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남북 교류의 상징이었던 금강산 관광이 내일(18일)로 22주년을 맞게 됐지만 닫힌 관광의 문은 다시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핵 협상을 둘러싼 미국 차기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관광 재개도 힘들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기자가 보도합니다.
금강산 관광은 지난 1998년 11월 18일 관광선 금강호가 이산가족을 포함해 800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을 태우고 한국 동해항을 떠나 북한 장전항에 입항하며 시작됐습니다.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한 때 한국으로부터 매년 상당한 규모의 관광객들을 유치하면서 북한의 외화벌이에 효자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지난 2008년 7월 북한군에 의한 한국인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전면 중단됐습니다.
관광이 이뤄졌던 10년 간 금강산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193만 명에 달했습니다.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함께 관계 개선의 훈풍이 불면서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잠시 커지기도 했지만 올해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미-북,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까지 겹치면서 전망이 한층 어두워졌습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17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신종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 22주년을 기념한 방북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금강산을 시찰하면서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한 이후 한국 측에 ‘시설 완전 철거 문서 협의’를 요구했고 이어 같은 해 12월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올해 2월까지 시설 철거를 요구하는 대남 통지문을 발송했습니다.
한국 측은 이에 대해 ‘대면 협의와 일부 노후시설 정비’ 입장을 견지하면서 북한의 통지문에 회신하지 않았고, 올해 1월 30일 북한이 신종 코로나 전염을 막기 위해 금강산 시설 철거를 당분간 연기한다는 통보문을 한국 측에 보낸 이후 협의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북한이 금강산 시설 철거를 요구했지만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은 사업파트너인 현대아산을 무리하게 압박할 경우 다른 외자 유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해 놓은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와의 사업 연계를 염두에 두고 미국의 차기 행정부 등장 등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응책에 집중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의 가장 큰 관건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 여부입니다.
이인영 한국 통일부 장관은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개별관광을 하자고 꾸준히 제안해왔지만 북한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개별관광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지만 관광에 필요한 운송수단의 왕래나 여행업체간 뭉칫돈 거래는 국제사회 제재나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에 저촉될 소지가 있어 이를 고려할 경우 사실상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고명현 박사입니다.
[녹취: 고명현 박사] “현 유엔 제재 차원에선 개별관광만 가능한데 그것도 인도적 차원의 개별관광이라서 사실 이산가족 상봉의 포맷을 취하는 게 가장 쉽거든요, 제재 성격을 감안하면. 그게 돈벌이가 안되고 사실 북한 입장에선 제재라는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만 정치적으로 좋은 그런 사업이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을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후 관광산업 육성에 막대한 돈을 들여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마식령 스키장, 양덕 온천 등을 개발했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국경 봉쇄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처지에 놓였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이 최근 주재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방역 강화 조치를 취했다며, 동절기 신종 코로나 대유행에 대비해 북한이 당분간 국경 봉쇄를 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직후여서 미 차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당장의 현안이 되기 어렵다는 관측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는 핵 협상을 둘러싸고 북한이 미 차기 행정부와 어떤 관계 설정을 하느냐가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박사는 지난 8일 대선 승리 연설을 한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핵 보유를 완성한 북한에 대해 더 강력한 제재에 나서든 실무적이고 단계적인 관여정책을 펴든 북 핵 문제를 방치하진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미-북 관계를 중재하려는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중 관계를 강조하고 그러지만 사실 지금 북한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어요. 북-중 관계에 완전히 포섭된다는 게 북한이 자율성을 상실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그건 굉장히 위험한 시나리오고요.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변화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개별관광이라는 게 사실 궁여지책이거든요.”
고명현 박사는 격렬해지고 있는 미-중 패권갈등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이 중국에 의지해 경제난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