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용사 딸, 미 육군박물관 신설에 17만5천 달러 기부

미국 버지니아주 포트벨보어에 건립 중인 국립육군박물관.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국인 참전용사의 딸이 올해 가을 신선될 미 국립육군박물관에 17만 5천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본인도 미 육군으로 20년 간 복무했고 지난 15년 간 육군박물관 설립을 위해 자원 봉사자로도 활동했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올 가을 미국 수도 워싱턴 근교에 있는 버지니아주 포트 벨보어에 국립육군박물관이 새로 세워집니다.

미군에서 육군은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조직이지만 아직까지 육군과 관련한 국립박물관이 없었습니다.

한국전 참전용사 최경진 씨의 딸인 모니카 최 씨. 미 육군에서 20년간 복무했다. 사진제공: 모니카 최.

한국계 미국인이자 미 육군에 20년 간 복무한 뒤 대위로 전역한 모니카 최 씨는 이 박물관 건립에 자신의 돈 17만 5천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또 지난 15년 간 국립육군박물관 설립을 준비하기 위한 자원 봉사자로도 활동했습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그 안에 한국전쟁에 대한 것도 있고 한국전쟁에 대해서 잊어버리면 안되니까, 그 부분에 관심을 두고…”

특히 박물관 내에 한국전쟁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매우 고무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최경진 씨는 대중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8240부대 소속이었습니다.

8240부대는 유엔군 산하 미 극동사령부 소속의 비밀 게릴라부대였습니다.

전원 북한 출신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유격 활동과 북한 내 첩보, 적 기지 파괴, 내부 교란 등 오늘날 특수부대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부대의 원조격인 주한 연락처 (Korea Liaison Office)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KLO의 한국식 발음을 섞어 ‘켈로부대’로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소속 KLO 부대원들. 사진제공: 모니카 최.

평양 출신이었던 최경진 씨는 중학교 이후 가족과 떨어져 홀로 서울에 유학을 와 있었고, 성균관대학교 2학년 재학 시절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전쟁이 나서 평양에 있는 가족들 못 보고, 군대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아버지가 대학교 다니다가 전쟁이 났는데, 영어도 되니까, 친구가 미8군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 중 영어가 되는 사람들 구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한국에서는 군번 없는 군인으로 불렸던 ‘켈로부대’ 소속으로서 미군 특공대로부터 훈련을 받아 인민군이나 중공군 옷을 입고 북한으로 넘어가 정보를 구해 돌아오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비행기 추락한데 같은데 가서 포로가 어디 있는지 군인들이 어디있는지 정보를 구해 다시 내려와, 정보를 미국 군인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소속 KLO 부대원으로 참전한 최경진 씨. 사진제공: 모니카 최.

모니카 최 씨는 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경험했던 이야기를 해줬던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중 하나는 임무 수행으로 인민군 옷을 입고 북한에 넘어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일이 있었는데, 미국 군인들한테 잡히는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아버지하고 또 한 사람. 아버지 말씀이 그 미국 군인들이 물어보지도 않고 쏴서 죽일 수도 있었는데, 아버지한테 소속이 어디냐고 묻더라는 거에요. 8240 부대, 미국 정보부대한테 연락하면 나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확인할 때까지 며칠 계셨대요. 조마조마하죠. 인민군 옷을 입었는데. 다행히 나중에 확인이 돼서 다시 돌아오셨는데...”

또 1951년 1월 미군과 한국군이 북진해서 올라갔을 때 평양까지 올라갔는데, 예전에 아버지가 가족들과 살던 집 근처에까지 가게 됐다는 겁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아버지께서는 평양 길을 잘 아시니까. 거기서 아버지께서 부모님이 사시는 집을 가보려고 했는데, 아버지 집이 커서 인민군 사령관이 쓰고 있어 집에는 못 들어가고 길을 가는데, 앞에 형님 같은 분이 걸어가더라는 거예요…”

집 앞에서 큰 형과 재회했던 아버지는 그 다음날 일찍 짧게나마 다른 가족들과도 만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그날 저녁에 1.4 후퇴가 명령이 떨어져서 부모님을 못 뵈고 내려온 게 평생 후회라고 얘기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서 자리잡았던 최경진 씨는 1973년 아내와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이민 왔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집에 무궁화를 심는 등 한국과 한국전쟁을 결코 잊지 않았고, 누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면 남쪽도 북쪽도 아닌 ‘코리아에서 왔다’고 늘 답할 정도로 언제가는 통일이 돼서 한반도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고, 모니카 최 씨는 아버지에 대해 회상했습니다.

모니카 최 씨는 앞으로도 국립육군박물관에 기부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제가 군대 들어가기 전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들어갔는데, 전문학사, 학사, 석사 학위까지 받고, 박사는 하다 말았지만 그거 다 하도록 군대에서 다 해주고. 학교만 다닌게 아니라, 한국, 이탈리아, 독일에서도 주둔했고. 독일에서 남편도 만났고, 군대에서 남편도 얻은 것이죠. 군대에서 받은게 많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갚아주고 싶고…”

모니카 최 씨는 박물관이 육군에 복무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저는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미국 친구들 보면 누군가 하나는 육군에 있었더라고요. 혁명 전쟁부터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냉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까지 합치면 친척 중에 또 마을 동네에 육군에 복무한 사람이 꼭 있어요.”

모니카 최 씨는 이 밖에 미국 내에서 한국전쟁이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1년에 두 번씩 워싱턴 근교에서 한국전쟁과 관련한 역사 세미나를 열어온 겁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하는 도중에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지만, 그걸 하면서 참전용사의 이야기들, 개인 이야기들, 역사 책에 없는 개인 이야기들을 살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군인이 그 군복을 입기 전에 사람이니까…전쟁에 들어가면 사명감 느끼고 열심히 싸운 것도 있지만, 무서웠던 것, 슬펐던 것, 동료들을 잃은 것. 재미있던 것, 기억에 남는 것이 있죠. 그걸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또 다른 2세, 3세, 그리고 4세 등 후세에 알려주는게 제게 주어진 사명감이라 느낍니다.”

VOA뉴스 김영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