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국 내 600개 극장에서 개봉한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는 탈북민 엄마 이소연 씨의 눈물과 절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씨의 17살 아들 정청 군은 엄마와 재회하기 위해 탈북했다가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된 뒤 정치범수용소인 14호 개천관리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정권과 싸우는 것이 아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 이 씨는 전 세계를 다니며 북한인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이소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지난 17일 미국 백악관 앞. 탈북민 이소연 씨가 “제발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을 막아 달라”고 백악관과 시민들을 향해 외칩니다.
[녹취: 이소연 씨]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해결하는 데는 미국 정부의 목소리가 분명히 필요합니다. 미국을 통해서 이러한 북한 인권 문제들이 꾸준히 제기됐을 때, 또는 대한민국 정부하고 이런 협력의 과정에 있었을 때 굉장히 더 큰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씨는 지난 두 달여 동안 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영국으로 이동하며 현지 관리들과 시민사회단체, 싱크탱크,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나 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소연 씨가 이렇게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는 강행군을 하면서 북한인권에 대해 간절히 호소하는 배경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2008년, 6살 아들 정청 군을 뒤로한 채 중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이 씨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정착한 뒤 그리운 아들과 재회를 시도합니다.
그러던 2019년 브로커를 통해 17살이 된 아들 소식을 듣습니다.
[녹취: 이소연 씨] “제가 북한에서 엄마가 먼저 탈출을 하다 보니 아들이 학교를 졸업했는데 대학도 못 가고 군대도 못 가고 그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아들이 그림을 잘 그리고 치과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 씨는 아들을 한국에 데려오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브로커를 통해 아들을 중국으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 씨는 아들의 옷을 미리 사 차곡차곡 쌓아 놓으며 함께 사는 날을 고대했습니다. 하지만 정청 군을 돌보던 브로커를 시샘한 다른 중국인 브로커의 신고로 아들은 중국 공안에 체포되고 맙니다.
큰 충격에 빠진 이 씨는 한국 외교부 등의 문을 두드리며 제발 아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만 중국 당국은 체포 넉 달 만인 2019년 12월 29일, 정청 군을 북송합니다.
[녹취: 이소연 씨] “사실 미성년자라서 바깥으로 내보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고 도 보위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고…”
이 씨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녹취: 이소연 씨] “(고문으로) 허리도 부러졌고 갈비도 나갔다 이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하고 있다가 가족한테도 연락이 없고 그냥 감감무소식으로 아이가 실종이 된 거예요.”
이 씨는 안절부절못하며 브로커들을 통해 아들의 행방을 백방으로 물었고 결국 아들이 북한의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 중 하나인 14호 개천 관리소에 수감됐다는 소식을 확인합니다.
북한 당국은 북한 여군 출신인 이 씨가 한국에서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로 활동하며 북한 인권 운동을 한 전력과 아들이 한국행을 기도했다는 이유를 들어 아들을 관리소로 보낸 것입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최종보고서와 탈북민들에 따르면 14호 관리소는 완전통제구역으로 한 번 들어 가면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악명 높은 곳입니다.
이 씨에게 후회와 절망,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녹취: 이소연 씨] “(북한인권) 활동한 부분에 대해서 후회도 했습니다. ‘나 때문에 우리 아들이 이렇게 됐나’라는 후회도 수백 번 해봤고 사실 그 미성년자 제 아들이 고문을 받아서 정말 뼈가 부서진 상태에서 어떠한 치료도 분명히 못 받았을 거고. 수용소에 가서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도도 하고 저 정권을 향해 저주도 하고 죽고 싶은 생각에 아파트에서 그냥 떨어져 버릴까..”
몇 달을 거의 방에만 칩거한 끝에 이 씨는 생각을 달리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과연 승리하는 길인가?’, ‘이렇게 내가 죽으면 너무 원통하지 않은가?’
[녹취: 이소연 씨] “21세기에, 나치 수용소 그 이상에 버금가는 수용소에 갇혀 있는 제 아들의 그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것도 없다. 그럴 바에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인권 침해 가해자인 김정은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함으로 인해서 우리 아들을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아들과 같은 제2의 피해자, 제3의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투쟁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씨는 북한에서 혼수상태로 풀려난 뒤 엿새 만에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어머니가 슬픔에 머물지 않고 북한 정권을 상대로 강하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큰 영감과 용기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소연 씨] “웜비어 어머니는 북한 사람도 아니고 생떼 같은 아들이 관광 갔다가 못 돌아왔으니, 억장이 아마 무너졌을 거예요. 죄 아닌 죄로요. 실제 저도, 우리 아들도 그렇죠. 엄마랑 살고 싶다는 게 죄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엄마로써 이 문제를 알리자…”
이소연 씨는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 영화로 만든 ‘비욘드 유토피아’의 홍보팀에 참가해 여러 국제영화제에 참석하며 아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영화 촬영조차 후회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것이 아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녹취: 이소연 씨]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정말 가능하다면 러시아 푸틴이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것(회부를 위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처럼 독재자 김정은, 그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울 수만 있다면 또는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저는 제가 활동하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것, 싸워주는 것이 아마 우리 아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연 씨는 “김정은도 딸을 사랑해 자주 공개석상에 데리고 나오지 않냐?”면서 “그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모든 인민의 생명도, 자녀도 소중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는 북한 체제와 탈북민의 실상을 폭로하는 것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따뜻한 영화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소연 씨] “평소에 살아가는 순간순간 또는 옆에서 가족하고 한 끼 밥을 먹으면서 내 자식을 바라볼 수 있는 이러한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자유이고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보시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씨는 지금도 차가운 수용소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지낼 아들을 생각하면 한 시도 편할 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정청 군을 향해 “어떡하든 꼭 살아만 있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소연 씨] “아들을 생각하고 늘 아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늘 아들을 그 구렁텅이에 몰아놓은 저는 죄인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바람이라면 아프고 찬바람 비바람 막아줄 어떠한 것도 없겠지만 그냥 살아만 있어라. 이 말만 우리 아들한테 잘 전해지면(흐느끼면서) 꼭 살아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만, 희망만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