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헌법, 광범위한 차이…한국 '권력 견제' vs. 북한 '권력 확인'"

한국 헌법재판소 내부 모습.

한국과 북한의 헌법이 설계와 해석, 집행 등에서 광범위한 차이가 있다고 법률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한국 헌법은 ‘권력에 대한 견제’가 핵심인 반면 북한은’ 권력에 대한 확인'을 헌법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오택성 기자입니다.

한국과 북한의 헌법에 광범위한 차이점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 전미북한위원회(NCNK)는 11일, 지난 2월 주최한 학술토론회에 참석한 13명의 법률 전문가들의 토론을 바탕으로 작성된 '남북한 헌법 설계'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전미북한위원회는 해당 토론회에 미국과 한국, 중국, 프랑스, 독일,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7개국 법률 전문가 13명이 참석했다고 설명하며 북한 측 전문가는 참석을 거절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우선 헌법 내용과 해석, 집행에 있어서 한국과 북한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경우 국가 권력을 조직하고 국가 주권을 정당화하는 것이 헌법의 주요 역할로, 일반적으로 법의 역할은 국가의 권력 사용을 계획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헌법은 단지 국가 권력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견제, 특히 헌법 재판소를 통해서 이를 제한하도록 설계됐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이어 한국과 북한의 이 같은 헌법주의의 개념에 대한 차이는 사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견해차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은 사회와 국가를 서로 다른 주체로서 각기 다른 이해를 갖고 있다고 보는 반면 북한은 사회와 국가를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따라서 북한은 사회와 국가 모두 '공동의 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 '공동의 선'은 바로 북한의 '주체사상'을 통해서 정의된다고 보고서는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이러한 차이는 결국 헌법의 해석과 집행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에선 헌법재판소가 헌법 해석의 책임을 지고 있어 시민들이 이를 통해 현실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북한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헌법 해석을 책임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헌법이란 본질적으로 국가 권력의 조직과 정당성에 대한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법원 같은 정치적 통역이 필요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또 한국과 북한 모두 헌법에서 국민 주권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민'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은 국민 주권에 대해 특정 구분없이 국민 전체에 부여하는 주권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반면 북한은 국민을 부분적으로 나눠 노동자, 소작농, 지식인 등으로 정의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선 국민들이 개인 자격으로 선거를 통해 정치 지도자를 선택해 정부를 지속적으로 지지할 수 있으며, 또 언론 자유와 탄원, 소송 등의 권리 이행을 통해 정부를 견제할 수도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반면 북한은 '민주적 중심주의' 이론에 따라서 국민의 주권행사가 개인적 차원이 아닌 국가 기관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이어 북한에서는 국가 기관이 주체사상을 통해 정의된 '공공의 선'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아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또 이들을 교육한다며, 개별 국민이 정부에 대한 견제로서 개념화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한국과 북한 헌법에선 정당의 역할에도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핵심적으로 한국의 정당은 유권자들이 정부를 통제할 수 있도록 돕지만 북한 정당은 정부가 시민들을 통제하는 것을 돕는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한국 헌법은 복수 정당을 의무화함으로써 각 정당이 유권자들에게 경쟁적인 안건을 제공하고 유권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연대해 정부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헌법은 개인들이 정당을 구성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각 개인이 정당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지 않으며 대신 정부가 정당 조성의 여건을 만들 것을 의무화한다며 이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선 정당은 '노동당'이 유일하며 다른 정당은 노동당의 위성정당 등일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한국과 북한의 헌법에서 공통적인 부분이 있으며, 이는 바로 '강한 행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북한은 행정부의 권력 자체가 헌법의 핵심인 반면 한국은 권력, 특히 대통령직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습니다.

VOA뉴스 오택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