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계속되면서 북한의 에너지 사정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전력난을 언급하는가 하면, 지방에는 목탄차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가 3년 넘게 이어지면서 북한의 전력난과 석유(연유)난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월 8일부터 사흘간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탄광에 전력 공급이 안 돼 생산이 멈췄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탄광·광산에서도 전기가 보장되지 않아 생산이 중지되는 애로가 존재하고, 인민들의 생활에도 불편을 주고 있습니다.”
전력뿐 아니라 자동차 연료 공급도 안 돼 지방에는 목탄차가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겨울 북-중 국경 일대를 돌아본 한국 동아대학교 강동완 교수가 유튜브에서 자신이 목격한 목탄차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북-중 국경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목탄차가 고장이 나서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이 지역 주변이 온통 연기가 가득차 있고…”
북한의 본격적인 에너지난은 2017년 12월 시작됐습니다. 북한은 그 해 9월 6차 핵실험을 감행한 데 이어 11월 29일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한 화성 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시험발사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2397호를 채택했습니다.
이 결의의 핵심은 북한의 돈줄인 석탄 수출을 차단하는 한편 석유 공급을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대북 원유 공급을 연간 400만 배럴로 묶고 휘발유 등 정제품 공급 상한선을 50만 배럴로 제한했습니다. 북한 경제가 돌아가려면 900만 배럴의 기름이 필요한데 50%를 줄인 겁니다.
갑자기 석유 공급이 줄어들자 북한은 20여 척의 유조선을 동원해 불법적인 해상 환적에 나섰습니다.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해 불법으로 석유를 밀수하고 있는 겁니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18년도 1월에서 8월 사이 최소 148회에 걸쳐 선박 간 환적으로 기름을 대량 수입했습니다.
보고서는 이런 환적을 통해 최대 227만 배럴의 기름이 북한에 유입됐을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2019년에는 불법 환적과는 별개로 외국 선박이 직접 북한 남포항에 들어가 석유를 공급했습니다.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그 해 1월부터 10월까지 외국 선박이 총 64회 남포에 입항했다며, 이를 통해 반입된 정제유가 4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2020년에도 북한은 1월에서 5월까지 56 차례에 걸쳐 불법 환적을 했습니다. 유엔은 5개월간 이렇게 반입된 정제유를 최대 160만 배럴로 추정했습니다.
중국은 송유관을 통해 북한에 매년 원유 400만 배럴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불법 해상 환적과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 덕분에 북한은 지난 3년을 그럭저럭 버틸수 있었다고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김경술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김경술 박사] ”작년, 재작년같은 경우에는 400만 배럴 이상 수입했기 때문에 석유 수급상 큰 어려움을 겪은 것같지 않습니다.”
문제는 올 3월부터 발생했습니다. VOA가 일일 단위 위성사진 서비스 ‘플래닛 랩스(Planet Labs)’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3월부터 3개월간 남포항에 드나든 유조선은 단 2척에 불과했습니다.
2-3일에 한 번 꼴로 유조선이 드나들었던 예년과는 크게 다른 겁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3-5월)에는 20여 척이 남포항을 드나들었습니다.
불법 해상 환적도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환적은 주로 동중국해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마지막으로 보고된 불법 환적은 지난 2월 28일 프랑스 해군 구축함 프레리알 호가 동중국해서 포착한 것입니다.
해상 환적을 통한 석유 반입이 줄면서 북한의 기름값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시작되기 전인 2017년 4월만 해도 평양 시내 연유판매소(주유소)에서 휘발유는 kg당 6천원 선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북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휘발유 가격은 그 해 6월 2만 2천원까지 올랐습니다.
그 후 해상 환적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안정세를 유지했던 기름값은 올 3월부터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고, 김경술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김경술 박사] ”3월7일 휘발유 가격이 kg당 7천원이었는데 6월에는 1만 2천원으로 올랐어요, 그 사이에 지속적으로 올랐어요.”
전문가들은 북한이 환적을 통해 기름을 확보하지 못하는 배경에 외화난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휘발유와 경유, 등유 등은 모두 현금을 줘야만 살 수 있는데 북한은 외화가 없어 석유를 구매하지 못하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They are not exporting anything, so probably, they don’t have…”
북한이 환적을 위해 외화를 얼마나 외화를 사용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처럼 휘발유 등 정제유를 400만 배럴 정도 수입했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2억 4천만 달러를 사용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합니다. 현재 국제 휘발유 가격은 배럴 당 60달러입니다.
북한이 석탄 수출을 할 수 있으면 이 정도 금액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나 북한의 석탄 수출은 지난해 8월 이후 9개월간 중단됐습니다.
위성사진을 보면 북한의 석탄 수출항인 남포에는 올 2-3월에 몇 차례 선박이 드나든 것이 전부입니다.
북한에서 과거 석탄무역업에 종사했던 탈북민 이현승 씨는 석탄 수출 길이 막히면서 석유도 사지 못하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현승 씨] “제재 때문에 경제활동이 많이 위축되고, 그리고 수출이 적어지게 되니까 북한에 돈이 모자라게 되고, 돈으로 연유를 사올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거죠.”
미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장은 석유 부족 사태가 북한의 군사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부는 작전과 훈련을 위해 반드시 트럭과 탱크 등을 움직일 연료가 필요한데 기름이 없으면 참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They pretty lock down stay in bunkers…”
이런 가운데 외화난이 가중되면서 북한의 에너지 수급 상황도 한층 악화되고 있습니다.
북한 수뇌부가 위기 국면으로 치닫는 에너지난을 어떻게 헤쳐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