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식량·외환·전력난 위기 수준…정책 변화 필요"

지난 4월 중국 단둥에서 압록강 너머로 바라본 북한 신의주.

북한의 식량과 외환, 전력 사정이 대북 제재와 국경 봉쇄 등으로 인해 위기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국경 개방 등 정책 전환이 필요하지만 상황 관리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확신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국경 봉쇄, 그리고 자연재해는 그동안 북한 경제의 ‘삼중고’로 꼽혀왔습니다.

이런 삼중고의 여파가 식량과 외환, 전력 등 북한의 주요 실물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모습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식량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전원회의에서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최고 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언급할 만큼 식량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북한의 장마당 물가를 모니터하는 전문매체들은 곡물 가격 폭등에 주목했습니다.

현지 소식통을 통해 북한 내 장마당 물가를 집계하는 일본 매체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4천200원이던 쌀 값은 이달 15일 7천원, 옥수수는 2천200원에서 5천300원으로 치솟았습니다.

지난 2주 사이 각각 1.7배와 2.4배 폭등한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매체의 집계도 비슷한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전년 수확이 소진되는 춘궁기 북한의 곡물 부족과 가격 상승은 매년 반복돼 온 일이지만 올해는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KEI) 선임국장은 16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수급 악화가 누적되면서 최근 가격이 폭등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식량 배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당국의 곡물 비축분이 부족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밴슨 전 고문] “But it's, it's compounded by the fact that they probably have not, not very much in storage, which means they've not been able to provide through the public distribution system..”

배급이 부족해 주민들이 곡물 구입을 위해 시장으로 나오면서 수요가 폭증했고, 불안심리까지 겹쳐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상황이라는 게 뱁슨 전 고문의 설명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2019년 464만t에서 지난해 440만t으로 감소했습니다. 필요량에 비해 100만t 이상이 부족한 겁니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같은 대기근 징후는 아직 없다면서도 곡물 가격 폭등을 통화 관리에 대한 ‘위험 신호’로 해석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It seems pretty clear that something very dangerous is occurring in the markets in the in the monetary in the prices, just in the last few weeks..”

곡물 등 물가상승은 화폐 가치 하락을 동반하지만 북한의 환율은 현재 정반대 상황이라는 겁니다.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중국 위안화 환율은 지난달 28일 970원에서 이달 15일 590원으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식량 수급보다 외환 관리가 더 큰 골칫거리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은 대부분 끊긴 상태입니다.

석탄 등 광물 수출과 해외 노동자 파견 등 기존 외화벌이 수단은 제재로 일찌감치 막혔고, 신종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로 북-중 교역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정상적인 외화벌이마저 끊겼기 때문입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북한의 대중 수입액은 26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전달인 9월의 수입액(1천888만 달러)에 비해 무려 99% 감소한 겁니다.

또 올 2월 말 현재 불법 해상 환적을 통한 정제유 밀반입도 중단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원유를 구매할 현금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전력난과 석유난도 제재와 국경 봉쇄, 외환 부족 등의 악순환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는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연간 400만 배럴, 휘발유 등 정제품 공급 상한선을 50만 배럴로 제한했습니다.

북한은 부족한 유류를 중국의 지원과 불법 거래를 통해 충당했지만 수급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7년 4월 평양의 휘발유는 kg당 6천원 선이었지만 이달에는 1만 2천원 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북한 지도부의 정책 전환과 ‘전략적 결단’이 없는 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고립과 자력갱생’으로는 난관을 돌파할 수 없다며, 국제사회와의 관여 외에는 방도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뱁슨 고문] “There’s no way, but my bottom line is isolation and self-sufficiency will not provide safety for them. They're going to have to find a way to make an opening up, by opening the trade with China, or they can open up two offerings that are coming from South Korea and from the US to engage in and to provide some willingness to provide meaningful health…I think Kim Jong-un is in it with a strategic choice”

국경 개방을 통해 중국과 무역을 재개하고 한국의 인도적 지원을 수용하며, 미국과 협상에 나서는 등 김 위원장의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브라운 교수는 국경 개방이 필요하지만 북한 지도부는 개방 직후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So they need to open the border. But I think they're afraid as soon as they open the border, there'll be a flood of imports and money. Their hard currency will flow out to China. In other words, they'll spend whatever dollars they have…The regime doesn’t know how to handle border opening.”

북한 당국은 국경을 개방할 경우 수입 폭등과 외환 유출을 염려하고 있으며, 개방 이후 상황 관리에 대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편 스탠거론 연구원은 국경 봉쇄 등 북한의 코로나 방역을 내세워 취한 조치가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며, 북한의 경기 회복 능력은 국제사회와의 백신 협력이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