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7-8월을 식량난의 중대 고비로 보고 있는데요. 북한 식량난 실태를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이후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6월 15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식량난을 공식 시인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이 계획에 미달돼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후 식량난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장마당에서 1kg에 4천원 하던 쌀 가격이 7천원대로 오른 시점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그만큼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뜻으로, 올해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을 겪을 것이라고 한국의 북한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동북아연구원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올해 식량 상황은 제가 보기에는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나쁜 한 해가 될 거라고 보는데요. 일단은 작년 작황이 좋지 않았던 것이 핵심이고...”
전문가와 탈북민들에 따르면 북한 전역에서는 이미 식량난으로 갖가지 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식량난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자강도, 강원도로 알려졌습니다.
이들 지역은 산이 많은 곳으로 그동안 주로 중국과의 공식, 비공식 무역으로 식량을 조달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북-중 국경이 봉쇄되고 17개월 이상 밀가루를 비롯한 식량이 들어오지 않아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서울의 민간단체인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말했습니다.
[녹취: 김흥광 대표] “코로나로 돈을 벌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중간층도 입쌀을 못먹고 옥수수로만 끼니를 때운다는 소식을 알고 있어요.”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소장은 황해북도의 제철소에는 배급이 끊어져 출근을 못하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출근 못하는 원인이 배급을 주지 못해서 식량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해서
못하고 있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황해북도 송림에 있는 황해제철연합기업소의 경우에 출근률이 50%도 보장되지 못해서 해방 이후 이렇게까지 출근률 떨어진 게 처음이라고 하거든요.”
식량난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쌀과 옥수수 (강냉이)가격이 오르자 북한 당국은 장마당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안전원들은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메뚜기’라고 부르는 길거리 가판과 노점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인들과 안전원 사이에 욕설과 싸움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 (ASIA PRESS)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말했습니다.
<ISSUE WKC-ACT5>[녹취: 이시마루 지로 대표] ”지금 개인의 경제활동을 엄청 심하게 단속합니다. 장마당의 조그만 두부장수, 담배장수를 단속해 몰수합니다. 그걸 뺏기면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울고불고, 욕하고 분위기가 너무 안좋다는 보고가 각지에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식량난을 곡물 공급과 구매력 하락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의 농경지는 190만 ha로 여기에서 매년 390-460만t 정도의 쌀과 옥수수(강냉이)를 생산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의 경우 봄 가뭄과 비료 부족, 그리고 태풍과 수해 등으로 전년도에 비해 24만t 감소한 440만t에 그쳤습니다.
반면 식량 수요는 일정합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 (WFP)과 식량농업기구 (FAO)는 북한의 인구를 2천500여만 명으로 잡고 연간 식량 수요량을 575만t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식량 필요량 575만t에서 생산량 440만t을 빼면 부족량이 135만t입니다. 이는 북한이 자체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규모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식량난의 또다른 이유는 장마당 기능 마비와 주민들의 구매력 하락과 관련이 있다고,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 think they’re in a situation where the markets have limitations on their ability to moderate the impact.”
북한의 배급제도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사실상 붕괴됐습니다.
현재 배급을 타는 사람들은 당 간부나 보위부, 안전원같은 힘있는 사람들입니다. 일반 주민들 대부분은 개인장사를 하거나 각자 돈을 벌어 장마당에서 쌀과 옥수수를 사먹습니다.
4인 가족이 1인당 쌀을 500g씩 먹는다고 가정하면 하루 한 세대에 필요한 양은 2kg입니다. 그러면 한 달에는 60kg이 필요합니다.
종전의 장마당 쌀값은 1kg에 4천원 선이었습니다. 따라서 한가족이 장마당에서 쌀을 사려면 한 달에 2만4천원이 필요하며, 이는 미화로 환산하면 3 달러입니다.
과거처럼 개인장사가 잘되면 중간층 주민들은 이 정도 돈은 벌 수 있었습니다. 또 장사를 안하는 주민들도 돼지를 비롯한 가축을 키워 팔아 돈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개인장사를 하려면 중국에서 물품이 들어와 시장이 돌아가야 하는데, 지난해 1월 북-중 국경 봉쇄 이래 17개월 넘게 중국에서 물자 반입이 끊겼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5월부터는 가축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평안남북도의 경우 대부분의 돼지가 폐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식량 가격은 5월부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북한전문 매체인 ‘데일리 NK’에 따르면 북-중 접경 도시인 혜산의 경우 1kg에 4천원 선이었던 쌀값이 지난 6월16일 6천300원까지 오른 뒤 27일에는 7천원으로 더 치솟았습니다.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과거 2만4천원이었던 한 달 식량 구입비가 2배 가까운 4만2천원이 된 겁니다.
이같은 물가 오름세는 대부분 주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동북아연구원장은 분석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장마당에서 장사가 잘 되고 하면 이 정도 식량 구매 능력은 있는 것인데, 지금 시장활동이 제대로 안 되는데다, 키우던 돼지가 다 폐사하니까 주민들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죠.”
북한의 식량난은 6월 들어 정치 문제가 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식량난을 시인한 데 이어 17일에는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특별명령서’를 공개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이 군량미 방출을 지시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난번 전원회의에서 특별명령서라는 게 2호 창고 식량 공급이라는 설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2호 창고의 식량이 풀리면서 그 소식 자체가 시장에 심리적 안정을 주거든요. ”
그러나 군량미를 풀어 쌀값을 안정시키라는 이 특별명령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6월 29일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정치국 상무위원인 리병철과 군 총참모장 박정천, 국방상인 김정관을 강등시키고 최상건 당 비서는 해임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군량미 방출이 뜻대로 안되자 북한 당국은 시장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지난 8일 국회 보고를 통해 “북한 당국은 길거리 가판과 노점을 금지시키고 있다”며 “쌀 가격을 (kg당) 4천원, 옥수수는 2천원이 넘지 않도록 통제하고 이를 어기면 총살하겠다는 목표"라고 전했습니다.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동북아연구원장은 7-8월이 북한 식량난의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가을 수확한 쌀과 옥수수를 대부분 소비했습니다. 6월에는 이모작 작물인 감자와 밀, 보리 등이 나옵니다.
그러나 감자는 6월부터 한 달 정도 소비하면 끝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두 달을 버텨야 하는데 버틸 식량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이번 달은 겨우 겨우 버틸겁니다. 그러나 다음달이 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공산이 크고, 북한 당국이 빨리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부분적으로 아사자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식량난을 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언제, 어떤 경로로 국제사회에 식량 지원을 요청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