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서남북] 북중 국경봉쇄 풀리나?

지난 2019년 2월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중조우의교 위로 열차가 지나고 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이 지난해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취했던 국경 봉쇄 조치를 풀려는 조짐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굳게 걸어 잠갔던 북-중 국경을 풀려는 것으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 중부 산시성 퉁촨시 정부는 이달 초 북한 내각 화학공업성 원유사 신영남 사장의 방문을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북한은 중국과의 국경을 막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해 왔는데 오랜만에 북한 고위 경제 간부가 중국을 방문한 겁니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신영남 사장은 시멘트와 벽돌, 타일 같은 건축자재를 만드는 공장들을 잇따라 둘러봤습니다.

신영남은 과거 북한 관영매체인 `노동신문'에 아크릴 페인트 기술의 자립에 큰 공을 세웠다며 ‘애국자’로 소개됐던 인물입니다.

북한 내부를 오래 관찰해온 미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국장은 북한이 자력갱생에 필요한 기술이나 자재 수입을 타진하기 위해 방문단을 중국에 보낸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Obviously North Korea researching or information gathering…”

북한은 또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신의주 등에 대형 소독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로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는 지난 9일 북-중, 북-러 국경에 대형 소독장 건설이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소독장이 완성될 경우 중국에서 북한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대해 1차 검역과 방역이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이달 초 열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수입물자소독법’을 채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수입물자소독법은 국경에서 수입물자를 소독하는 한편 관련 절차를 어기면 처벌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이는 봉쇄했던 국경을 일부 열고 수입 등 무역을 재개하기 위한 조치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완전한 국경 봉쇄로는 지금 한계에 왔다, 인적 교류는 계속 제한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물자 교역 같은 경우는 부분적으로 완화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고요.”

관광객을 맞이하려는 정황도 포착됩니다. 지난 1년간 휴업 상태였던 북한전문 여행사인 ‘고려투어’는 오는 7월부터 북한 여행이 가능하다며 관광객 유치에 나섰습니다.

이 회사는 오는 7월 '여름휴가' 등 3개 패키지 여행의 예약을 받기 시작했고, 내년 6월까지의 여행 일정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놨습니다.

북한이 무역통인 리룡남을 중국 주재 대사에 임명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지난달 임명된 리룡남 대사는 최근 베이징에 부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해 61살인 리룡남은 1998년부터 무역성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무역상과 대외경제상을 지냈고, 2016년에는 내각 부총리에 올라 북한의 대외경제 부문을 전담해왔습니다.

북한이 중국 주재 대사를 교체한 것은 10여 년만입니다.

북한이 동맹국이자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무역 전문가를 대사로 보낸 것은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난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무역 전문가를 중국대사로 임명한 의도는 알겠지만 지금처럼 핵 문제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는 원조를 받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Trade guy try to solve the problem but UN sanction, nuclear issue…”

북한이 코로나 방역에 자신감을 얻어 국경 봉쇄를 완화하려 한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노동당 대회와 전원회의 등을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당 간부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방역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국경 봉쇄는 지난해 1월 말 시작됐습니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1월말 북-중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이 조치로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대교 (조중우의교)를 비롯해 10여 개 북-중 출입로가 전면 차단됐습니다.

북-중 국경이 봉쇄되자 북한 내 장마당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산 물자는 수 십 대의 트럭에 실려 평안남도 평성과 함경북도 청진의 도매시장으로 운반된 뒤 북한 전역의 400여 개 종합시장과 장마당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국경이 갑자기 차단되면서 설탕과 밀가루, 식용유 등 생활필수품이 들어오지 않자 장마당 물가가 급등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초 1kg 당 6천원 대였던 설탕 가격이 2만 7천 800원으로 올랐고, 1만 6천 500원이었던 조미료는 7만 5천 900원으로 급등했습니다.

또 겨울철이면 장마당에 흔하던 도루묵(도루메기) 가격도 3배 이상 오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1년간 국경을 차단한 결과 북한이 소비재를 중심으로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Now this year the last 12 months there's been very little in the way of North Korean imports. And since those are mostly consumer goods, they are really devastating to the public."

북-중 무역도 크게 줄었습니다. 중국 해관총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중국에서 4억 9천만 달러 상당의 물품을 수입하고 4천 800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는 등 전년 대비 대중 수출액은 70%, 수입액은 80%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중 국경 봉쇄가 단계적으로 완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우선 3-5월 기간 중 비료와 농약 등 모내기에 필요한 물자가 수입될 것이라고,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소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3월부터 5월까지 비료가 제일 많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3월에만 30%, 5월까지 하면 전체 60%가 소비되는 시기거든요. 아마 그래서도 저는 좀 더 빨리 수입물자소독법도 만들고 물자 교역은 좀 더 빨리 이뤄지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죠.”

북한 경제 전문가인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은 코로나가 국경 개방의 큰 변수라고 말했습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국경을 열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입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북한의 경우 만일 코로나가 들어오면 막을 수가 없어요. 방역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차단을 할 수밖에 없죠.”

국경 개방의 또다른 변수는 백신입니다. 북한이 국경을 열려면 백신이 필요하지만 백신이 언제쯤 충분히 공급될지 분명치 않습니다.

코로나 백신의 공평한 보급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는 올 상반기에 199만 2천 회 분의 신종 코로나 백신을 북한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2회 접종해야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에 제공되는 양은 99만 6천명 분 정도입니다.

2천500만 북한 인구의 70%가 백신을 접종해야 집단면역이 생기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은 1천750만 명 분의 백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99만 6천 명 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북한은 1천 650만 명 분의 백신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북-중 국경에 건설 중인 소독장부터 관광, 그리고 베이징 주재 대사 교체까지 국경 봉쇄가 완화될 조짐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중 국경이 개방된다 해도 무역이 과거처럼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북한 경제가 지난 2년간 제재와 코로나, 그리고 외화난 등으로 기력을 상당히 잃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경제의 생명줄인 북-중 국경과 북-중 무역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재개될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