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 국군포로 “이제야 한 풀려”… 지원단체 “북한에 계속 법적 책임 물을 것”

한국 서울중앙지방법원 건물. (자료사진)

북한 정권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국군포로 한 모 씨는 이제야 한이 풀렸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소송을 주도한 민간단체는 유엔의 보호책임(R2P)이 동력이 됐다며 납북자 등 다른 피해자들을 대신해 북한에 계속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중공군에 포로로 잡힌 뒤 탄광 등지에서 수십 년 간 노역을 하다 북한을 탈출해 2001년 한국에 복귀한 86살의 한 모 씨.

한 씨는 10일 VOA에, 한국 법원이 지난 7일 자신과 다른 전쟁포로 동료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 당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사상 최초로 승소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이제야 한이 풀렸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권 밑에서 강제 노동한 그 정말 피맺힌 원한을 풀어주셨어요. 햇수로 (소송을 준비한 지) 5년이에요. 5년! 5년 만에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앞서 이들에 대한 강제 노역 등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북한 당국이 두 사람에게 각각 2천100만원, 미화로 약 1만 7천 500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

이 소송을 주도한 민간단체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은 10일 VOA에, 이번 승소로 “한국군 전쟁포로의 한을 1만분의 1 정도 풀어드렸다”며, “명예 회복과 추가 소송의 단서가 됐다”가 말했습니다.

[녹취: 박선영 이사장] “저희는 그 돈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얻었어요. 그게 뭐냐하면 판결문 첫 문장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공동정범이란 사실이 들어갔다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의미 있는 판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이사장은 이 역사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유엔총회가 지난 2005년 채택해 전 세계에 적용하고 있는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이 근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보호책임’은 국가가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도적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 것으로, 유엔은 모든 회원국에 보호책임 증진을 위한 정책 입안 지원과 노력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박선영 이사장] “통치권자가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 그럼 그 의무는 우리 대한민국으로 하면 지금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 지금도

억류돼 있는데 그분들에 대한 책임이 우리 정부에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사법부에 북한정권과 김정은에게 책임을 묻는 재판을 해봐야겠다. 그래서 사법부가 이것을 받아들이면 정말 우리 헌법이 살아있는 것이고, 국제법이 우리 대한민국 법정에서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은 우리 국군포로 어르신들, 북한에 살아 계신 국군포로 어르신들에게도 큰 희망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북한 내 반인도적 범죄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고 권고하며, 핵심 근거 중 하나로 국제사회의 ‘보호책임(R2P)’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유엔 보고서와 유엔군 사령부, 한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 한국군 실종자는 8만 2천여 명, 그러나 공산군이 최종 인도한 한국군 전쟁포로는 8천 343명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돌아오지 못한 수만 명의 전쟁포로 가운데 80명이 자력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복귀했지만, 노령으로 다수가 이미 숨지고 생존자는 23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씨는 이번 승소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자국민에 대한 ‘보호책임’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 모 씨] “사실 그 양반들이 돌아가실 때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게 이다음에 통일된 다음에 나를 고향에 묻어달라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다 죽어요. 얼마나 비통한 말입니까? 말로 표현을 못 해서..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 씨와 박 이사장은 또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뒤 숨진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 부모가 자신들의 승소를 환영한 데 대해 감사하다며, 북한 당국에 대한 추가 소송에 대해 함께 협력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 모 씨] “북한이란 나라는 예측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자기들 마음에 맞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그 젊은 청춘이 북한에 들어갔다가 가진 고통을 받고 오래 살지도 못하고 사망했는데, 그 부모의 아픔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그 아픔이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부모가)가 건강한 모습으로 사시길..”

박 이사장은 국내 사단법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법원에 공탁 중인, 북한에 지급할 저작권료 20억 원, 미화 160만 달러를 받아내기 위한 추심 절차를 이날 시작했다며, 이달 안에 배상금을 받아 피해자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박 이사장은 이번 승소를 계기로 다른 전쟁포로들은 물론 북한 정권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다른 당사자들을 위해 계속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선영 이사장] “그게 끝나면 전시·전후 납북자만이 아니라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등 이에 대한 북한 정권에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입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국가가 국민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한민국이 국군포로와 전시 전후 납북자 문제를 입으로 얘기하고 최소한 생사를 확인하고 서신 왕래하고 실제로 왕래할 수 있는 길을 여기서부터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앞서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정부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남북 간 그리고 국제사회와 협조하면서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