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북한이 오는 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관계 이정표였던 남북기본합의서를 파기할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한국에선 또 남북한 간 영토 분쟁을 격화시킬 우려가 있는 북한 헌법 상 영토 조항 신설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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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다음주 북한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관련 전망을 내놓았군요.
기자) 네, 한국 정부는 오는 7일 열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33년 전 남북한이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를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2일 기자들을 만나 “김정은이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해상국경선’ 규정을 반영한 개헌을 예고한 만큼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 파기안이 함께 처리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1991년 12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체결된 이래 남북관계 이정표 역할을 해 온 역사적 합의문입니다.
서문은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습니다.
또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와 불가침 이행·준수 부속합의서 10조는 해상 불가침 구역을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합의했습니다.
진행자) 김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앞서 한국을 교전 중인 적대국이라며 남북 두 국가론을 천명하지 않았습니까. 최고지도자의 지시가 법 위에 있는 북한으로선 남북기본합의서를 파기하는 게 자연스런 결과일 수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정의한 뒤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에 영토와 영해, 영공 조항을 신설해 주권 행사 영역을 규정하고, 통일과 관련한 표현을 모두 들어내라며 개헌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이런 지시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과 내용에 정면으로 배치된 겁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입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두 국가론 얘기할 때 이미 기본합의서는 사문화된 걸로 봐야 돼요. 왜냐하면 그건 91년 합의할 때 남북관계 규정을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를 명문화한 것이거든요. 근데 북한이 나라와 나라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거니까 사실상 그 내용 자체를 부정한 거죠.”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하는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개헌을 다루는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김 위원장 지시가 있었던 만큼 이번에 북한 헌법이 바뀔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요, 한국에선 어떤 부분에 주목하고 있나요?
기자) 한국에서 가장 민감하게 보고 있는 건 영토 조항 신설 부분입니다.
한국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북한과 교전까지 했던 경험 때문에 이번에 헌법에 들어갈 북한 측 영토 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북한은 NLL을 침범하는 이른바 ‘해상국경선’ 이북을 영토로 규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제도화를 지속하는 한편 영토 조항 신설 등으로 우리 사회 안보 불안감을 조성하고 한반도 긴장 고조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대선 후 자신들이 원하는 북미 구도를 만들기 위해 ‘북한은 명백한 핵 보유국’이라거나 ‘한반도는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메시지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내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오경섭 박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새 헌법에 한반도 전쟁 시 대한민국 완정 후 북한에 편입하는 문제를 반영하라고 지시한 점을 상기했습니다.
[녹취: 오경섭 박사] “북한이 핵 무력을 보유했고 핵 무력을 고도화하겠다는 내용이 지금 헌법에 들어가 있는데 그걸 넘어서서 전쟁이 발생하면 핵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무력통일한다, 이런 조항이 들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요.”
진행자) ‘민족’과 ‘통일’은 북한 선대 지도자들의 통치의 핵심 가치이자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아니었습니까? 그런 점에서 북한도 헌법 개정을 하되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기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남북한 동족관계를 부정하는 건 자칫 정권의 존립 근거를 흔들 수도 있는 사안인 건 맞다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스타일로 미뤄볼 때 일단은 두 국가론에 기반한 헌법 개정을 완료하고 새로운 통치이데올로기를 만드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1월 시정연설에서 얘기했던 흔적을 지우는 방식, 3대 통일헌장기념탑을 비롯한 여러 남북관계를 단절하는 조치들은 이미 다 시행했고 이제 법적으로 규정해야 하는데 이걸 지난 기간 면밀하게 검토한 것 같고 그 다음에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고 그 과정은 정통성을 둘러싼 내부 여러 가지 논의, 그 과정에서의 논란 이런 점을 세심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죠.”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 엘리트층을 포함해 주민들이 받을 충격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이 지시한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전략적 모호성을 띠는 헌법 개정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적대적 2국가를 선언했지만 아직 남한 영토 완정, 남한 점령 이런 대목이 애매하게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과연 이 부분을 북한만으로 규정할 거냐, 통일 민족 개념 폐기를 전략적으로 모호성으로 갈지 아니면 글자 그대로 명확히 하고 이제 저돌적으로 관련 작업을 할지 그게 지금 관심사입니다.”
진행자) 이런 가운데 한국에선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요?
기자) 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 7월 한국 갤럽에 의뢰해 전국 성인 1천200명을 대상으로 면접방식으로 실시한 ‘2024 통일 의식 조사’ 결과를 내놨는데요.
조사 결과 북한과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전혀’와 ‘별로’를 합해 35%로 이 연구원이 2007년부터 매년 해당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매우’와 ‘약간’을 합해 37%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추세는 젊은층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 20대 사이에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47%로 절반에 육박했고, 필요하다는 응답은 22%에 그쳤습니다.
30대에서는 필요하지 않다가 45%, 필요하다가 24%로 집계됐습니다.
북한에 대한 적대 의식은 2021년 11%였던 게 해마다 상승해 이번
엔 22%를 기록했습니다.
통일평화연구원 측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간 갈등과 긴장이 고조됐고 북한은 70년 이상 유지한 민족통일 정책을 폐기하고 적대적 대남전략으로 전환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