 옌센 실장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영토와 나토 가입을 교환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격분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가 우리 영토에서 철수할 가능성에 대한 담론을 만드는 데 나토 관리가 관여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서 "결국 러시아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도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옌센 실장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확정해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면 수도 크이우(러시아명 키예프)까지 포기해야 할 것"이라며, 나토의 확장에 관해 타협할 여지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앞 왼쪽) 러시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이 지난달 18일 모스크바에서 집권 통합러시아당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자료사진)

옌센 실장이 결국 사과했지만, 파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발언을 주워담는데서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옌센 실장은 16일 인터뷰에서 “(어제 발언은) 우크라이나의 가능한 미래 시나리오에 대한 더 큰 논의의 일부였다"며 발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런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이 내가 처음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7일 아레날 컨퍼런스에서 "평화협상 조건이 갖춰졌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우크라이나뿐"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이어 "협상 테이블에서 수용 가능한 조건이 무엇인지 정하는 것도 우크라이나의 몫"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전쟁 교착 상태 장기화

이같은 발언 파동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주요 매체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이 6월 초 시작한 '대반격'의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도 좀처럼 러시아군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점령지 탈환 가능성에 회의론이 일고 있습니다.

옌센 실장의 이번 발언은 장기전으로 흐르고 있는 이번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피로감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완전한 승자가 나오기도 힘들어졌다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종전 협상 돌입을 위한 돌파구를 하루빨리 마련하자는 목소리도 잇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15일 도네츠크 지역 작은 마을인 우로자이네를 탈환했다고 밝혔습니다.

같이 보기: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요충지 우로자이네 탈환"...러시아 침공 후 민간인 사망 집계 1만명 육박

지난달 자포리자 동쪽 스타로마이오르스케를 되찾은 이후 오랜만의 승전보입니다.

하지만 점령지를 지키려는 러시아군의 방어력은 여전히 탄탄한 상황으로 평가됩니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 육군 사령관은 16일 "북동쪽 전선에서 러시아군 공세를 힘겹게 막아내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전황에 관해 "우크라이나군의 느린 진격은 현재 전투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습니다.

■ 크름대교 공격 영상 공개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크름반도(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름대교(케르치해협대교) 공격이 자국군의 무인 보트(해상 드론)에 의해 진행됐음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우크라이나보안국(SBU)은 최근 CNN 방송을 통해 지난달 17일 실험용 해상 드론을 이용해 크름대교를 공격한 순간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공격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영상에는 해상 드론이 크름대교 교각으로 서서히 접근하는 모습과 이후 두 차례의 폭발 장면이 담겼습니다.

드론이 교량의 도로 구간에 충돌하며 폭발했고, 약 5분 후 반대 방향에서 접근한 또 다른 드론이 2차 폭발을 일으킵니다.

이날 공격으로 크름대교 교량 일부가 파괴됐으며 민간인 2명이 사망했습니다.

바실 말리우크 SBU 국장은 CNN 인터뷰에서 "민간 기업의 참여 없이 '시 베이비(Sea Baby)'로 불리는 해상 드론을 자체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드론은 지난달 크름대교를 공격할 당시 850kg 탄두를 탑재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말리우크 국장은 크름대교 공격이 몇개월에 걸친 준비 끝에 수행됐고, SBU와 우크라이나 해군이 합동 작전을 펼쳤다고 설명했습니다.

■ 정보기관 공식 인정 이례적

지난달 크름대교 공격 후 일부 우크라이나 관리들이 공격 사실을 시인하긴 했지만, 정보기관이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CNN은 "SBU가 공개적으로 작전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새 드론의 공격력을 러시아에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해설했습니다.

2018년 개통한 크름대교는 지난 2014년 병합 처리된 크름반도 점령을 상징하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러시아 본토(오른쪽)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름반도(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크름대교(케르치해협 대교)

또한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러시아군의 핵심 보급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 표적이 됐습니다.

말리우크 국장은 최근 흑해 일대에서 러시아 군함과 유조선이 공격을 받은 것 역시 ‘시 베이비’를 활용한 우크라이나의 작전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지난달 17일 자정(18일 0시) 흑해 곡물 협정 종료 후 다시 흑해를 봉쇄하자, 러시아의 군함과 유조선을 잇따라 타격하는 등 최근 들어 흑해 일대에서 대담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4일 새벽 러시아의 흑해 항구도시 노보로시스크 해군기지에서 러시아의 군함을 공격한 데 이어, 같은 날 밤 크름반도 인근 케르치해협에서도 러시아의 유조선 SIG호를 타격했습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항을 잇따라 공격하며 곡물 수출을 방해하자 보복 공격을 벌인 것이란 분석이 나왔습니다.

■ 추가 공격 예고

말리우크 국장은 "더 많은 공격이 뒤따를 것"이라며 추가 작전을 예고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흑해 해역을 포함해 여러가지 흥미로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특히 우리의 적(러시아)에게 흥미로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말리우크 국장은 또한 해상 드론이 우크라이나 내 지하 생산시설에서 자체 개발·생산됐으며, 드론의 공격 대상 역시 군사 관련 시설로 "국제법상 합법적인 표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동맹국이 지원한 무기가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한 무기로 러시아를 타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확전을 우려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지 말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