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헌법을 개정해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가’ 규정한 것은 한국에 대한 적대 관계를 제도화하고 분단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라고 미국 전문가들이 진단했습니다. 앞으로 남북 관계가 크게 경색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북 관계는 별개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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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이 한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한 내용을 담아 헌법을 개정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적대적 두 국가’ 개념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적대관계 제도화’...대내외 메시지”
[녹취: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 “I think this is clearly an effort to institutionalize the ‘hostile two state’ concept that was announced by Kim Jong Un a while back. By putting it in the Constitution, this concept, or theory, becomes national policy and the national goal. So it really does firm up the idea as the critical basis for governing north-south relations for the foreseeable future, in a very formal way.”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적대적 두 국가론’을 국가 정책이자 목표로 삼은 것”이라며 “한동안 남북 관계를 규정할 개념을 공식화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과거 대남 정책에서 탈피해 한국을 ‘숙적’으로 규정하고 궁극적으로 한국을 제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명분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앤드류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도 이날 VOA와 전화통화에서 ‘철저한 적대국가’ 헌법 명기는 적대관계를 제도화하는 것이라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통일 정책을 폐기한다는 점을 확실히 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여 석좌] “I also think in terms of the North Korean population, it's not easy, after being told for decades that unification is the vision or the dream, this is the really, the principle that was said by Kim Il Sung. My sense is that it's been harder for Kim Jong Un to get buy-in from ordinary North Koreans that unification is no longer a goal. And so I think to reinforce that message, lately we've again seen Kim Jong Un trying to reinforce the distinction, and we saw North Korea blowing up roads and railways that were supposed to connect to South Korea.”
“김일성 주석 때부터 수십년 동안 통일이 목표이자 꿈이라는 말을 들어온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도 통일 폐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김정은이 일반 주민들의 동의를 많이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 석좌는 “따라서 그런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과 연결된 도로와 철도를 폭파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17일, 지난 15일 있었던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연결 도로 폭파 소식을 전하며 “이는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와 적대세력들의 정치군사적 도발 책동으로 예측불능의 전쟁 접경으로 치닫고 있는 안보환경으로부터 출발한 필연적이며 합법적인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지난 7~8일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헌법을 개정했다고 밝혔지만 남북관계와 통일 등에 관한 조항을 어떻게 바꿨는지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북 연결도로 폭파와 엮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주장한 남북 간 ‘적대적 두 국가론’에 입각한 헌법 개정이 이뤄졌음을 처음 확인한 겁니다.
“‘정권 생존’ 위해 외부와 차단”
스콧 스나이더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외부 세계로부터 자국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정권 생존’의 문제로 봤습니다.
이번 조치는 “김정은이 한국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그가 정말 물러서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소장] “I see it primarily as evidence of Kim Jong Un's concern about South Korea. It's really a pulling back. I think it's more of a focus on a narrow focus on regime survival, as opposed to the more expansive objective of a North Korea led unification in which North Korea feels that it is able to shape the environment on the peninsula and around the peninsula. I think North Korea has a long-standing concern with information penetration, the influence of South Korea reaching into North Korea. Also, I think that North Korea is probably concerned by the posture that the Yoon administration has taken.”
이어 “북한이 한반도와 주변 환경에 영향력을 행사해 북한 주도의 통일을 이룬다는 광범위한 목표보다는 정권 생존이라는 좁은 목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나이더 소장은 “북한은 한국발 정보 유입의 영향력에 대해 오랫동안 우려해 왔으며,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자세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남북은 ‘적대적 공존’의 환경에 있다며, 북한이 관계 진전을 위한 어떤 노력도 배제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 대남 도발·위협 나설 것…서해 충돌 가능성”
시드니 사일러 전 미 국가정보위원회 북한담당 국가정보분석관은 17일 VOA와 영상통화에서 북한이 앞으로 군사적 긴장을 높여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북한이 한국에 대한 일종의 도발이나 군사행동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을 수 있다”며 “특히 국경 분쟁과 관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일러 전 분석관은 특히 북한이 영토조항을 공세적으로 설정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역을 분쟁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것은 고의적인 도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사일러 전 국가정보분석관] “I would think that if this does unfold, it would be part of a deliberate provocation move, to bring in to question the Northern Limit Line, the current maritime boundaries, and to test Republic of Korea's willingness to risk armed conflict in defense of those lines, and that the goal would be to create, to foment discord in the south, about North Korea policy, to seek to drive a wedge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ROK, etc.”
“현재의 해상 경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문제 삼고, 한국이 그 선을 지키기 위해 무력 충돌을 감수할 용의가 있는 지를 시험하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는 대북 정책에 대한 한국 내 불화를 조장하고, 미한 사이에 틈을 벌리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미북 관계’ 영향 엇갈려
사일러 전 분석관은 다만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미북 관계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북한이 2018년에 그랬듯 어떤 이유에서든 미국과 다시 대화에 나서고, 또 다른 유화공세를 펼치기로 결정한다면 ‘적대적 두 국가론’ 헌법 명기는 쉽게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도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는 “평행적이며 별개의 궤도에 있다”며 “만약 북한이 어느 시점에서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적대적 두 국가론’이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여 석좌는 남북 관계 경색이 미북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여 석좌] “The United States is trying to move in lockstep with South Korea but because they're moving in a similar direction, I think there would be a coordinated response just from the US and South Korea to any kind of North Korea provocation. But again, that means that we have a shrinking diplomatic space between North Korea and other parties.”
여 석좌는 “미국은 한국과 함께 보조를 맞추려고 하고 있고,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어떤 도발에 대해서도 미한은 대응을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북한과 다른 당사국들간 외교적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했습니다.
스나이더 소장은 “국제 정세가 냉전으로 회귀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러시아라는 후원자가 있으며, 미국과의 관계보다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통해 핵 지위의 정당성을 찾는 데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