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유엔총회에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을 통해 북한 정권의 절대적인 사상 통제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탈북민 북송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강제 송환 주체가 중국임을 명시하진 않았습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고문방지협약이 추가된 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총회에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제3위원회가 8일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결의안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침해를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한다”며 북한 정권의 다양한 인권 침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올해 결의안은 북한의 사상 통제 강화에 대한 우려, 유엔 안보리의 북한인권 논의 재개 등을 강조한 게 특징입니다.
특히 북한 정권의 심각한 정보 통제와 검열에 대해 처음으로 “절대적 독점(absolute monopoly)”이란 강한 표현을 넣었습니다. “정보에 대한 절대적인 독점과 조직화된 사회생활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포함한 (주민들에 대한) 광범위하고 심각한 규제가 코로나-19 예방 조치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면서 북한 정부에 “독립적인 신문과 기타 미디어의 설립을 허용하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포함한 법률과 상기 권리를 억압하는 관행을 검토하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사상, 양심, 종교 또는 신념의 자유와 의견, 표현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북한인권결의안] “(s) To ensure the right to freedom of thought, conscience and religion or belief and the rights to freedom of opinion, expression and association, both online and offline, including by permitting the establishment of independent newspapers and other media and reviewing laws, including the Law on Rejecting Reactionary Thought and Culture, and practices suppressing the aforementioned rights;”
지난 4월 유엔인권이사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에 이어 이번 유엔총회 결의안에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처음 언급된 것은 북한 정권의 사상 통제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공동제안국으로 이번 결의안 초안 작성에 적극 관여한 한국의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9일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 정부에 강력히 권고하는 부분에서 통제 문제를 별도로 강조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준국 대사] “우리 한국의 비디오를 잘못 보거나 퍼트리면 사형을 시킨다든지 하는 이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직접 언급하고, 상당히 노골적으로 그런 법들을 통과시키고 실제로 그걸 이행하고 있고, 심각한 문제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상당히 강화했습니다.”
결의안은 또 “유엔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논의를 재개한 것을 환영한다”며 북한 정부가 자국민의 안위를 등한시한 채 무기 프로그램 개발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북한인권결의안] “Condemning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or continuing to divert its resources into pursuing its illicit nuclear weapons and ballistic missile programmes over the welfare of its people, and emphasizing the necessity for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o respect and ensure the welfare and inherent dignity of the people in the country,”
“북한이 자국민의 복지보다 불법적인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데 재원을 계속 전용하는 것을 규탄하고, 북한이 자국민의 복지와 고유한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장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인권 단체들과 탈북민들이 강력히 권고한 중국의 탈북민 대거 강제북송 문제는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회원국들에 “국경 간 여행 재개와 관련해 강제송환금지 원칙(농르풀망)을 존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중국이 비준한 유엔 난민협약과 의정서 외에 고문방지협약 의무를 준수할 것을 다시 한번 권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인권결의안] “Once again urges States parties to comply with their obligations under the 1951 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and the 1967 Protocol thereto in relation to refugees from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who are covered by those instruments, as well as under the 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
황준국 대사는 “북한 인권단체들이 보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고문방지협약이 새롭게 추가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황준국 대사] “그것은 제가 보기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고방문지협약이 왜 중요하냐면 고문을 당하는 것이 뻔한데 고문당하는 곳으로 보내면 안 된다면 고문방지협약의 당사국으로서 그것을 위반하면 안 되는 거죠.”
실제로 중국이 비준한 고문방지협약은 제3조 제1항에서 “어떠한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 송환 또는 인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이날 VOA에 중국이 비준한 고문방지협약은 난민 지위 여부와 관계 없이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탈북민은 난민이 아니라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주재 유럽연합 대표부의 크리스토퍼 매튜스 대변인은 9일 이에 관한 VOA의 질의에 즉답하지 않은 채 “결의안에는 모든 유엔 회원국에 적용되는 강제송환금지(농르풀망)라는 중요한 원칙에 대한 일반적 언급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매튜스 대변인] “In the resolution, there are general references to the important principle of non-refoulement, which is applicable to the all UN member states, but without mentioning individual countries.”
하지만 이번 주 뉴욕 유엔본부와 워싱턴을 방문해 유엔총회 결의안에 중국의 국제법 위반 행위를 명시할 것을 촉구했던 ‘탈북민 강제북송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관계자들은 실망감을 나타냈습니다.
비대위의 이한별 위원장과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한국 국회의원입니다.
[녹취: 이한별 위원장]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중국을 호명하지 않고 강제북송을 중지하라고 말한다면 일시적으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좋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탈북민들의 강제북송 사태를 확실하게 막을 장치가 없다는 거죠.”
[녹취: 태영호 의원] “전 세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명백히 목소리를 내야 할 유엔 결의안마저도 우리가 행간을 읽어야 한다면 이런 결의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황 대사는 이와 관련해 결의안이 계속 컨센서스로 채택되길 바라는 유럽연합(EU)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인권결의안은 특정 국가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유엔총회 결의안 중에서 유일하게 컨센서스로 채택되고 있어 상징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황준국 대사] “EU는 이 결의가 컨센서스로 채택되기를 굉장히 바랍니다. 컨센서스가 의미는 있긴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이나 북한의 친구들도 다 동참한다는 의미이니까요. 그러니까 투표를 해서 동참 안 한다 반대표를 던지고 기권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지요. 다만 컨센서스로 채택하려다 보니 특정 국가를 거명하면 컨센서스 채택이 어려우니까 그런 것을 감안해서…”
이번 결의안에는 우선 미국과 한국, 프랑스 등 40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영국 등 여러 나라가 추후 동참할 예정이어서 이달 중순 채택이 유력시되는 결의안에는 보다 많은 나라가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엔총회가 지난해 18년 연속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에는 총 63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동참했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