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엔 제재를 위반한 북한 유조선이 불법 활동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중국 해상에서 포착됐습니다. 공식 식별번호를 감추고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임시 번호만 단 것 자체가 수상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 해상에서 포착된 문제의 북한 유조선은 신흥호입니다.
선박의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에 따르면 북한 선적의 신흥호는 현지 시각 20일 중국 닝보-저우산항 동쪽 해상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낸 뒤 사라졌습니다.
신흥호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공식 식별번호 없이 해상이동업무식별번호(MMSI)를 외부로 발신했습니다.
VOA가 선박의 안전검사를 실시하는 아태지역 항만국통제위원회(도쿄 MOU)와 선박의 등록정보를 보여주는 IMO의 국제통합해운정보시스템(GISIS) 자료를 살펴본 결과 신흥호가 사용하는 MMSI는 한 때 북한 유조선 칠보산호의 MMSI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칠보산호의 너비와 길이는 각각 12m와 75m로, 마린트래픽에 나타난 신흥호의 크기와 일치합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신흥호와 칠보산호는 동일한 선박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칠보산호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위반한 전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은 연례보고서에서 칠보산 호가 2020년 2월 중순 중국 회사 소유의 시에라리온 선박 실버스타 1호와 선박 간 불법 환적을 벌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2022년 1월에는 중량톤수 약 2천t인 칠보산호가 중량의 90%를 채운 상태로 북한 남포항에 머무는 장면이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했었습니다.
이처럼 유엔에 의해 대북제재 위반 선박으로 지목된 칠보산호가 이번엔 중국 닝보-저우산 인근 해역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닝보-저우산 해역은 과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북한 선박과 중국 선박의 불법 접선지로 여러 차례 지적한 곳이기도 합니다.
신흥호 혹은 칠보산호가 IMO 번호 대신 MMSI 번호로만 운항 중인 점도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전 세계 선박은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통해 선박의 이름, 선적과 더불어 IMO 번호와 MMSI 번호 등을 외부로 발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MMSI 번호만 공개됐다는 건 칠보산호가 의도적으로 IMO 번호 정보를 숨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IMO는 ‘해상에서의 인명 안전을 위한 국제협약(SOLAS)’을 통해 크기 300t이 넘는 선박이 자국 해상을 벗어날 땐 MMSI와 IMO 번호를 모두 발신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2천t이 넘는 칠보산호가 IMO 정보를 감춘 채 운항하는 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입니다.
칠보산호가 MMSI 번호만을 외부로 발신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 대북제재 단속이 주로 IMO 번호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과거 불법 환적 전력과 다음 불법 행위를 감추려는 목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박이 국제해사기구에 등록되는 시점에 부여되는 IMO 번호는 선박의 소유주나 기국이 변경되더라도 처음 번호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반면 MMSI는 선박의 등록 국가가 부여하며 언제든 새 번호로 바꿀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유엔 안보리와 미국 등 유엔 회원국은 한번 부여되면 바뀌지 않는 IMO 번호로 북한 선박을 식별해 왔습니다. 따라서 IMO 번호를 감출 경우 해당 선박의 위반 전력과 제재 대상 여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선박 전문가인 우창해운의 이동근 대표는 MMSI 번호만으로 운항하는 북한 선박이 포착됐다는 VOA의 지적에 대해 “정상적인 선박으로 국제항행을 할 땐 두 가지 번호(IMO, MMSI)가 필수이지만, 이미 제재 대상 선박이거나 선박의 신분을 구태여 나타낼 필요가 없는 경우엔 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어 “불법 거래가 목적이거나 기항국에서 모른 척 할 경우 선박이 IMO 번호를 감출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