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한국과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를 끊고 한국과의 국경을 영구 차단하는 공사를 진행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헌법 개정을 했다고 밝혔지만 예상됐던 통일 삭제 또는 영토 조항 신설과 관련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먼저 북한이 한국과의 국경을 완전 봉쇄하는 공사를 하겠다고 공개 선언을 했다고요.
기자) 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보도문을 통해 “9일부터 대한민국과 연결된 북한 측 지역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들로 요새화하는 공사가 진행되게 된다”고 밝혔다고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전했습니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해당 조치가 한국 지역에서의 군사훈련과 미국 핵전략자산 전개, 미한의 ‘정권 종말’ 경고 때문이라며,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날로 고조되고 있는 엄중한 사태에 대처해 공화국의 주권 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공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인 대한민국과 접한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차단, 봉쇄하는 것은 전쟁 억제와 공화국의 안전 수호를 위한 자위적 조치”라며 “요새화 공사와 관련하여 오해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9일 오전 9시 45분 미군 측에 전화통지문을 발송했다”고 공개했습니다.
진행자) 북한 군이 남북한을 잇는 도로와 철도를 차단하는 조치들을 하는 게 이미 포착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이를 공식화한 배경은 뭘까요?
기자) 남북한을 잇는 도로와 철도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도로와 철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작년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 후 경의선과 동해선을 차단하는 움직임이 이어져 지난 1월에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4월에는 가로등도 없앴으며, 6월과 7월에는 각각 동해선과 경의선 철로를 철거했습니다.
지난 4월부터는 비무장지대(DMZ) 북한 측 지역에서 많은 병력을 동원해 대전차 장애물 추정 방벽 설치와 지뢰 매설, 불모지 작업 등을 진행 중입니다.
북한 군의 발표는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고 있는 물리적 군사적 조치를 공식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재미있는 게 이걸 미국에 알린 거거든요. 그게 바로 김정은이 언급한 상황관리 이 대목과 연관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정은 지시를 이행하는 차원 그리고 분쟁 보다는 상황관리를 하고 싶다는 차원 이 두가지로 해석이 되겠네요.”
북한이 어떤 식으로 요새를 만들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과 비슷한 형태로 254km에 달하는 군사분계선에 구조물을 만들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진행자)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기자)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이미 비무장지대에서 정전체제 무력화를 획책해 온 북한의 이번 차단과 봉쇄 운운은, 실패한 김정은 정권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더욱 혹독한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합참은 또 한반도 정세 불안 원인을 미한 탓으로 돌린 데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군은 일방적 현상변경을 기도하는 북한의 어떠한 행동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김 기자. 북한의 헌법 개정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던 최고인민회의 결과도 오늘 나왔죠?
기자) 그렇습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7~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열어 사회주의헌법 일부 내용을 수정보충했다고 9일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월 지시한 영토 조항 반영과 ‘통일’ 표현 삭제에 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이번 회의는 김 위원장이 ‘평화통일’ 이나 ‘북반부’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영토 조항을 신설하는 개헌을 지시한 이후 첫 최고인민회의였기 때문에 관련 개헌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개헌에서 노동 연령과 선거 연령 수정이 반영됐다”고 보고했습니다.
아울러 이번 회의에선 국방상을 강순남에서 노광철로 교체했습니다.
노광철은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 당시 국방상으로서 합의서에 서명했던 인물입니다.
진행자) 이번에 개헌을 통해 통일 삭제 또는 영토 조항 신설이 이뤄질 것으로 봤던 예상이 틀린 걸까요? 어떤 분석들이 나오나요?
기자) 해당 내용을 포함한 개헌이 됐지만 이를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았거나 관련 개헌을 유보했을 가능성 등 여러 관측들이 나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개헌 검토를 지시했지만 김 위원장 지시대로 개헌이 이뤄질 경우 벌어질 정치 군사적 파장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통일 문제, 민족 문제, 영토 문제 이게 아주 본질적인 문제잖아요. 국가 정체성과도 관계되는 문제이고. 그래서 그걸 모두 손보고 했을 때 북한 주민들이 가질 혼란도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깊이 고민하다가 우선 유보해 놓고 좀 더 상황을 보자는 것인지 그런 것 아닌가 생각은 들어요.”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는 정전협정을 부정해 온 북한이 정전협정에 근거한 남북한 경계선을 국경으로 헌법에 집어 넣는 건 스스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박사] “북한이 과거 정전협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정전협정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을 남쪽 국경선으로 헌법에 명시할 수 없는 거죠. 김정은이 올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반도에 병존하는 2개 국가를 인정한다고 얘기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남측처럼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거죠.”
진행자) 그렇다면 북한이 이른바 남북관계 두 국가론에 입각한 개헌을 쉽게 하지 못할 것으로 봐야 할까요?
기자) 김 위원장의 지시인 만큼 포기했다기 보다는 분위기와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남북한 단절과 차단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한 뒤에 헌법 개정 수순의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 박사는 “한국과 미국의 위기 조성 책임을 명분으로 이런 단절과 차단의 단계적 현실화를 통해 북한 주민에 대한 설득력을 확보하고 대내외 여파를 줄여 가며 최종적으로 헌법 개정으로 수렴하려는 수순”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불참한 것으로 미뤄 2국가론에 입각한 헌법 개정이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대의원 선거와 함께 차기 제15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격식을 갖춰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장 박사는 다만 서해 북방한계선(NLL) 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영토 조항 신설은 김 위원장으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장용석 박사] “영토 조항 개정해서 밝히는 순간 김정은은 남쪽하고 전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소위 자신들이 얘기하는 자신의 영토 영해를 침범하는 결과들이 당연히 나올텐데, 왜냐하면 NLL을 그대로 인정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김정은 입장에선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 그리고 그게 또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굉장히 큰 부담을 또 야기할 수밖에 없는, 뭐 러시아도 마찬가집니다.”
진행자) 김 기자, 미한일 세 나라 외교 당국이 최고인민회의 등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협의를 가졌군요.
기자) 네, 미한일 3국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결과를 포함해 현 상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공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와 조구래 한국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 나마즈 히로유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9일 3자 유선 협의를 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 향후 행보를 예의주시하며 긴밀한 공조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3국 대표는 굳건한 미한일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과 긴장 고조 행위를 억제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