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북한은 왜 김주애 후계작업 서두르나?

  • 최원기

김정은(맨 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왼쪽 두번째)가 지난달 30일 제1공군사단 비행연대의 시위비행을 관람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1일) 공개한 사진.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국 정부가 밝혔습니다. 올해 39살인 김 위원장이 왜 후계작업을 서두르는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최근 북한의 공군기념일인 ‘항공절’ 행사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의 옷차림이었습니다.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은 항공절을 맞아 김주애와 함께 평양 외곽 중화군에 있는 북한의 공군사령부를 방문했습니다.

이날 김 위원장은 검정 가죽 롱코트에 선글라스를 착용했으며, 김주애도 선글라스를 쓰고 목 부분에 털이 달린 자주색 가죽 롱코트를 입었습니다.

그동안 김주애는 주로 어린아이 옷차림에 아버지 손을 잡고 다니는 ‘사랑스런 딸’이라는 이미지를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옷차림은 달랐습니다. 김주애는 북한에서 최고위층만 입는 가죽 코트에 선글라스를 착용했으며 머리 모양도 한결 성숙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북한 당국이 후계 작업을 염두에 두고 김주애의 옷차림과 호칭, 의전을 격상시키기 위한 선전활동을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국장] ”Now we began to see a media campaign that elevate her title, status formally in terms of public.”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18일 공식석상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평양 인근 순안비행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쐈는데, 김 위원장은 딸 김주애와 함께 발사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수뇌부가 이날을 ‘미사일공업절’로 지정했다는 겁니다.

북한은 이미 2021년 ICBM 화성-15형을 쐈던 날을 기념해 11월 29일을 ‘로케트공업절’로 제정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없애고 11월 18일을 새로 ‘미사일공업절’로 정한 겁니다.

서울의 민간연구소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이영종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김주애를 내세우기 위해 새로 기념일을 제정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종 센터장] ”꼭 1년 전인 11월18일 화성 ICBM을 순안비행장에서 쏘아 올렸을 때 딸 김주애를 처음 대동하면서 공개했는데, 1년 지난 시점에서, 그 날이 김주애가 등장한 날이기 때문에, 미사일공업절로 삼기로 한 것이 아닌가.”

지난 1년 간 김주애의 옷차림만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김주애에 대한 호칭도 달라졌습니다.

김주애가 처음 등장할 때 관영 `노동신문’은 ‘사랑하는 자제분’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존귀하신 자제분’에 이어 최근에는 ‘존경하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김주애는 올해 10살입니다.

의전도 달라졌습니다.

김주애는 이제 아버지 손만 잡고 다니는 게 아니라 열병식 주석단 특별석에서 김 위원장 바로 옆에 앉습니다.

또 지난 9.9절 열병식 행사에서는 인민군 원수인 박정천 노동당 군정지도부장이 무릎을 꿇고 김주애에게 귓속말을 하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앞서 지난 2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 건군절 열병식에서는 노동당 최고위 간부들이 김주애를 ‘모셨다’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입니다.

[녹취: 중방]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이 존경하는 자제분을 모시고 귀빈석에 자리잡았습니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부터 19차례 북한의 주요 행사에 참석했는데 이 중 16번이 군사 분야 행사였습니다.

김주애는 또 지난 2월 발매된 북한의 ICBM 발사 기념우표에서 아버지와 함께 우표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김주애와 관련해 가장 큰 의문은 북한 수뇌부가 왜 후계작업을 서두르느냐 하는 겁니다.

김일성 주석의 경우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1974년 2월이었습니다. 당시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이때 김 주석은 62세였고 김정일은 32살이었습니다.

또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 아들(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그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회복된 다음이었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66살, 김정은은 26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39살 밖에 안된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10살인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띄우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2가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건강 이상설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북한의 최대 명절이자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국과 미국 언론은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제기했습니다. 그 후 김정은 위원장은 잠적 20일만인 5월1일 평안남도 순천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도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계속됐습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지방 방문이 크게 줄었으며 공식석상에 구멍이 뚫린 샌들을 신고 나타났으며 올 6월 열린 8차 당 전원회의에서는 최초로 연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지난해 4월 건강이상설이 불거지고 김 위원장은 그로부터 6개윌 뒤인 11월 18일 딸 김주애를 데리고 공식석상에 나타난 겁니다.

이는 고혈압, 당뇨 등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이 뇌졸중처럼 돌발적인 건강 이상에 대비하려는 것일 수있다고 한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중방] “자기 아버지 (김정일)가 젊은 나이에 쓰러진 것을 보고, 가족력이 있으니까, 김정은도 불안하겠죠. 또 김정은의 공개활동이 과거보다 위축된 측면이 있습니다.”

또 다른 설명은 권력승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후계자를 일찍 내세운다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이 이뤄졌지만 두 차례 권력승계 과정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김정일의 경우 20년 이상 권력승계를 준비해 권력기반이 탄탄했던 반면 김정은은 후계자 내정 이후 불과 2년만에 최고 지도자가 됐습니다.

김정은은 군부와 노동당 등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채 권력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7월 군부 실세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한 데 이어 이듬해 12월에는 매부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일종의 ‘궁정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공고화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김주애를 공식 석상에 데리고 나오는 것은 후계작업을 일찍 시작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스나이더 국장은 말했습니다.
아버지(김정일)는 20년 간 후계작업 끝에 권력을 잡았지만 자신은 준비 없이 급히 권력을 잡는 바람에 많은 혼란을 겪었다는 겁니다.

[녹취: 스나이더] “Compare to his father who prepared 20 years for succession, may that motivated the family early start.”

전문가들은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것과 김주애가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말합니다.

김 위원장이 딸에게 권력을 승계하려면 4대 세습을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1차로 평양의 당정군 엘리트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또 북한은 가부장 문화가 뿌리깊은데다 지금처럼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10살 여자 아이를 후계자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학 교수는 김주애가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Probably unlikely she will actually become queen of Korea. Too many things happen.”

김주애가 실제 권력을 승계하게 될지 여부와는 별개로 2023년은 북한에서 후계작업이 시작된 해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