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 방문 의사를 밝히고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를 환영하는 등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시 주석 방한을 본격 협의하겠다는 입장인 가운데 시 주석의 발언이 한국의 미일과의 공조에 틈을 벌리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한국 국무총리는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0분 간 양자 면담을 가졌습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렸던 한중 정상회담과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인도네시아에서 리창 총리와 가진 회담에 이어 세 번째 한중 간 최고위급 만남이었습니다.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시 주석은 면담에서 자신의 “방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당국자는 시 주석이 먼저 방한 문제를 언급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방한을 재차 요청했을 당시 시 주석은 윤 대통령이 방중해 달라고 반응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이번에 방한 문제를 먼저 언급한 것은 방한 의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여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시 주석은 또 한국이 연내 개최를 추진 중인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개최를 환영한다”고 말했고, 이에 한 총리는 “내주 개최되는 고위급 회의를 시작으로 외교장관 회의를 거쳐서 조속히 정상회의가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시 주석은 한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정책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설명한 데 대해 “한반도와 남북 양측의 화해, 협력을 일관되게 지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총리는 "현재와 같은 불확실한 정세와 공급망 불안정 등 다양한 도전과 과제가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상호존중, 호혜,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규칙과 규범에 기반한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관계 발전을 추진코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한중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좋은 이웃으로서 앞으로도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답했습니다.
양측은 그러나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상황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러 관계에 대해선 “최근 돌아가는 동향에 이런 게 있다는 정도로 간략히 언급됐다”며 “중국 측 대변인 언급에서도 북러 동향은 ‘그냥 그쪽 얘기다, 우리랑 상관없다’는 식의 생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미한일 안보 협력과 북러 밀착 강화로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입장이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됐다며, 시 주석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보임으로써 중국 식 균형외교를 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어느 한 쪽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고 한 쪽 진영의 전선논리에 매몰되기 보다는 양쪽의 균형을 일정 부분 살려내고 그런 과정에서 중국이 갖는 일종의 중간자적 입장으로서의 레버리지 또 그 과정에서 양측 모두 중국에게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부분들, 그리고 그런 것을 통해서 중국이 갖고 있는 외교, 안보상 이익을 관철시키겠다는 중국식 균형외교의 한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 주석의 발언 만으로 중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 총리와의 회담 뒤에 중국 외교부가 낸 자료를 보면 시 주석은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정책과 행동에 반영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측 자료엔 또 시 주석의 방한과 관련한 언급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의 행보는 지난달 미국 캠프 데이비드 미한일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삼국 간 협력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움직임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중국의 일관된 전략은 한국을 미일과의 공조에서 떼어놓으려는 것이라며 시 주석의 발언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담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한국이 대중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압박도 동시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시 주석 방한도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 여부를 지켜 보고 결정하려는 게 중국 측 입장이라고 임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은 한국 정부의 대중정책의 전향적인 전환을 압박하는 그런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대통령실은 시 주석 방한 성사를 위해 외교채널을 가동해 중국 측과 본격적인 협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입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24일 한국의 뉴스전문 케이블 채널인 ‘MBN’에 출연해 “시 주석도 벌써 본인 입으로 방한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얘기했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외교채널 간에 점잖고 쿨하게 중국이랑 이야기를 해서 성사시켜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조 실장은 이어 “만약 방한이 성사되면 한중 관계의 중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우리가 만들어야 할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대통령실은 시 주석 방한이 연내 이뤄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방한 성사를 위해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지만 타이완 문제 등 동아시아 외교 현안을 놓고는 가치연대 차원에서 중국에 비판적인 입장이고 최근엔 북러 군사 협력 움직임으로부터 중국을 분리시켜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박 석좌연구위원은 한중 양국은 관계 악화는 안 된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중국에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양국 간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한중이 좋은 합의점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러자고 하면 한국이 아마 미국과 예를 들면 반도체 문제 같은 경우 상의를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에 타이완 문제 등 국제 정치 관계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이 기본 입장을 바꾸긴 어렵겠지만 조금 더 유화적인 발언을 할 수 있던지 그런 것들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고요.”
이런 가운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3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러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다음달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합의한 데 따른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방북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을 만나 푸틴 대통령 방북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3일 북러 정상회담에 이은 만찬에서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초청을 “쾌히 수락”했다고 14일 보도했고, 이후 크렘린궁도 “푸틴 대통령은 이 초대를 감사히 수락했다"고 같은 메시지를 공표한 바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라브로프가 가는 것은 북러 간 대외 관계, 외교 관계, 양자 관계를 높이는 행위이고 라브로프-최선희 라인을 만들려는 생각이 있는 거겠죠. 그렇게 해서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일 보이겠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푸틴의 방북 얘기도 나올 가능성이 있고 당연히 북한 측에선 얘기를 하겠죠.”
23년 전인 2000년 7월 평양에서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만난 뒤 북한을 찾은 적이 없는 푸틴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게 될 경우 양국 군사 협력 기조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임을출 교수는 라브로프 장관의 방북 사전 공개는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다방면에서의 협력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라며 필요하다면 국제사회 제재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압박이 내포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