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군 부대 시찰과 훈련 지도에 집중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엔 대규모로 건설 중인 당 중앙간부학교 현장을 찾았습니다. ‘민족통일’을 부정하는 방향으로의 대남정책 전환과 딸 김주애 후계설 등으로 어수선한 북한 내부 분위기를 당이 중심이 돼 다잡겠다는 메시지가 깔린 행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짓고 있는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건설 현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당 중앙간부학교를 둘러보면서 “흠잡을 데 없는 김일성-김정일주의학원, 주체사상학원이 일떠섰다”고 만족을 나타냈습니다.
당 중앙간부학교는 1946년 6월 설립된 중앙당학교가 전신으로, 당 간부 양성과 재교육을 맡은 최고 교육기관입니다.
김일성고급당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지난 2020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로 비판받고 난 뒤 해산됐고, 이후 중앙간부학교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당 중앙간부학교는 김 위원장의 전용비행장으로 추정되는 평양의 ‘백화원비행장’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위원장이 직접 건설 부지를 정했고 중앙간부학교를 “대학 위의 대학”으로 만들 수 있도록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까지도 세세히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습니다.
당 중앙간부학교는 연건축면적이 무려 13만3천㎡ 즉 4만평으로, 다양한 크기의 강의실, 주석단이 설치된 강연장, 개별학습 공간뿐 아니라 농구장, 축구장, 수영장 등 체육시설도 갖추고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4월 당 중앙간부학교 착공에 들어가 1년 만에 완공 단계에 접어들었고 5월 중순 완공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 게재한 사진에 따르면 도서관으로 추정되는 공간에는 컴퓨터가 여러 대 설치돼 있는데, 모니터 뒷부분에 미국 PC 제조업체 ‘델’(Dell)사의 마크가 있어, 대북 제재에 구멍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북한이 당 중앙간부학교 건설에 이렇게 큰 투자를 한 것은 당 중심의 ‘유일영도체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22년 10월 옛 중앙간부학교를 찾아 정치건설. 조직건설, 사상건설, 규율건설, 작풍건설 등 ‘새 시대 5대 당 건설 노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또 간부들이 수적으로 부족하다며 간부 수 확대를 시사하면서 당 중앙간부학교를 “당 중앙이 직접 지도하는 당 간부 양성의 원종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당 중앙간부학교는 당의 핵심 역할인 정책수립과 집행, 그리고 통치 사상과 이론을 만드는 간부들을 양성합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를 정비하는 중이고 이 과정에서 훈련된 당 간부 수요가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지방발전 계획을 포함해서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선 당 간부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이 당 간부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고 육성시키기 위한 새로운 교육기관으로서 당 중앙간부학교를 준공하는 거다,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당 중심의 통치체제를 추구해 온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선군정치'로 약화된 당의 위상 회복을 위해 당 중앙간부학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관측입니다.
당 중앙간부학교를 김 위원장 자신의 전용비행장을 밀고 지을 만큼 해당 사업의 중요성을 크게 보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당의 권위가 그만큼 실추된 부분도 많고 새로운 세대가 당의 권위를 상당 부분 과거처럼 인정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여러 가지가 변화됐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당 간부들의 위상을 제고하고 추락한 당 조직을 결속시키고 주민들에게 그 위상을 좀 더 높게 보여 주려고 아마 이런 교육현장을 좀 더 정비하는 게 필요했을 수 있죠.”
지난달 군 현지 지도에 집중했던 김 위원장이 이번에 당 중앙간부학교 건설 현장을 찾은 것은 대남정책 전환과 딸 김주애에 대한 우상화 움직임 등이 빚은 북한사회 내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후계자설을 낳고 있는 김주애의 공개 행보와 그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상화 움직임에 북한 주민들은 물론 당 간부들도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며, 김 위원장의 이번 행보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당 중심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통일지우기로 인한 혼란, 그리고 김주애 우상화가 너무 빠르다는 거죠. 따라서 이런 혼란도 있기 때문에 김정은으로선 자기의 전략적 판단도 있지만 그러나 지금 여기서 오는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 숙제도 같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달 16일 김 위원장과 주애가 강동온실농장을 방문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향도의 위대한 분들께서 당과 정부, 군부의 간부들과 함께 강동종합온실”을 돌아봤다고 전했습니다.
최고지도자에게만 쓰는 ‘향도’나 ‘위대한’이라는 표현을 주애에게도 사용한 겁니다.
하지만 북한 대내 관영 ‘조선중앙TV’는 당일 오후 보도에서 해당 대목을 빼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이라고 수정해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김 위원장이 당 중앙간부학교를 ‘김일성-김정일주의학원, 주체사상학원’이라고 강조한 데 대해선 김 위원장의 이른바 남북한 ‘두 국가론’에 기초해 북한 당국이 ‘통일’과 ‘민족’ 지우기 작업에 나선 데 따른 이념적 혼란을 경계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객원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남북한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국 관계로 규정한 것은 선대 유훈이자 국가 기본노선을 뒤집은 게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른 전술전략적 변화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녹취: 장용석 객원연구위원] “북한사회 근본 원리로서 주체사상에 대한 강조와 정세적 또는 행태적 측면에서 대남 관계에서 적대적 관계에 있는 두 개의 국가라고 얘기한 것은 상충되기 보다는 잠정적 성격, 시기와 정세에 따른 성격, 전략 전술적 성격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봐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이 듭니다.”
한편 김 위원장의 이번 현지 지도에는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현송월 부부장을 비롯해 리일환, 박정천. 김재룡, 박태성 등 당 간부들이 동행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