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이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으로는 경제를 되살리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북한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문제점과 한계는 무엇인지,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예고해 온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월 5일부터 평양에서 일주일간 열린 제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지난번 국가경제발전 목표가 “엄청나게 미달”했다며 새로운 경제발전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습니다.”
북한은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목표로 “지속적 경제 상승과 인민생활의 뚜렷한 개선 향상”을 제시했습니다.
또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을 중시하겠다며 원자재를 보장해 “인민소비품 생산을 늘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수치 목표는 3개만 공개됐습니다. “시멘트 800만t 고지 점령” “평양시 5만 세대 살림집 건설” “검덕지구 2만5천 세대 살림집 건설” 등입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발전 계획이 부실하다고 지적합니다. 통상 경제계획에는 자금 조달 계획과 함께 에너지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계획, 수출과 무역 계획, 농업과 공업 등 산업별 발전 계획, 소득 증대 계획 등이 망라돼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이 내놓은 계획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고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North Korea still have plan that is broken down, no detail...”
북한의 이번 경제발전 계획은 과거와 비교해도 부실하다는 지적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5년 전인 2016년 5월 평양에서 열린 7차 당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인민경제 활성화, 경제 부문 간 평형성 추구,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5개년 전략의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병진노선’과 함께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강조했습니다. 또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내놓은 경제발전 계획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무역도 없고 수출도 없고 공장과 기업소 관리 방안도 없고 구체적인 전력난 해결책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은 이번 경제계획이 자력갱생을 전제로 한 과거의 계획으로 후퇴한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이번에는 자력갱생을 기반으로 만들진 것으로 성격이 다르고, 오히려 60년대식 중공업 발전 전략으로 회귀한 것 아닌가.”
분야 별로 보면 그동안 4대 선행 부문을 강조해온 북한은 이번에 2개 분야를 강조하는데 그쳤습니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경제 정상화를 위해서는 전력, 석탄공업, 금속공업, 철도운수 분야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력, 석탄, 철도가 빠지고 대신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이 들어갔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금속공업을 강조한 것은 ‘주체철’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주체철이란 코크스를 수입할 수 없게 되면서 자체적으로 무연탄을 활용해 강철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북한은 2009년부터 주체철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화학공업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석유 수입이 힘들어지자 ‘탄소하나공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탄소하나공업이란 석탄을 활용해 휘발유와 합성섬유, 합성고무, 농약, 비료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탄소하나공업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 전문가인 동용승 사무총장은 북한이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을 강조했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북한 금속공업의 기본은 철이고 화학공업은 석탄인데, 철과 석탄은 매장량이 많기때문에 자력갱생 기반으로 삼겠다는 것인데, 전기와 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거죠.”
새 경제계획에서 공개된 3개의 수치 목표는 모두 건설과 관련된 겁니다. 시멘트 800만t 생산과 평양과 검덕지구에 살림집 7만5천 세대가 그런 겁니다.
살림집 건설은 제재와 코로나 사태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입니다. 건설은 인력과 시멘트만 있으면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목표를 내세운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북한이 경제발전 예산을 늘려잡지 않은 겁니다. 북한은 8차 당 대회가 끝난 지 닷새만에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해 예산 문제를 다뤘습니다.
그런데 올해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첫 해인데도 예산은 늘지 않았습니다. 예산 수입을 지난해보다 불과 0.9% 늘린 가운데 경제건설 투자도 0.6%만 늘렸습니다.
최근 경제건설 투자가 3년간 매년 5~6%가량 증가해온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어든 겁니다.
한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고명현 박사는 북한이 긴축정책을 펴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명현 박사] “일종의 긴축정책을 펴는 거죠, 긴축정책을 단기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내포하는 것같습니다.”
북한이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현상유지적인 경제계획을 수립한 배경에는 경제난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 제재는 2017년부터 시작됐지만 북한은 지난 4년간 비교적 잘 버텨왔습니다.
대북 제재가 시작될 당시 북한 당국은 석탄 수출과 외화벌이 등을 통해 25-58억 달러 규모의 외화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북한 주민들은 주로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로 시장에서 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제재로 인한 물가 오름세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장마당이 돌아갔기 때문에 물품 공급도 그런대로 됐습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경제 사정이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지난해 1월 말 북-중 국경을 차단했습니다.
그러자 중국으로부터 생필품 공급이 끊기면서 물가가 오르고 장마당이 개점휴업 상태가 됐습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북한의 외화보유고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달러화와 위안화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원-달러 환율을 인위적으로 20% 이상 떨어뜨렸습니다.
그 결과 북한의 환율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원-달러 환율은 8천원 선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환율은 7천400원으로 떨어졌고, 지난 몇달간 환율 변동 폭은 무려 25%에 달합니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립대학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그레이스 오 교수는 북한 당국의 인위적인 환율 조작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스 오 교수] “Look into history, currency reform from to to button…”
북한 수뇌부도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는 것같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발전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그런데 공개된 관영 `조선중앙TV' 영상을 보면 김 위원장이 상기된 얼굴로 간부를 세워놓고 삿대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급기야 북한은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된 김두일 당 경제부장을 경질하고 오수용을 임명했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당초 의도대로 혁신적인 경제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대신 경제관료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Kim said make a major change but where is major change, frustration...”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북한이 이번에 경제 목표를 낮게 잡았기 때문에 실패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은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첫 해인 올해 자력갱생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국경 봉쇄 장기화로 북한 경제는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북한 수뇌부가 새로운 경제계획으로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