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등 도발에 맞서 9.19 남북 군사합의 전체 효력을 정지시키는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중단한 북한이 또 다시 도발해 나올 경우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의 조치를 취하려는 사전작업이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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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가안보실은 3일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주재로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최근 북한의 일련의 도발이 국민들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미 북한의 사실상 폐기 선언에 의해 유명무실화된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국가안보실은 “이러한 조치는 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따른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며, 그동안 9.19 군사합의에 의해 제약받아 온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이 가능해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보다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와 위성항법장치(GPS) 신호 교란 등 잇단 도발에 따른 대응으로 풀이됩니다.
국가안보실은 앞서 2일에도 긴급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대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는 당연히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한국 국민에 대한 위협 행위라며, 한국 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절차에 들어간 것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이것도 북한의 우리 국민을 향한 안위에 위험을 끼치는 것이라고 간주하면 합의를 잠정중단할 수 있잖아요. 확성기 중단도 남북 합의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는 거니까 이걸 일단 중단시키는 행정적 조치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 물리적으로 그동안 철거했던 확성기를 세워야 돼요. 이 두 가지 조치를 취하는 것만 해도 확성기 방송을 안하더라도 북한 정권에겐 엄청난 압박이 될 거에요.”
북한은 앞서 지난달 28일과 29일 오물 풍선 260여개를 한국 쪽으로 날린 데 이어 2일에도 720여개의 오물 풍선이 한국 측에서 발견됐습니다.
북한 국방성은 자신들이 살포한 오물 풍선은 총 3천500여 개, 15t 규모라고 밝혔습니다.
오물 풍선은 한국 측 접경 지역뿐만 아니라 강원, 경기, 경상, 전라, 충청도 등 전국으로 퍼졌고, 이에 따라 여객기 운항에 차질이 생기고 차량 파손과 화재 같은 재산 피해도 발생했습니다.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은 2일 담화를 내고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국 측이 북한으로 이른바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재개할 경우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집중 살포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고 지도자를 직접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에 민감한 북한 측이 한국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보복 수단을 보여주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북한이 얘기하는 대로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 전체를 상대로 해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는데 거기에 대해서 확전적 태도를 취할 것이냐 이것도 사실상 쉽지 않고 그래서 북한은 의도적으로 사실상 그런 한국의 입장을 이용하는 부분도 있다고 봐야겠죠.”
이런 가운데 한국 내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5~6일쯤 바람이 바뀌어서 남풍이 불면 대북 전단을 즉각 보내려고 한다”고 예고했습니다.
이 단체 박상학 대표는 3일 자유북한운동연합 홈페이지에 ‘김정은 즉각 사과하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박 대표는 성명문에서 “우리는 사실과 진실, 드라마와 트로트를 보냈는데 김정은은 대한민국 전역에 3천500개 애드벌룬에 15t의 오물 쓰레기를 날리고 5천만 국민에게 최악의 모욕과 수치를 주었다”며 “김정은이 사과하지 않으면 천배, 만배로 보복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평화와 연대를 위한 접경지역 주민과 종교, 시민사회 연석회의 회원들은 3일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 전단 살포와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접경지역 연석회의는 “적대가 적대를 부르고, 강경 대응이 강경 대응을 낳고 있는 가운데 접경 지역 충돌 위기가 고조되고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서로를 자극하는 적대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활동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지는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의 3일 정례브리핑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구병삼 대변인]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접근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정부가 마땅한 통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민간단체가 공개적으로 북한에 전단을 보낼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1차 상황은 일단 종료가 된 것 같다. 그러나 불씨는 남아있다. 왜냐하면 단체들이 바람이 불면 다시 살포하겠다는 이런 입장이기 때문에 거기다가 지금 대북전단금지법이 위헌이 됐기 때문에 정부가 이걸 강력하게 저지할 수단도 없거든요.”
전문가들은 남북한 간 전단과 오물 살포가 이어질 경우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북한의 군사적 맞대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탈북자단체들이 또 다른 전단지를 살포하고 또 한국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본격화한다면 북한은 오물 풍선, 위성항법장치, 무인기 이런 것들을 총동원해서 안보 불안감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죠.”
북한은 오물 풍선과는 별개로 지난달 29일부터 연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한국 쪽을 향해 GPS 전파교란 공격도 감행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GPS 교란 공격이 국민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명백한 도발일 뿐 아니라 국제협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보고 국제기구에 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