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김여정 담화, 미국에 더 많은 대가 요구...핵 보유국 인정도"

지난달 4일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남 발언 관련 소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미-북 협상의 새로운 틀을 제시하며 협상 재개를 위해 미국이 치뤄야 할 대가를 높였다고,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평가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비핵화 협상의 출발점으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지다겸 기자가 보도합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10일 VOA에, 북한 당국이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를 통해 ‘미-북 대화의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 즉 새로운 협상 틀을 제시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리비어 전 부차관보] “She offers a completely new paradigm for U.S.-North Korea talks…She is now saying that the United States is going to have to take significant steps to ease, so-called hostility, just to get North Korea to come to the table. So, the message there is the price of admission for U.S.-DPRK talks has just been raised.”

김여정이 비핵화 조치에 상응한 제재 완화∙해제를 논의하는 기존 미-북 협상 틀 대신 미국의 ‘적대시’ 정책 완화라는 중대한 조치가 협상 재개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적시했다는 설명입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미 행정부가 미-북 협상을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점이 이번 담화의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미국이 더 많은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점을 김여정이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윤 전 특별대표] “She is strongly signaling that the price has gone up. And any new deal has to be based not on denuclearization and sanctions lifting, but on fundamental change in U.S. hostile policy that has to be accompanied by threat reduction and presumably what she means is political and economic normalization.”

기존 비핵화 대 제재 해제의 미-북 협상 틀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제시하면서, 향후 미 행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반으로 비핵화를 논의할 것임을 밝힌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윤 전 특별대표는 미국이 취해야 할 조치에 주한미군∙전략무기 철수 등 안전 보장과 외교∙경제 관계 정상화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은 북한이 본질적으로 미-북 양자 간의 핵심 문제를 비핵화에서 양국 관계 개선으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협상 목표 재설정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국장] “The main message is that the North Koreans wants the ball to be the U.S. court, rather than the ball being in North Korea's court as the U.S. formulates it. And so, what she's doing there is essentially reframing the core problem to shift away from denuclearization towards improv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북한이 협상 재개 조건으로 핵 보유국 인정을 요구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스나이더 국장은 북한이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발언을 통해, 비핵화 협상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수준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실제로 이번 담화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을 빼앗기보다는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방안’을 고안하는 것이 더 쉽고 유익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 담당관은 10일 스탠포드 대학교 주관으로 열린 행사에서,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매우 직설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칼린 전 정보담당관] “What they are now saying very bluntly to us is if you want a good starting point, this is where you're going to have to start. You may want to pull the nukes away from us over time, but you are going to have to start from the position that you accept that we have them.”

스탠포드대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칼린 전 담당관은 미 행정부가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미-북 핵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려면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 당국이 담화를 통해 최근 제기되고 있는 미-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일축하려 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미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장은 북한은 ‘최대 압박 전략’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미 행정부가 대선을 앞둔 지금은 대화를 할 적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미국의 협상 재개 제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 대선 승리를 위한 ‘정치적 책략’에 불과하며,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측면에서의 협상 진전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한다는 겁니다.

[녹취: 고스 국장] “Right now, they view U.S. offers to restart diplomacy is nothing more than a political ploy aimed at giving President Trump some sort of benefit for the election here but has nothing to do with actually trying to make progress in terms of giving North Korea what North Korea wants.”

일부 전문가들은 김 제1부부장이 이번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친분 관계를 강조한 점을 주목했습니다.

북한이 여전히 정상간 회담, 톱-다운 방식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한 협상의 문을 열어 놓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제시한 조건을 미국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고, 북한도 미국의 중대한 조치 없이는 협상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이 새롭게 제시한 협상 패러다임과 전제 조건을 미 행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면서, 북한 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셉 윤 전 특별대표는 미 행정부가 이번 처럼 북한이 제시한 전제조건이 있는 대화에서, 북한의 비핵화 행동 없이 제재∙군사 조치 완화 등 선행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지다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