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내 인권 침해 사건과 가해자들의 명단을 기록하는 민간 단체들의 책임규명 노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단체는 새 보고서에서 1천 명이 넘는 가해자를 식별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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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본부를 둔 비영리 민간단체 '코리아 퓨처(Korean Future)'는 3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북한 내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을 위해 명단과 사례 수집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단체는 이런 노력으로 지금까지 “571건의 생존자와 목격자 인터뷰를 통해 1천 70명의 가해자를 식별하고 8천 718건의 인권 침해 사례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단순히 서류상의 숫자가 아니다”며 “각 사례는 폭력과 억압, 불의로 인해 파괴된 실제 인간의 이야기와 삶을 나타낸다”고 강조했습니다.
[보고서] “Through 571 interviews with survivors and witnesses, we identified 1,070 perpetrators and documented 8,718 human rights violations… It is not just numbers on paper—each case represents a real human story, a life disrupted by violence, oppression, and injustice.”
단체는 또한 북한 내 구금된 피해자 1천 425명의 신원을 확보했다며, 이러한 정보를 22개 정부와 국제 다자기구 등에 브리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데이터는 향후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데 필요한 확실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국민에게 폭넓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광범위한 경제 제재와 달리 표적 제재는 인권 침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자에게만 초점을 맞춰 향후 인권 침해를 억제하고 책임규명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보고서] “Unlike broad economic sanctions, which can affect a state’s economy and can have widespread implications for its citizens, targeted sanctions focus solely on those directly implicated in human rights violations, aiming to deter future abuses and promote accountability.”
이 단체에 따르면 이러한 자료들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과 다양한 정부 기구들의 평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올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 단체의 보고 내용을 두 차례 인용했습니다. 또한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4월 채택한 북한인권결의는 이 단체가 앞서 보고서에서 지적했던 구금자에 대한 성폭력과 젠더 기반 폭력(SGBV) 실태를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국무부 역시 지난 4월 발표한 연례 인권 보고서에서 이 단체가 1천 건 이상의 고문,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벌 사례, 100건에 가까운 생명권 박탈 사례를 기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코리아 퓨처의 강혜주 디렉터는 이러한 노력이 북한에서 인권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관리들에 대한 실질적인 경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강혜주 디렉터] “(국가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에) 글로벌 마그니츠키법 인권제제체제, 보편적 관할권 등 이런 툴이 상당히 다른 맥락에서 관심을 받다 보니까 저희도 이런 연구를 하고 기대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좀 더 국가들과 직접적으로 뭔가를 해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민간 단체들도 책임규명을 위한 자료 구축 노력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는 지난해 북한인권 피해를 조사, 기록, 보존, 전시하는 온라인 복합자료전시관인 ‘북한인권라키비움’을 개설해 북한의 인권 침해 사례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녹취: 북한인권라키바움 홍보 영상] “북한인권라키비움을 먼저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한 사람의 기억으로 살아나는 순간입니다…라키비움은 박물관, 알카이브, 도서관의 합성어이죠.”
이 단체가 이런 증언을 교차 분석해 정확성을 높인 뒤 최근까지 기록한 사건은 8만 5천 건이 넘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또한 지난해 11월 북한 국가안전보위성과 사회안전성의 명령 체계를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인권 침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가 전무하다”며 실태를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이 자료는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연맹(FIDH)과 공동으로 작성한 별도의 보고서를 통해 올해 말 북한에 대한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를 실시할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럽연합(EU)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 전달됐습니다.
이 단체의 송한나 센터장은 앞서 VOA에 북한의 인권 침해 자료들을 유럽인권재판소가 있는 프랑스의 국제인권연맹 등과 공유하는 것은 향후 책임자 처벌 등 책임규명과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코리아 퓨처의 이현심 책임규명 담당 팀장도 이 단체가 런던과 서울뿐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ICC)와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유 역시 책임규명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현심 팀장] “헤이그는 ICJ, ICC 등 대부분 국제법의 담론이 이뤄지는 곳이니까 저희가 정의라든가 앞으로 책임규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좋은 기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저희가 (헤이그에서) 오픈했습니다.”
가해자와 인권 침해 사례 자료들을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이런 사례들을 첨단 기술을 통해 입체적으로 만들어 설득력을 높이는 노력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집권 시기의 처형 실태’ 등을 매핑(Mapping)을 통해 입체적으로 공개했던 한국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입니다.
[녹취: 신희석 법률분석관] “구글어스 같은 기술을 활용해서 단순히 피해자분들의 진술을 적는 것에 더해서 어디서 공개처형을 목격했는지 아니면 유해가 어디에 매장됐는지 그런 내용까지 한 단계 더 지리정보를 수집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미국이나 EU가 인권 유린의 책임자들, 개인이나 단체들에 대해서 인권 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팩트를 영어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책임규명 노력 대부분이 정부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나다 알나시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는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개최한 일반 토의에 앞서 구두 보고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녹취: 알나시프 부대표] “In this year of the 10th anniversary of the report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mpunity continues despite the concerted efforts of civil society and international community.”
알나시프 부대표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표 10주년이 되는 올해도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권 침해에 대한) 처벌이 계속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불처벌 관행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징후가 없기 때문에 북한 외부에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임규명의 진전은 북한 주민과 국내외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데 필수적”이며 “ 또한 한반도의 장기적인 평화와 안보를 위해 필요한 토대이기도 하다”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