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유역 수해 복구에 전 사회적 인력 동원에 나선 북한이 외부 지원 제의는 일절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자연재해에 처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력을 집중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셈법이 비합리적 대응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김환용 기자!
기자) 네 서울입니다.
진행자) 북한이 압록강 유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수해 복구에 총력전을 펴는 양상이라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6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 소집에 관한 중대보도가 전해진 그날로부터 전당의 각급 당 조직들은 당원들의 탄원 열기로 끓어 번지고 있으며 평양시와 각 도들에서는 재해지역들로 급파되는 당원연대들이 신속히 조직편성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5일엔 홍수 피해 복구 전역으로 파견되는 평양시 당원연대 진출모임이 평양체육관광장에서 열렸습니다.
‘노동신문’은 구체적인 동원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광장 앞을 가득 메운 사진으로 보아 대규모 인원이 투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수해 현장에서 인민군 부대들과 백두산 영웅청년 돌격대를 투입해 피해가 집중된 신의주시와 의주군에 4천400여 세대 살림집 건설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북한이 수해 복구에 군과 청년, 당원까지 모두 동원하는 양상입니다.
진행자) 북한의 이런 대응으로 미뤄 수해 규모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북한은 외부 지원 제의에 대해선 일절 응하지 않고 있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북한은 한국과 러시아 그리고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 제의에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를 모두 거절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제안에 대해선 직접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3일 침수지역 주민을 구출한 공군 직승비행부대 즉 헬기부대 훈장 수여식 연설에서 한국을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비난해 사실상 한국 측 제안을 묵살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은 또 러시아의 제의엔 사의를 표하며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겠다고 밝혔고, 국제기구에 대해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 한국에선 어떤 분석이 나오나요?
기자)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6일 북한이 한국 정부는 물론 러시아 수해 지원 제안도 받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최고지도자 리더십의 손상 없이 위기를 돌파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외부 지원을 받을 경우 자력갱생을 천명해 온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력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와중에 최근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 인계식을 벌인 것도 자력갱생 논리를 유지하기 위한 무리한 행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외부 지원을 받게 되면 250대의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를 대량으로 제작해서 군에 인계하는 그런 식을 거행할 수가 없죠. 만일 그러면 한쪽에서 그럴 돈으로 피해 방지하라는 등 이런 게 나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의 머릿속엔 어떤 희생이 있어도 자기 그림대로 간다, 지금 벌써 ‘위대한 김정은 시대’라는 표현이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침수 지역을 처음 찾은 이후 29일부터 이틀간 현지에서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열어 수해 복구를 지시하고 2일엔 공군 직승비행부대에 훈장을 수여하는 등의 행보들을 연일 보도하면서 김 위원장의 재난 리더십을 집중 부각시켰습니다.
진행자) 김 기자, 그런데 북한이 외부 지원을 거부하는 데는 또 다른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요?
기자) 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사망자 수를 포함한 수해 규모 공개에 이전보다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 당국이 정보 공개를 대형 재난에 직면한 주민들의 민심 동요 요인으로 보고 있고 이 때문에 외부 지원도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입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국제기구 등 외부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면 어느 정도 피해 규모를 밝히고 그에 합당한 지원을 조율해서 받아야 하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수해 피해가 정확하게 알려지면서 내부 주민들의 동요를 가져올 수 있는 데 대한 우려, 이런 것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는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 제안을 거절한 데 대해 양국이 비록 동맹 수준의 조약을 맺었다고 해도 러시아와 주고 받을 것을 놓고 벌여야 하는 협상에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박사] “지금 보면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공급을 통해 일단 협상력을 지탱하고 있고 동등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대러 협상력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상근 박사는 최근 보고서에서 “재해 대응을 위한 물자가 비축되지 못해 상시적 대응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한 북한은 홍수 발생 시 피해를 줄이기 어렵다”며 “북한 당국이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 구성원들의 입국을 불허하고 외국 정부와 국제기구의 지원을 거부하는 것도 효과적인 수해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압록강을 국경으로 공유하고 있는 중국은 북한의 이번 홍수 피해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기자)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정례 브리핑 이후 기자와의 추가문답에서 “전통적 우호 이웃국가로서 중국은 희생자 가족과 이재민들에게 위로를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런 반응을 러시아와 비교하면서 냉랭해진 북중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김정은 위원장에게 위로서한을 보냈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신속히 제공할 용의를 밝혔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 제안에 자력복구 의지를 밝히며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러시아를 ‘가장 진실한 벗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이 사태를 보면서 북중 관계가 지금 얼마나 냉각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런 측면도 있다, 그리고 또 북한이 오히려 자존심 때문에 중국에 대해서 고개를 안 숙이고 뻣뻣하게 나가는 그런 측면도 분명히 있을 거에요.”
임 교수는 북한이 향후 외부에서 인도적 지원을 받는다면 중국보다 러시아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