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흑해곡물협정 재개, 러시아 수출 제한 해제하면 가능"...러-이집트 밀 거래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4일 소치에서 회담 직후 공동회견하고 있다. (튀르키예 대통령실 제공)

러시아 농산물에 대한 수출 제한이 해제된다면 흑해 곡물 협정 재개를 고려할 준비가 돼 있다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소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회담 직후 공동회견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흑해곡물협정 재개 가능성을 고려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나는 오늘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러시아 농산물 수출 해제와 관련한 모든 합의가 이행되는 즉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서방이 러시아 측 요구를 먼저 수용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어서, 이날 러시아-튀르키예 간 정상회담은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된 것입니다.

■ 협정 종료 '서방 탓'

푸틴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서방의 제재 등으로) 협정에서 철수하도록 강요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지난 7월 흑해 곡물 협정 종료 이후에도 "곡물 가격은 하락하고 있고, 식량은 부족하지 않다"면서 러시아의 곡물 협정 추가 연장 거부로 세계 식량 위기가 초래됐다는 비판을 반박했습니다.

또한 "지난 1년간 흑해곡물협정에 따라 수출된 (우크라이나) 곡물의 70%를 부유한 나라들이 가져갔다"면서 "서방이 러시아를 속였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흑해 곡물 협정을 통해 수출된 곡물의 57%는 빈곤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가들에 전달돼 왔습니다.

이날(4일) 공동회견에서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곡물협정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입장을 완화하고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에 더 많은 곡물을 수출해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측에 유연한 태도를 주문하면서, 자신과 푸틴 대통령이 곧 기대에 부응할만한 흑해 곡물 협정 관련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협정이 기존 내용대로 재개돼야 한다고 이날 반박했습니다.

■ 6개국 식량 무상 공급 "마무리 단계"

아울러 이날(4일) 회견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전쟁 발발 이후 식량 안보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식량 지원 계획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6개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식량을 무료로 공급하고, 운송과 물류도 무료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의 식량 지원을 받는 국가는 부르키나파소, 짐바브웨, 말리, 소말리아, 에리트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6개국입니다.

■ 협정 종료 후 곡물 인프라 공격

흑해 곡물 협정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곡물과 비료 등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한 장치입니다.

지난해 7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체결된 이 협정은 전쟁 이후 봉쇄됐던 우크라이나 주요 항구들에서 곡물 수출을 재개하고, 동시에 러시아의 식량과 비료를 원활히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협정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3월, 5월에 걸쳐 세 차례 연장됐으나 러시아가 4차 연장을 거부해 지난 7월 17일 자정(18일 0시) 종료됐습니다.

러시아는 이후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항구의 인프라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주의 항구 마을을 공격해 항만시설과 곡물 창고를 파괴했고, 곡물 수출 우회로로 쓰이는 다뉴브강 인근 시설도 연일 공습했습니다.

러시아군이 흑해에서 민간 선박에 경고 사격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값싼 자국산 곡물을 활용해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강화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가 세계적 식량 위기 와중에 값싼 자국산 곡물을 미끼로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 한다고 비판해왔습니다.

같이 보기: “러시아, 값싼 곡물로 개발도상국의 자국 의존 만들려 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아프리카의 식량 안보를 위협해온 러시아가 이들 국가들이 러시아산 곡물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지난해 전쟁 발발 전까지 우크라이나 곡물의 최대 수입처였습니다.

■ 러시아-이집트 밀 수출 거래

한편, 러시아는 최근 이집트와 러시아산 밀 수출 거래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날(4일) 주요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 정부는 최근 50만t에 이르는 러시아산 밀을 공개 입찰 방식이 아닌 비공개 거래를 통해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이집트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산 밀 수출이 중단되자 상대적으로 값싼 러시아산 밀에 의존해 왔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