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북한에 공급한 정제유량을 7개월째 유엔에 보고하지 않으면서 역대 최장기 미보고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대북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는 러시아가 이제는 유류 공급 보고 의무마저 저버린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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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북한에 대한 정제유 공급량을 또다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대북제재위 웹사이트에 따르면, 러시아는 2월부터 8월까지 북한에 제공한 정제유량을 보고하지 않았으며, 해당 기간 동안 보고된 데이터는 공란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보리는 2017년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의 연간 정제유 수입 한도를 50만 배럴로 제한하고 정제유를 제공하는 국가는 매월 30일까지 전달의 공급량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8월 공급량 보고 기한인 지난달 30일을 넘겼으며, 현재까지도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7개월째 미보고…최장 기록 갱신
러시아는 이미 2월분부터 보고를 누락하고 있어, 이번 미보고로 인해 총 7개월 치의 정제유 공급량이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기존 6개월 미보고 기록을 갱신한 것으로, 역대 최장 미보고 사례입니다.
과거 러시아는 보고가 지연된 경우가 있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기간 동안 유류 공급이 없었던 2020년에서 2022년까지는 정해진 기한 내에 보고를 마친 바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러시아는 4~5개월 치 공급량을 한꺼번에 보고하는 등 보고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이번처럼 7개월 연속 미보고는 전례 없는 일입니다.
북한에 유류를 공급하는 또 다른 국가인 중국은 5월분까지 보고를 완료한 상태입니다.
현재 대북제재위 웹사이트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미보고분이 반영되지 않아, 북한에 반입된 정제유는 약 6만4천574배럴로 전체 허용치의 12.92%에 해당하는 양으로 게시돼 있습니다.
러시아의 의도적 미보고 의혹
러시아의 정제유 미보고가 최근 대북제재 이행 중단과 연관된 것인지 주목됩니다.
특히 러시아는 북한과의 밀착 행보를 보이며,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지속하고 있어 의도적으로 보고를 안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의 유류 거래 등 안보리 결의 위반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앞서 VOA는 북한 유조선 련풍호가 지난달 18일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항에 입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련풍호가 접안한 부두에 대형 유류 탱크 3개가 설치돼 있어 유류 선적 목적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또한 영국 ‘파이낸설타임스’와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북한 유조선이 이 항구에서 유류를 선적하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안보리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더욱 우려를 불러일으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올해 3월을 기준으로 이미 정제유 수입 한도를 초과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후의 유류 공급은 모두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간주됩니다.
러시아는 최근 대북제재와 관련한 여러 의무 이행을 중단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월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을 감독하는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에 반대했고,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 라진항에서 러시아 선박이 북한 무기를 선적하는 장면이 포착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고가의 차량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안보리 대북제재 체제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울러 러시아가 대북 유류 공급량 보고를 미루는 게 아니라 아예 보고하지 않기로 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학 동아시아학 교수는 최근 VOA에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지난 1년간 분명히 깊어졌다”며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는 반면, 러시아는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교수] “I think the relationship between Russia and North Korea has clearly deepened both in terms of the supply of North Korean weapons and ammunition to Russia, which we know from the evidence that's been collected on the battlefield in Ukraine and that includes the use of North Korean short range ballistic missiles as well as artillery.”
효용성 논란 가중될 듯
설사 러시아가 뒤늦게 보고한다고 해도, 안보리의 정제유 보고 체계는 이미 효용성 논란에 휩싸인 상태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보고한 양은 불법적으로 선박 간 환적된 유류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실제로는 매년 50만 배럴 이상의 정제유를 들여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한도를 초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지적돼 왔습니다.
미 메릴랜드대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지난 7월 VOA에 “유엔 제재는 본질적으로 자발적”이라며 각국이 자신들의 수치를 원하는 대로 보고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The key thing about these UN sanctions are, they are essentially voluntary. Governments themselves have to approve their own work, their own amounts. So they can, in effect, do whatever they want.”.”
결국, 중국과 러시아가 제공하는 수치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제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VOA는 현재 유엔주재 러시아 대표부에 관련 사안을 문의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