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받는 '중국 역할론'..."북핵 문제, 중국 협력 기대 말아야"

미국과 중국이 지난 3월 앵커리지에서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양국의 이날 회담에는 미국 측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에서는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참석했다.

중국은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 미국과 한국의 협력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워싱턴에서 확대되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중국의 공격적 외교 행보가 두드러지면서 중국과의 접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진단인데, 중국의 협력은 애초에 비현실적인 기대였다는 회의론도 나옵니다. 백성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중국의 적극적 도움을 끌어내려는 전략은 미국과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시도돼 왔습니다.

북핵 문제는 역내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중국에도 중요한 현안인 만큼 미-중 간 첨예한 갈등을 떠나 중국의 영향력과 긍정적 역할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를 뒀습니다.

중국의 대북 역할론은 특히 과거 중국 등과의 다자 틀을 통해 북핵 문제에 접근했던 미국 국무부 협상가들에 의해 강조돼 왔는데, 이들은 여전히 중국과의 협력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1994년 북핵 1차 위기 당시 미-북 제네바 합의를 이끈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는 VOA에 “나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이 갖는 이해관계가 동일하진 않지만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항상 믿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 안보를 보호하려는 미국의 대응을 유발할 수 있는 북한의 잠재적 도발을 제거하는 것이 공통의 이해관계에 포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 “I have always believed that China and the United States have common, but not congruent, interests in Northeast Asia. Among them is the removal of North Korea as a potential threat to which the US might be provoked to respond in order to defend its national security.”

이들 ‘협상가 그룹’은 바이든 행정부의 최근 의회 연설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북한을 억제할 만한 동기가 중국에 남아있다고 확신합니다.

중국에게는 ‘북한 변수’를 활용함으로써 얻는 미국 견제의 이득보다 미국의 군사력을 역내에 집결 시켜 중국 영해를 포위하게 만드는 ‘북한 리스크’의 여파가 훨씬 위협적이기 때문이라는 진단입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중국은 한반도와 인근 지역에 미 병력과 해군이 증강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으며, 중국의 바로 문 앞에서 벌어지는 교전에 미국이 참여하는 데서 어떤 이득도 얻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 “Beijing has no interest in seeing US military and naval presence enhanced on and around the Korean Peninsula, nor do I think the Chinese could see benefit in America engaged in hostilities on their doorstep. Moreover, the DPRK's nuclear weapons do not add to China's security, but they may well complicate matters for China in a crisis. For these reasons, I think it likely that Beijing, like the US, would see the North's denuclearization as a positive development.”

“게다가 북한의 핵무기는 중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중국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중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비핵화를 긍정적인 진전으로 여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도 “중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게 나의 견해”라며 “이는 미국과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고 중국에도 그렇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 “China in my view support complete and verifiable denuclearization. It’s in their interest, as it is in the interest of the U.S. and ROK.”

하지만 중국을 북한 비핵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이해 당사국이자 잠재적 파트너로 규정해온 워싱턴의 이같은 전통적인 인식은 미국에서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습니다.

비핵화의 현실성에 대한 미-중 양국의 부정적인 인식과 격화되는 미-중 패권경쟁이 두 나라의 안보 협력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진단이 우세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독일마샬펀드의 보니 글레이저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두 나라 모두 가까운 미래에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니 글레이저 독일마샬펀드 아시아프로그램 국장] “Although the US and China share an interest in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neither country believes that the goal is achievable in the foreseeable future.”

게다가 “미-중 양국이 의견을 달리하는 한반도 비전의 또 다른 측면은 미-한 동맹”이라며 “전략적 경쟁이 미-중 관계의 중심적 요소가 된 상황에서 두 나라가 한반도 긴장을 낮추는 접근법에 대해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보니 글레이저 독일마샬펀드 아시아프로그램 국장] “On other aspects of their respective visions for the Korean Peninsula, the US and China disagree--especially on the role of the US-ROK alliance. With strategic competition now the central feature of the US-China relationship, it is unlikely that the two countries will find much common ground on the approach to lower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출범 101일 만에 대북정책 검토 완료를 선언한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중국 역할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 고위 관료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우리의 외교적 노력 지원과 유엔 대북제재 이행 등 양쪽 측면 모두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 참석차 영국 런던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4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이란 문제 등 여러 현안에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3월 18일 미-한 외교·국방장관(2+2) 회의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서 비핵화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에 대해 협력할 부분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중국 역할론에 대한 워싱턴의 평가는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또다시 중국 카드를 꺼내든 미국 정부의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칩니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특히 시진핑 정권 아래 중국 공산당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려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당혹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AEI 선임연구원] “The idea that the Chinese Communist Party, especially under Xi Jinping, would have any reason to wish to make America's difficulties in Northeast Asia easier to deal with is absolutely baffling.

미국이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고 중국 또한 미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상황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런 회의감은 워싱턴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중국은 현재 미-한 양국이 공유하는 안보 문제를 해결할 동기가 거의 없다”며 지난 몇 년간 급속히 악화된 미-중 관계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 “Beijing has very little incentive to help the United States and the ROK resolve a security issue that they share in common...“I don't think there's much incentive at all. Things have changed a lot since 2016, 2017, especially in US-China relations. So China does not have much incentive now for cooperating with the United States or the ROK.”

“2016년과 2017년 무렵부터 미-중 관계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미국과 한국 문제에 중국의 도움을 끌어낼 만한 유인책이 별로 없다”는 설명입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전 중국 고위 당국자와 1년 반 전 나눴던 대화를 소개하면서 “중국이 도움이 될 만한 건설적 역할을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중국이 미국의 부탁을 들어주려 했던 시절은 지났다’고 매우 직설적으로 답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 “I had a long conversation with a former senior Chinese official who's now retired, and I asked them whether China was prepared to play a helpful and constructive role with the United States. And this is a person who in the past would have played such a role but the downturn in US-China relations had already begun. And what this official said to me is that the days are over when we are going to do favors for you. He was very blunt about that.”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무역과 각종 국제 현안에서 마찰음을 키우는 현 상황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중국은 미-북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도 북한 문제 해결에 영향력을 행사할 의지가 애초에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것은 비핵화가 아니라 안정”이라며 “중국은 통일을 반대할 것이고, 북한의 위협이 미군의 동아시아 주둔을 영속화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 선에서 미국이 한반도에 얽매이는 상황에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China cares first and foremost about stability, not denuclearization. It probably opposes reunification and probably does not mind seeing the United States tied down a bit in Korea—except to the extent the North Korean threat provides a rationale for continued US military presence in East Asia.”

오핸론 연구원은 “중국의 동기는 다소 엇갈리고 복잡해 보인다”며 “관계상의 역학과 상태에 따라 북한 비핵화의 진정한 파트너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China’s motives are a bit mixed and complex, I believe. They may or may not be true partners in disarmament depending on dynamics and the overall state of the relationships.”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동북아시아의 안보 딜레마로부터 미국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이 미국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 세대 넘게 존재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환상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행동이 왜 일부 인사들의 그런 환상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는 환상일 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AEI 선임연구원] “There has been this dreamworld in US foreign policy making for a generation and more that somehow the Chinese government could be relied upon to rescue the United States, from some of its own dilemmas in security in Northeast Asia. I don't know where that dream arose from, and I don't know why the last several decades of Chinese behavior hasn’t disabused some people of that dream, but it is a dream nonetheless.”

또한 “중국의 대북정책은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며 “북한의 행동이 중국보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한 중국은 이를 이로운 것으로 간주한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 핵보유국(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괴상한 셈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AEI 선임연구원] “The hypothesis would be that anything North Korea does that causes more difficulty for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than it causes for China is regarded as something good, is regarded as beneficial. But that would seem to me to be a very odd sort of calculus, especially if one has a nuclear weapons state on one's border that clearly has no love for the PRC or the Chinese population.”

중국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선 한국 정부도 적극 공감하고 있습니다.

정의용 한국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선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필요하다”며 “한중 간에 논의가 상당히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 참석차 방중 길에 오르기 앞서 나온 발언인데, 한국 외교장관이 취임 후 미국에 앞서 중국부터 찾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1일 공개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중국과 협력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북한과 840마일의 국경을 접하고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상대국인 데다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는 점에서 한국이 중국과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It makes sense for South Korea to maintain strong communication with China – Beijing has the 840 miles border, and 90% of North Korea’s trade, so it is consequential and also one of the few nations that has good relations with Pyongyang...China hosted the six-party talks and played a reasonable role.”

아울러 “중국이 6자회담을 개최하고 합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으로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매닝 연구원은 “중국은 한반도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상황을 훨씬 선호할 수 있다”며 “중국에게는 안정이 비핵화보다 훨씬 우선순위가 높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China would much prefer a Korean Peninsula with nuclear weapons. But the problem is that for Beijing stability is a higher priority than denuclearization.”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중국이 북한을 비핵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준비가 되었는지가 진짜 문제인데, 중국의 최근 행동을 볼 때 비핵화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행동을 강제하고 압박하거나 회유할 능력을 지녔지만, 그런 힘을 북한에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e real issue here is what is China prepared to do to bring about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nd the obvious answer to that, based on Chinese behavior in recent years, is not very much other than stating their preference for denuclearization. The Chinese have not really taken any serious action to bring it about. They have it within their power, the ability to force or compel or coax or cajole North Korea, but they're not really exercising that power all over North Korea.”

중국이 북한의 전략 가치에 얼마나 무게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증폭되는 미국의 압박과 역내 국가들과의 국경 분쟁 속에서 북한체제 유지를 통해 얻는 ‘한반도 안정’의 이해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과 맥을 같이 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9년 방북 시 “힘닿는 데까지” 북한의 안보와 발전을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어 지난 3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구두친서에서는 한반도와 역내 평화를 위해 북한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의 반민주주의적 행동에 대항하겠다”면서도 “북한의 비핵화 설득에 중요한 역할을 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와 비공식 안보협의체 ‘쿼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포위망에 대항하기 위해 유일한 동맹을 활용하려는 중국의 셈법은 여전히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