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미국에서 한반도 평화운동을 펴는 민간단체가 한국전쟁을 기리는 온라인 행사를 열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녹취:세교 해인즈] “No more than 2.5miles of the distance. We called faraway..”
“오늘 같은 날 창 밖에는 눈이 나리고, 온통 지옥으로 덮여, 벽에 걸린 시계마저도 멈춰버린.. 이 순간 내 기억은 어리던 시절 할머니 곁으로 돌아간다…할머니는 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미 동북부 메사추세츠에 거주하는 세교 남 하인즈 작가가 자신의 오래 전 기억을 한 편의 시로 나눕니다.
[녹취:세교 하인즈] “먼 어느 그 곳, 그 곳을 생각해 볼 때마다 나에게는 안개 자욱한 지평선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할머니의 적적한 눈매가 오랫동안 머물던 곳…”
70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한국전쟁의 고통과 상흔이 여전하다는 심경을 시에 담고 있는 겁니다.
한국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1973년 미국으로 이주해 영문학을 전공한 것이 계기가 돼 작가가 된 하인즈 씨의 자작시 ‘눈이 가져다 주는 겨울의 한 기억’.
하인즈 씨는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숙부로 인해 가족들이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VOA에 설명합니다.
[녹취:세교 하인즈] “우리는 숙부님을 ‘멀리가신 아재’라고만 불렀거든요. 우리가 클 때는 반공교육이 심하고, 이북에 누가 있으면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잖아요. 아버지가 이북에 가신 분들은 문제가 많았죠. 여권도 못받고, 직장도 마음대로 못가고, 민주화가 된 후에나 여권도 신청하고 그 전에는, 편지 오는 것도 다 뜯어보고.. 항상 정보부의 감시를 당하고 그랬죠.”
하인즈 씨는 또 당시 한국사회 분위기를 언급하며,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된 후에도 자유가 없었다면서, 원하는 책도 읽지 못했고 노래도 마음대로 듣지 못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하인즈 씨는 “정전협정 67년이 지났지만 남북이 아직도 전쟁 중인 상황”이라며 자신은 종전을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담은 이 한인 작가의 시는 지난주 열린 해외 한인 여성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사에서 소개됐습니다.
미국 등 해외 한인 여성들이 대거 참여한 온라인 행사 ‘70년의 한국전쟁-재미동포 여성들의 대화, 추모’.
이 행사는 한국전쟁 70주년과 7.27 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의 의미와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열렸습니다.
캐나다와 한국, 미국 각지에서 250여명이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으로 참여했고, 행사는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로 생중계 됐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Peace Treaty Now(PTN)’,코리아 피스 나우(KPN), 코리아 평화네트워크(KPN)등 세 단체가 공동 주관한 이 행사의 화두는 ‘한국전쟁과 나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쟁이 남긴 유산은 무엇인지?’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4명의 한인 여성들을 통해 찾을 수 있었는데, 전쟁을 겪은 2명의 평화운동가와 젊은 세대를 통해서 였습니다.
미 버지니아주에서 ‘치유’라는 이름의 민간단체를 이끌고 있는 이복신 씨는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중학생인 자신이 황해도 성불사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전쟁 후 달라진 삶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녹취:이복신] “The last time I see Mr. Kim, who brought me to South Korea, passed away..”
이 씨는 아버지 친구인 김 씨를 따라 남한으로 내려왔고,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미국에서 평양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반송됐지만, 38년 만에 동생들과 재회했습니다.
이 씨의 이야기는 평범한 한 여성의 삶이 전쟁으로 완전히 뒤바뀐 사례로, 출생지가 평양이어서 심문을 당하는 등 한반도에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고통을 보여줬습니다.
미 동부 뉴저지에 거주하며 민간단체 `위민 크로스 DMZ’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애영 씨는 한국전쟁 후 타이완과 일본으로 이주했던 가족의 삶을 소개했습니다.
최 씨는 2015년 평양의 박물관과 공장, 병원 등을 방문하고 DMZ를 행진했던 일 등 자신의 활동도 나눴습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의 증언이 끝나고 젋은 세대들의 발언이 이어졌는데요,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배민주 씨도 사진 한 장을 소개했습니다.
단발머리 소녀였던 자신의 사진은 1990년대 초 농장에서 찍었다며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녹취:배민주] “This photo was taken in the early 1990s in Oregon for my grandparents. And it looks like this photo was taken because my aunt and..”
배 씨는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리건주 농장을 일구며 척박한 이민 1세대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의 민주화항쟁에 뛰어들었다는 배 씨는 한국전쟁 이후 가족사와 함께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반대해온 자신의 활동도 소개했습니다.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 라는 난민지원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그레이스 최 씨는 미국에서 태어난 후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서, 당시 한국의 반공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며 ‘이승복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녹취:그레이스 최] “I remember that we weren't taught with a propagandize story of Lee Seoung Bok thing that was chill vibes and more special. How he so boldly declares. I hate the Communist Party…”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하고 북한 무장대원들에 의해 살해된 이승복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최 씨는 젊은 세대들이 바라보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생각을 나눴습니다.
최 씨는 젊은 세대는 한반도 평화 문제를 한반도에 국한시키기 보다 민족과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로 다뤄야 한다며,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쟁 세대에 국한된 당위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말고 세대를 초월할 수 있는 포용적인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행사는 참가자들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날 행사는 ‘코리아 피스 나우’와 ‘위민 크로스 DMZ’ 등 국제 여성평화운동 단체들이 국제연대 캠페인을 벌이는 가운데 열렸습니다.
이들 단체는 올해 말까지 한국전쟁 공식 종결과 평화협정 체결, 미-북 관계 정상화 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그레이스 맹 하원의원은 연설에서 “수 백만 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고 전쟁이 남긴 상처가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의 슬픔을 언급했습니다.
[녹취:그레이스 맹 하원의원] “All these years later, many survivors of the war are still haunted by their trauma and younger. Often internalize this unresolved grief. Many families have also lived with the..”
맹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이산가족 상봉법안(H.R 1771)’이 하원에서 통과된 데 이어 상원 통과를 위해 노력 중이라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할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입니다.