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항구에서 자취를 감춘 북한 제재 유조선 천마산호가 나흘 만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러시아에서 선적한 유류를 싣고 북한 남포로 복귀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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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조선 천마산호가 다시 나타난 건 한반도 시각으로 25일 오후 10시 4분 경입니다.
선박의 위치 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fic)’에 따르면 천마산호는 이 시각 한국 울릉도에서 동쪽으로 약 190km 떨어진 해상에서 위치 신호가 잡혔습니다. 이후 남쪽 방향으로 이동해 26일 새벽 5시 현재는 일본 오키 제도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지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앞서 VOA는 천마산호가 20일 새벽 3시 러시아 극동지역의 보스토치니항에 도착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어 21일 오후 9시 50분까지 같은 지점에 머물던 천마산호는 돌연 위치 신호를 끄고 사라졌습니다.
천마산호가 사라진 지점이 보스토치니항의 유류 선적 부두에서 바다 쪽으로 불과 약 800m 떨어진 곳인데다 이 선박이 유류를 운반하는 유조선이라는 점에서 유류 선적을 위해 이 항구를 방문한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자취를 감춘 지 약 나흘 만인 이날 천마산호가 한반도 동해상에서 다시 포착된 것입니다.
북한은 이 항로를 이용해 북한 서해의 남포항과 러시아 극동지역 항구를 오가곤 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천마산호가 다시 남포항으로 복귀 중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2018년 3월 불법 선박 간 환적에 연루된 천마산호 등 선박 27척을 제재하고, 천마산호 등 13척에 대해선 각국이 자산 동결과 입항 금지 조치를 취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천마산호의 러시아 항구 기항은 명백한 대북제재 위반입니다.
그러나 천마산호가 현재 유유히 공해상을 항해 중인 점으로 볼 때, 러시아로부터 어떤 조치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천마산호가 러시아 항구에 기항하며 유류를 선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5월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한 정제유 양이 이미 유엔 안보리가 정한 올해 한도를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올해 5월 이후 천마산호를 포함한 북한 유조선에 유류가 공급됐다면 이 역시도 안보리 결의 위반입니다.
이번 북한 유조선의 러시아 입항이 북한 군의 러시아 파병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뤄진 점도 주목됩니다.
앞서 한국 국가정보원(국정원)은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이 지난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까지 북한군 약 3천 명이 러시아로 이동한 가운데 오는 12월까지 추가로 1만여 명이 이동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북러 군사협력이 대북제재 이행에 대한 러시아의 동력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는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며 기존 대북제재 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을 감독하는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을 무산시켰으며, 북한 라진항에선 러시아 선박이 북한 무기를 선적하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습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고가의 차량을 선물하며 사치품과 차량의 대북 수출을 금지한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북한과 러시아가 유류 거래에 있어서도 노골적으로 제재를 위반하려는 것은 아닌지 주목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해군 대령 출신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21일 VOA에 “나포돼야 할 특정 제재 선박을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가 유엔 제재 위반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