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기구가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에 대한 일본 고등법원의 결정을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역사적 판결”로 평가했습니다. 최근 타계한 귀환 국군 포로에 대해서도 정의 실현에 이바지했다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서울 유엔인권사무소는 1일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X(옛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에 대한 일본 고등재판소의 최근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사무소는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역사적 판결이 나왔다”며 “도쿄고등재판소(고등법원)는 5명의 지상낙원 북송 사업 피해자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대로 진행한 민사 소송(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도쿄 지방법원이 내린 2022년의 판결의 재심리를 명령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쿄 고등재판소가 해당 사안의 관할권이 일본의 재판소에 있다고 명시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서울 유엔인권사무소가 지난 3월 발표한 강제실종 보고서는 “피해자들이 겪은 역경과 진실 및 정의 모색 과정을 기록한다”면서 북송 사업이 강제실종 문제의 일환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무소는 북송 사업 문제 등을 다룬 이 보고서를 링크하면서 “일본에 거주 중인 약 9만 3천 340명의 한인(일본인 처 포함)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짓된 약속을 믿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일본 도쿄고등재판소는 10월 30일 가와사키 에이코 씨 등 북송 사업 피해자 4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4억엔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판결을 깨고 “북한의 불법 행위로 발생한 침해 전체의 관할권은 일본에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다니구치 소노에 도쿄고등재판소 재판장은 이날 판결문에서 북한 정부가 지상낙원 선전과 달리 귀국자들에게 비참하고 가혹한 조건에서 살도록 강요해 거주지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다며 원고들은 사실상 “삶을 강탈당한 것”이라고 지적했었습니다.
소송 원고와 변호인단, 국제인권단체들은 일제히 “역사적” 판결이라고 반기며 북한 정부에 북송 사업의 책임을 실질적으로 추궁할 초유의 기회라고 평가했습니다. 소송을 적극 주도한 가와사키 씨입니다.
[녹취: 가와사키 씨]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일본의 법에서 관할할 수 없다고 했던 것을 관할할 수 있다. 고등법원에서 이렇게 결정했기 때문에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우리가 나중에 1억 엔을 받아야 한다는 최종 판결이 나오면 일본 정부가 압류한 북한 자산이 있어요. 그것을 우리가 차압(회수)하려 하거든요.”
서울 유엔인권사무소는 이와는 별도로 지난주 일본에서 북한 정권에 강제실종 당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가족 등 피해자와 이탈자, 활동가 24명을 면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 및 기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일은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의 책임규명 방안 모색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에 대해 자유 의지로 이뤄진 귀국 사업이라고 주장하며 COI 등 유엔 기구들의 정보 요청에 대해 협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서울 유엔인권사무소는 2일 X를 통해 10월 31일 타계한 귀환 국군포로 김성태 씨를 애도했습니다.
사무소는 6·25 전쟁 국군포로 김성태 님의 작고 소식에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그가 17살에 전쟁에 참전했고 북한에선 전쟁포로로 “감옥과 탄광에서 51년이란 세월을 감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김 씨가 “전쟁포로를 위한 정의 실현과 인권에 대한 인식 고취를 위해 기울여 오신 노력은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에서 포로수용소 탈출을 시도하다 징역 13년을 살았고 석방 후에는 탄광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51년 만에 탈출했던 김성태 씨는 한국 법원에서 북한 정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지난 5월 승소하는 등 국군포로 옹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습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한국전쟁 정전 당시 8만 2천 명의 한국군 포로가 실종됐으며, 이 가운데 5만~7만 명 정도가 포로로 억류된 채 한국에 귀환하지 못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