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는 6.25전쟁 60주년을 기념 해 사진.영상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을 찾는 학생들의 발길은 뜸했습니다. 행사 관계자는 썰렁한 행사장을 보며 월드컵 축구의 열풍과 방학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듯 말했습니다.
이 곳을 찾은 한 대학생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가 겪어야 했던 민족사 최악의 전쟁인 한국전쟁에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느냐고 자탄하기도 했습니다.
“6.25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휴전 상태인 거잖아요. 아직도 사실 전쟁 중인 것이고 잠시 쉬고 있는 것 뿐인데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다 망각하고 있지는 않나, 요즘 천안함 사태도 있고 했는데 좀 경각심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한국국방연구원 김광식 박사가 최근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한국전쟁의 발발 연도를 안다는 응답자는 15~19살 연령층에서 47%, 그리고 20~29살 연령층에선 49%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전쟁을 연구한 학자들은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이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다고 말합니다. 그 것은 그 전쟁이 한국 사람들에겐 이념을 떠나 적과 동지가 불분명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 교수입니다.
[액트] “한국전쟁이 가져다 주는 양분법적인 인식이 일반인들 사이에는 불편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삼촌이 부역했을 수도 있고 아저씨가 적에 전향했을 수도 있구요…”
이런 이유로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적이면서 동족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오늘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은 다양한 해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갖고 있는 복합적인 성격 때문입니다.
한 때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놓고 벌였던 논쟁은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 햇볕을 보게 된 구 소련의 외교문서를 통해 북한 김일성이 계획한 것을 소련의 스탈린이 승인하고, 중국의 마오쩌둥이 협력해 이뤄진 남침으로 사실관계가 정리됐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성격에 대해선 여전히 논쟁이 뜨겁습니다. 좌우 이념을 둘러싼 남북간 내전적 성격을 강조하는 설명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세력의 대리전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한국 편에 16개 유엔 참전국이 있었고 대규모 중공군 병력이 북한을 도와 참전했다는 전쟁 양상 때문에 국제전적 성격에 비중을 둔 해석도 존재합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전쟁의 성격과 관련해 눈에 띄는 현상은 ‘자유수호전쟁 논란’입니다.
서울대학교 박효종 교수는 당시 한국 사회가 비록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초보적 인식은 있었다며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와 인권을 지켜낸 자유수호전쟁으로 한국전쟁의 성격을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액트] “6.25 전쟁은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그래서 이것을 6.25 혹은 한국전쟁이다, 이와 같은 중립적 개념 또 성격도 드러나지 않은 이런 명칭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6.25는 호국전쟁이다 이런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똑 같은 이유로 자유수호전쟁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반론이 많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 교수입니다.
“물론 북의 남침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자유도 이 것을 침해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이 예를 들어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상당히 컸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자유수호만으로만 얘기하는 것은 그 당시 전쟁의 국면을 다소 단순화시키고 왜곡하는,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과장하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는 한국과 달리 북한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국해방전쟁이라는 오직 한가지 규정만을 허용하고 있고 또 북한주민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로 현재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오세혁 씨는 “6.25 전쟁에 대해선 세뇌되다시피 미군이 6월25일 일요일 새벽에 먼저 폭격을 해 일어난 전쟁으로 배웠다”며 “달리 의문을 가질만한 정보는 일절 없었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남한이 먼저 침입을 했다면 북한이 그냥 다음 날 바로 반격을 해서 일주일 만에 부산까지 내려갔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은 전쟁 역사상 없다 이러면서 북한군을 자화자찬했었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내가 참고할만한 지식이 있었다면 그렇게도 될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해봤겠죠.”
학계에서의 한국전쟁 성격 논쟁과는 별개로 그 전쟁이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북한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는 실질적 영향은 지대합니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한국전쟁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꼽는 것은 남북한 사회가 전쟁을 치르면서 다양한 이념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물론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를 성취하면서 이같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냉전적 대결의식이 탈냉전 시대 한국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인제대학교 김연철 교수입니다.
“여전히 그 전쟁이 남긴 어떤 증오라든가 전쟁이 남겨 준 감정적인 그런 부분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이라든가 또 남북관계의 미래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냉전적인 의식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이 한국전쟁의 실패를 경쟁세력을 제거하는 빌미로 활용하고 전쟁 공포를 주민통제에 이용함으로써 견고한 일인 지배체제 하에서의 획일적인 통제사회로 북한사회를 몰고 갈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류길재 교수입니다.
[액트] “역설적이게도 6.25 전쟁의 실패가 자신과 출신이 다른, 또 항일 시절 활동이 다른 지도자들을 숙청하는 중요한 계기를 줬다는 점에서 향후 김일성 권력의 독점화, 예를 들어 경제 외교 사회정책 등에서 단순성, 제한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 이런 것들을 결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내 탈북 지식인 단체인 ‘NK 지식인 연대’ 김흥광 대표는 오늘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가 북한 주민들에게 먹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한국전쟁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액트] “선군정치를 한다고 선포를 했을 때 북한 주민들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죠. 왜 전쟁에서 우리가 정전을 했고 또 남한을 우리가 해방시켜야 하는 역사적 의무 앞에서 당연히 군이 혁명과 건설의 선두에 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아마 선군정치라는 것이 결국은 6.25 전쟁이 남겨 놓은 후속적인 탄생물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전쟁으로 남북한이 각자 자기 사회 내에서 이념적 동질성을 확보하면서 한국에선 산업화가 북한에선 사회주의 공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긍정적인 측면을 제기하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 이완범 교수입니다.
“탈냉전 이후의 국면에서 평가해보면 그것은 이념적 왜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50~70년대 치열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 저항세력을 누를 수 있는 기반이라고 하는 것이 정치적으론 필요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순기능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은 그것이 종전이 아닌 휴전협정으로 일단락됐다는 점에서 법적으로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특히 지난 3월 26일 터진 천안함 침몰 사건이 다국적 합동조사단에 의해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이 나면서 빚어진 남북한 사이의 날카로운 대결상은 한국 국민들에게 정전상태일 뿐이라는 한반도의 현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습니다.
한국사회는 분단의 아픔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 나아가 선진화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나머지 반쪽은 여전히 6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는 폐쇄적이고 적대적인 세력으로 남아있습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류길재 교수는 한국전쟁의 교훈과 관련해비록 한국사회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지만 한국전쟁을 일으켰던 북한의 실체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6.25 전쟁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생각은 크게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25 전쟁으로 초래된 남북한의 대결적 속성, 이것을 정면으로 응시를 하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런 고민들이 한국사회가 이룩한 눈부신 발전 속에 같이 용해돼서 총체적으로 고민돼야지 어느 한쪽만 부각시켜서 얘기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특히 풍요의 혜택을 입고 자란 전후세대에게 한국전쟁의 교훈을 현재적 관점에서 가르쳐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 조정아 박사는 전쟁의 참혹했던 경험을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정신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북한 놈들은 참 나쁜 놈들이야, 이렇게 감정적 차원에서 다가가는 것을 넘어서 미래지향적이고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 속에서 전쟁 위협을 해소하는 것, 그리고 평화를 가져오는 것 이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과 연결지어져서 얘기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선 전쟁과 분단의 역사가 한반도의 통일과 더 나아가 동북아 평화라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재조명되고 이를 젊은이들에게 교육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0주년을 맞았습니다.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지 5년 만에 발생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분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대리전의 성격을 띤 분쟁으로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 축으로 하는 동서 간 냉전이 본격화됐습니다. 미국은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해 3년 간 계속된 한국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고 미국 외에도 전세계 15개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남한을 지원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9회에 걸쳐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특집방송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그 여섯 번째 순서로 ‘한국에서 보는 한국전쟁’ 편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